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3일

오민경의 지구촌의이웃들

지진 (地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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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경주에 지진이 났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 이것이 그날 저녁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한국은 지진권에 들지 않아 그동안 천하태평으로 지냈다. 십 여 년 전 인도에서 진도 7을 경험한 일이 있지만 남의 나라 이야긴 줄만 알았다.
 
서울에 사는 나는 아무런 진동을 느낄 수 없었지만 한반도 전체에 진동이 퍼졌다고 한다. 진도 5.8이나 되는데 진원지가 깊어 부상자 2명에 그쳤다니 우선은 안도를 했다.
 
그래도 카카오톡이 잠시 불통이어서 불안해졌는데 이는 우리가 얼마나 SNS에 빠져 있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뉴스를 보니 호떡집에 불난 것 같은 중국인들의 상황이 겹쳐진다. 젊은 뉴스 진행자들이 꽤나 당황하고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다.
 
아파트 32층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걸어 내려온 주부도 있었다. 일본인들의 몇 년전 동북지방 쓰나미를 대하던 모습에 영국 매체가 인간의 진화를 보는 느낌이라고 표현한 것이 떠올랐다.
 
중국인들의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는 모습과 차분한 일본인들의 모습은 대조적으로 다가온다. 그럼 우리는 중국인에 가까울까? 일본인에 가까울까? 아무래도 중국쪽으로 기울어진 중간쯤 되리라.
 
부산 어느 고등학교에서 지진이 일어나던 저녁에 자율학습을 하던 중 건물이 흔들리자 교사는 학생들에게 나가지 말고 계속 공부를 하라고 했다한다. 몇몇 학생이 선생님 말씀을 거역하고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아마도 세월호 사건 때 어른 말씀을 따르는 것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라는 경험에서였으리라. 나는 밖으로 나온 학생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아이들보다도 참교육이 뭔지 모르는 선생님들을 다시 가르쳐야할 듯하다.
 
그들에겐 고3 수능점수 잘 따는 것이 지상과제교육인 듯 보인다. 다행이 진동이 멈췄지만 그것 봐라 선생님 말이 맞지?’ 하며 요행을 과시한다면 참교육이 아닐 것이다. 매뉴얼에 따라 학생들을 차분히 밖으로 대피 시켜야 하는 것이 진짜 교육일 것이다.
 
그래야 그 학생들이 다음에 일어날지 모르는 지진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 배낭하나 준비했다. 그 속에 단파라디오, 배터리, , 스위스칼, 후레시를 넣어 쉽게 보이는 곳에 놓고 잠들었다. 이는 스위스에서 배운 것이다.
 
내가 살던 아파트 지하에는 2평 정도의 우리 몫의 핵 대피소가 있었는데 입구 콘크리트문 두께가 70cm 쯤이나 되는 무거운 문이었다. 거기에다 그 사람들은 비상식량을 넣어 두고 있었다. 놀랍게도 비상식량은 2개월마다 새것으로 교체해주고 있었다.
 
한국인인 우리는 그 자리에 빈 상자 등 안 쓰는 물건으로 가득 채워놓고 살았다. 이제 생각해보니 우릴 선진국사람으로 보질 않았을 것 같아 창피하다. 더욱 북한 핵실험으로 불안한 한국에서랴. 최근에 스위스에 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내가 스위스에 내왕한지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이 때껏 간과한 것이다. 어느 날 황혼 무렵 하늘에 흰 줄이 희미하게 나타난 것을 봤다. 그런데 어라 그 흰줄은 한 개가 아니고 하늘 전체에 걸쳐 나타나고 있었다. 군용 비행기가 연습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 후에도 유심히 보니 흔히 그 흰줄이 보였다. 선진국사람과 후진국사람의 차이란 이런 일생에 한번 다가올지 모를 위기에 얼마나 준비가 되었는가를 보면 될 것 같다.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지표 숫자 이전에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위기대처능력을 키워야할 것 같다.
 
후래쉬를 배낭에 넣어 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가다가다 배터리를 새 걸로 바꾸어 놓는 우직한 성실함이 요구된다. 지진이 나면 나갈 문을 열어 놓아 탈출구를 확보해 놓고 가스 끄고 머리보호하고.. 목욕통에 물 받아놓고.. 일본에 사는 노련한 지진선배의 말이 이젠 귀에 쏙쏙 들어온다.
 
비상배낭 준비해 놓는 나를 보고 웃으면 안 된다. 안전불감증은 정부의 문제가 아니고 국민 개개인의 문제다. 물론 정부가 교육적인 측면에서 책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국민 개개인의 문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그런 것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엉뚱한 노력을 하는 것을 보면 참 우습다.
 
 
[2016927일 제8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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