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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들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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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서너 마리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북한산로에서였다.뜻밖이었다. 옛날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커다란 개들이 백주에 당당히 인도를 걷는모습이 산뜻하게 다가왔다. 나는 사람 손에 주물러지지 않는 야성의 이들을 들개라고 명명했다.
 
들개와 내가 한 마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은 정제된 아파트 도시서 살아온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얼마 후 나의 아파트 단지에서 사건이 있었다.
 
 
작은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던 어느할머니가 개 끈을 잠시 놓은 사이 개 울부짖는 소리에 쫒아가 보니 커다란 들개가 할머니의 애완견을 물어뜯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쩔 줄 몰라 휴대폰으로 아들을 찾았고 아들이 쫒아와 보니 이미 애완견은 죽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 이틀 만에 나의 강아지 가을이에게 일이 닥쳤다. 밤 9시쯤 가을이와 남편이 산책을 나갔다. 엄동설한 늦은밤에도 가을이의 산보는 빼놓을 수 없다. 아파트 옆 놀이터에서 남편이 그네를 타고 있는데 날카로운 가을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쫒아가니 커다란 들개 두 마리가 어둠속에서 가을이를 덮치고 있었다. 남편은 황급히들개들을 쫒아 내고 전화로 나를 불렀다. 다급한 상황에 나는 허겁지겁 쫒아 내려갔다. 공황상태에서 가을이는 움직이질 못하고 벌렁 누운 채 바들바들 떨었다. 인터넷을 뒤져 24시 동물병원을 찾아 뛰어갔더니 앞다리가 부러져 전치 1달이라고 했다.
 
남편이 남자라 기동력이 있어 얼른 뛰어갔기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어도 가을이는 죽었을 것이다. 가을이가 命이 긴 모양이다. 처음 나를 만났을 때 교통사고에서 살아났으니. 들개에 물린 후 두 달, 이제 완쾌되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가을이는 남편과 함께 매일 산으로 향한다.
사건 다음날 주민센터에 전화해서 진관동장에게 이 일을 알렸다. 성실한 동장은 멧돼지 공격은 들어봤어도 들개공격은 금시초문이라며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얼마후 동물협회에서 전화가 와서 정식으로 상황접수를 했다.
 
신고를 한 이유는 내 단순한 머리로 재발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과연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오늘 신문에 북한산 들개 문제가 등장했다. 배고픈 개떼가 등산객을 위협한다고 한다. 수십 마리의 들개가 북한산에 떠돈다하니 놀랍다. 동물협회에서 내게 다시 전화가 왔다. 가을이를 문 유기견을 잡으려한다며 다시 한번 현장 확인을 했다. 잠깐, 그런데 잡아서는 어찌할건데?
 
케냐에 살 때 마사이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배고픈 사자가 마사이 마을에 와서 소를 잡아먹었고 화가 난 마사이족이 사자들을 죽였다. 발끈한 케냐 환경장관이 이를 문제 삼고 소 한 마리당 얼마씩을 마사이족에게 보상해주는 걸로 해결하고 마사이족이다시는 사자를 죽이지 못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사자의 개체수가 줄어들어 아프리카전체에 7년 전 당시 약 2천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 사람이 개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신문은 들개를 遺棄犬이라고 표현했다.유기견이란 사람이 키우다 귀찮아서 산에 버린 개가 아닌가. 온순하던 애완견이 들에 내던져지면 자연 野性으로 돌아간다. 유기견이 사람을 해치는 것도 아닌데 자연으로 돌아가는 유기견을 박멸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사실 가을이도 유기견이었다. 2006년 가을 차에 치어 쓰러져있던 것을 데려다 키웠다. 가을이의 이름도 가을에 만난 인연으로 붙인 이름이다.생태계는 자연이다. 우리는 이 자연적 현
상을 무시하고 모든 걸 사람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멧돼지가 마을에 출현해 가축을 잡아먹는 일, 들개가 마을에 출현해 애완견을 물어뜯는 일을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이롭게 해결할 수는 없는것일까?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잡아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자연계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
 
[2012년 4월 16일 제30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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