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농업은 매우 중요한 국가적 기간산업이었다. 이를 위해 임금은 해시계, 측우기, 천문도를 만들었고 매년 농사지식을 열거한 책력을 만들어 지방관청에 보냈다.
임금님 방에는 경직도 그림을 병풍에 그려 장식을 했는데 이는 임금이 백성들의 농사짓는 고초를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경직도에는 농사짓는 그림과 누에치는 그림 또 길쌈을 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지난 가을 추수 때 비축했던 쌀이 다 떨어져가는 이른 봄이면 소작인 농민들은 드높은 보릿고개를 넘어야했다. 보리밭에 보리 싹이 나길 기다리며 알뜰한 사람들은 이런 때를 위해 절미통을 마련했다.
주둥이 가는 항아리 절미통에다 매 끼니마다 한 줌 씩 절식을 하며 쌀을 모았다. 주둥이가 좁은 이유는 조금씩만 꺼내기 위함이었다. 돼지저금통에 동전 모으듯 쌀을 모아 보릿고개에 조금씩 꺼내 먹었다.
임금님은 기아대책의 일환으로 구황식물들을 적은 책을 만들어 보릿고개 넘는 법을 가르쳤다. 지금 보면 얼마나 소극적인 중앙정부의 대책이었던지 농민데모라도 일으킬듯하지만 유교사회에서의 덕목은 충과 신 이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餓死者들이 속출하는 시련의 시기이기도했다. 농부들은 봄이 되면 언 땅을 갈아엎고 거름을 주어야한다. 민속박물관에서 근사한 진열장에 놓인 거름통인 장군과 귀때동이를 보았다.
항아리 입구 한쪽이 귀처럼 뾰쭉하게 튀어나와 안에 든 내용물을 쏟아낼 때 옆으로 새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토기 위에 새끼로 겉을 옷입혀 잘 깨지 않도록 한 장군도 있다.
정말 장군의 힘으로 날라야할 만큼 무겁고 소중한 거름통이었다. 이 무겁고 더러운 물건이 박물관 진열장에 깨끗한 모습으로 등장하자 관람자들은 귀때동이가 뭔지 왜 이곳에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똥 한 자루는 쌀 한 자루와도 안 바꾼다는 말이 있다. ‘똥이 돈이다’ 라는 말은 서구에서도 있었다. 똥을 거름으로 사용한 것은 인류공통이다. 마사이족에게는 소똥이 재산이다. 집 지을 때도 쓰고 땔감으로도 썼으니 마사이족에게 소똥더미는 곧 富를 뜻한다.
소똥더미 속에서 우유를 발효시켜 요구르트를 만들어먹는다. 조선시대 우리 농촌에서의 흔한 풍경이 있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가 오줌을 누려면 꾹 참았다가 집에 달려가 자기 집 변소에서 오줌을 누어야지 아니면 어른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
집에 놀러와 주인과 장기를 두던 이웃이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점잖게 주인에게 화장실을 써도 되냐고 물어 그 집 화장실을 이용했을까? 아니다. 그는 얼른 자기 집으로 뛰어가 자기 집 화장실에 볼일을 보곤 다시 돌아와 두던 장기를 두었을 정도다.
우리의 농촌에서도 똥이 곧 거름이자 재산이었던 것이다. 시골냄새가 곧 거름 냄새이다. 잘사는 스위스 농촌의 거름 냄새, 한국 농촌에서 나던 익숙한 냄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는데 꼭 필요한 냄새였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남편의 답은 엉뚱했다. 우리 민족들이 얼마나 인색했는가를 보여주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오줌 한 번 남의 집 화장실에 누기로서니 서로 잘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면 되었지 그정도로 인색하게 생활을 했다면 아이들이 다 함께 잘 살려는 통 큰 마음은 배우지 못 할 거란 이야기다.
일리가 있다. 티브이에서 보니 시궁창이나 똥에서 금을 걸러내는 연구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어떤 광산보다도 더 경제성이 있다고 한다. 더럽다고멀리 하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똥이다. 귀때동이는 진열장에 앉아 있을 가치가 있다.
[2016년 7월 15일 제78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