며칠 전 140여km나 드라이브를 했다. 늦겨울 드라이브가 어떤 책제목 ‘어떤 나드리’처럼 낭만적이었을까? 아니다. 20년 전 제네바에서 함께 근무했던 상사의 부인이 죽을날만 기다린다는 비보부터 낭만과는 거리가 있었다.
죽전 단국대 앞 여느 붐타운의 상가건물 4층 효사랑요양원을 찾는 기분은 착잡했다. 요양원 또는 시설이라는 단어들은 요즈음 쉽게 접하는 단어들이지만 사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가슴이 뛰었다. 이것은 충격이다.
로비는 물론 넓은 방마다 하얀 노인들이 그득하다. 그것도 뭘 꽂고 앉아있거나 누워있다. 집에서 노인 한 분만 모시다가 한꺼번에 많은 노인을 보니 뭔지 자연스럽지 않다. 그 옆방도 다르지 않고 또 그 옆방도 하얗다. 깨끗이 청소했다지만 배설물과 빨랫감들이 섞인 묘한 냄새가 복도에 배어있다.
복도 끝 일인용 방에 들어서니 여기에도 하얀 머리부터 보인다. 이 요양원 환자들 중에 가장 어린 갓 일흔을 넘긴 이 분의 머리는 화학요법 치료로 이미 하얗다. 말도 안하고 표현도 없고, 충격이다. 부산서 일전에 뵈었을 때와는 딴 판이다.
병이 사람을 이리 바꿔놓는구나... 뒤늦게 살림하고 병원에 출근해야하는 그의 남편이 그렇게 측은해보일 수가 없다. 아이들은 뚝 떨어져 외국에 있고, 이런 어찌해야하나. 돌아 나오면서 열린 병실들과 하얀 머리들을 다시 보니 고령화 사회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하얀 머리 쓰나미가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 나라 대통령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통 받지 않고 존엄을 지키며 적당한 때 가버리는 방법이 없을까. 그걸 염두에 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외출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내 대학 사이트에 이 이야기를 올렸다. 그들의 반응 중 하나는 자기 시어머님이 바로 이런 곳에서 1년을 계셨다고 하고, 친정아버님은 죽음의 의사를 분명히 하시고 집에서 생을 마감 하셨다고 했다. 우리들을 지도했던 어느 교수님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다는 시설 보바스 요양원에서 운명하셨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 발등에 떨어진 이 심각한 문제를 의논하려는 마음에 오늘의 충격을 고등학교 사이트에도 올렸다. 어떤 동창은 자신의 어머님이 그런 요양원에서 마지막 1년을 보내셨는데 현대판 고려장이 아니냐고 했다. 고려장이라는 말이 섬뜩하지만 생로병사를 담담하게 받아 드리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2013년 2월 25일 제39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