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제2전시관에서 나의 눈을 끄는 곳이 바로 세물전이다.
얌전히 진열된 다양한 소반들과 반짝반짝 빛나는 유기그릇들 앞에서 나는 눈길을 떼지 못한다.
세물전이란 돈을 주고 물건을 빌리는 상점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 돈 주고 물건을 빌리는 가게가 있었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주로 혼례나 상례 때 제구, 사기그릇, 유기그릇, 돗자리들을 빌렸을 것이다. 옷도 빌려 줬다는 기록이 있다.
봉산탈춤에서 주인공 말뚝이가 한양에 과거보러 가는 가난한 선비들을 보고는 세물전에서 빌려 입은 꾀죄죄한 꼬락서니 좀 보라는 장면이 있다.
조선시대 한국인은 바닥에 앉아 생활하면서 한 사람당 상 하나 씩 받는다. 많은 손님이 모여 든 큰 행사시에는 많은 소반이 필요했을 것이다.
진열장에는 개다리소반拘足盤, 호족반虎足盤, 네모난 상, 둥근상, 수저통 달린 상, 목반 등 다양하다. 손때가 닳고 닳은 소반들은 가히 예술품이다. 어떤 소반은 상판 바로아래 구멍이 있고 손잡이 구멍도 있다. 주로 야외에서 소반을 머리에 이고 나를 때 앞이 보여서 넘어지지 않게 한 배려의 디자인이다. 상이 좀 더 높다. 공고상公故床, 번상番床, 풍혈상風穴盤 이라고도 한다. 작은 상床들을 보며 ‘북청물장수상’이 생각났다.
주인이 음식을 남겨야 아랫사람들이 먹을 것이 있다는 배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덕에 물을 길어주던 배고픈 북청물장수는 깨끗이 상을 비웠을 것이다. 먹을 것이 귀했던 때에 무슨 위생관념까지 생각했겠는가만 감히 음식 쓰레기 걱정하는 환경염려의 시대가 올 줄 짐작이나 했을까.
아카데미상 수여식에 참석하는 유명배우들도 드레스와 보석들을 빌린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남의 것을 빌리거나 중고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조선시대에 세물전이 있었다는 걸 보니 우리에게도 일찍부터 실용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즈
음 렌탈숍이 호황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이상할 게 없다.
[2016년 3월 30일 제74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