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빛을 그리다전, 아르장퇴유의 모네가족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모네 빛을 그리다’ 전시를 하고 있다.
클로드 모네 전시를 왜 전쟁기념관에서 유치하는지 의아했지만 아무튼 모네라는 말만 듣고 수련이 한국에 온 줄 알고 설레는 마음으로 가보았다. 협찬회사들 이름이 가득 도배된 매표소 입구부터 영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내가 그동안 다녔던 우아한 미술관의 느낌들과는 달랐다.
조화로 꾸민 어두컴컴한 층계를 따라 지하실로 들어서는데 벽면 가득 움직이는 수련 영상들이 어둠속에 보이고 조립된 전시실은 수련 영상들과 앙드레 가농 음악으로 꽉 차 있다. 모네의 사진, 편지, 아카이브들과 함께 그의 작업실 모습을 재현한 사이사이 또 다른 인상파 화가들의 복제작(Replica)들도 보인다.
나는 모네의 진짜 그림을 찾아 헤매다 모네의 그림을 발견한 순간 주춤했다. 모네 사인이 들어있는 유화들은 한국의 화가가 복제를 한 거란다. 모네의 사인도 복제를 해 놓았다.
그림 옆에는 읽기 힘들 정도의 작은 글씨로 모네라는 이름과 작품년도를 골동품 장식처럼 표기해 놓았을 뿐이다. 속은 기분이 들었다. 방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루벤스를 보고 온 뒤니까 더욱 그랬을 것이다.
모네의 식탁도 꾸며 놓아 아기자기하게 눈길을 끌게 기획을 해 놓았으나 내 눈에는 식탁 위의 종이 냅킨도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모네 시대에 종이 냅킨을 썼을까? 도센(전시해설자)을 붙들고 물었더니 컨버전스아트(convergenceart)는 이런 거라고 설명한다.
이곳에 전시된 것 중 진품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저작권에 위배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70년이 넘으면 괜찮다고 한다. 나는 짝퉁을 보러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전시 기획이 새로운 예술 장르라는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까지 가서 볼 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는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태어난 새로운 예술형식이라고 하면 될까. 이벤트회사가 3D 영상과 음악과 모작들을 그려 함께 조립을 한 것이다. 조립 예술, 이벤트의 예술이라고 할까.
첨단 디지털 기술을 입힌 컨버전스 아트는 지루하고 어려운 예술품들을 원작보다 더 자세하고 입체적으로 감상할 기회를 준단다. 전시장 곳곳에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인터액티브 존이 설치되어 있어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전시를 즐기기 위한 거라고 한다.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가상현실을 의료에 접목하여 환자의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요즈음이다. ‘가상 모네 체험전’ 이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진품에만 올인하는 내 안목이 이해의 폭을 넓힌 날이었다. 대중은 알면서 속는다. 아니 속아준다. 또 그걸 즐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16년 4월 22일 제75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