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야기<6> 중앙동 산책
반백년을 너끈하게 지켜온 중구의 자부심
토박이 가게들이 늘어선 골목 50년은 기본
자갈치시장에 싱싱한 해산물이 퍼덕이고 해운대의 고운 백사장이 아름다운 곳. 그리고 영화축제 BIFF가 열리는 이곳은 ‘부산’ 이다. 모두가 가장먼저 떠올리는 해양수도 부산의 이미지도 아마 이 같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해양도시 부산이 되기까지 그간 많은 역사와 아픔이 서린 곳 역시 부산.
한때 일본과의 교역지로, 한국전쟁의 피란지로, 학생운동의 시발점으로. 참 많은 사건이 휩쓸고 갔다. 이제 세월의 녹을 치우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고, 다양한 축제와 잘 가꿔진 해안절경을 보러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세월이 흘러 세상이 눈 깜짝 할세 변하듯, 부산의 번화가도 바뀌고 상점들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우리가 주말에 찾는 번화가의 몇 년 전 모습이란 이제 상상조차 힘들다.
하지만 10년 전, 20년 전 번화가의 모습을 아직 간직한 곳이 있으니 바로 ‘중앙동’ 이다. 용두산 공원과 40개단에 어린 시절 추억이 얽혀있지 않은 부산사람이 드물 정도로 20년 전만 해도 이곳 중앙동일대가 부산의 중심이었다.
부산의 여러 핵심 관공서도 자리했었고, 먹거리 볼거리 많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남포동일대까지 벅적했다고 하니 이곳이 확실히 부산의 원도심인 것이다. 현재 이곳은 40계단을 주변으로 현재 테마파크를 조성하여 옛 모습을 재현해 놓은 동상들이 길 곳곳에 놓여있고 낡은 철로와 옛날식 전화박스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역사를 재현해 놓은 곳이면서 고스란히 스스로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에 중앙동과 광복동 일대는 부산의 여느 곳과 다른 특별한 세월의 향기가 녹아있다.
토박이 아지매의 옹골찬 낚지 볶음40계단 인쇄골목 아래에는 음식점들이 옛날간판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시간이 멈춘 듯 한 신기한 광경에 빠져 있다가, 원래색이 그런지 누런 옛날식 스텐레스벽 건물앞에 멈춰 섰다.
한참 멀뚱히 보고 있으니 가계 앞에서 동네사람들과 이야기하시던 주인아주머니가 “참 옛날식이지요? 요즘 사람들 이런 건물 있는지도 모를꺼라.” 하며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이 건물이 건축법상 합병을 안 하면 따로 개보수를 못해요. 그러니까 오십년째 그대로인거야.” 하고 허허 웃으신다.
특히나 여기 계단이 정말 구식이라며 안보이던 문을 열어 계단도 보여주신다. 주방위로 솟은 계단은 사다리 같기도 한데 2층은 그래도 꾀나 널찍하고 내부는 깨끗하게 단장해 놓았다. 신기해하고 있으니 아주머니가 안에도 찍고 편하게 해보라면서 사람 좋은 웃음한번 씨-익 짓는다. 쉬엄쉬엄 보라시더니 선뜻 요구르트도 하나 꺼내준다.
‘옹골찬 낚지볶음’을 49년째 운영하고 있는 하지윤(63)씨는 할머니라 하기엔 너무 젊은 얼굴이지만, 중앙동일대 역사를 얼추 반백년 봐온 산증인이다. (051-462-7002)
“이 일대 참 선박회사가 많았지, 지금은 인쇄소가 들어섰지만, 옛날 시청 자리는 저기 돌아나가 맞은편쯤, 법원도 그 옆에 있었지…” 마치 옛날지도를 펼쳐보고 계신 듯하다. 20년 전만 해도 여기가 부산경제를 책임질 정도로 회사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점심과 저녁장사가 반짝하는 것이 중앙동 장사 특징이란다.
“이런 말 이제 쓰진 않지만 한자로 급사라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일본어로는 잔심부름꾼인데, 고등학교 막 졸업한 아이들이 일하고 여기서 꼭 밥먹고 갔지. 지금은 애엄마도 있고, 손주 데려 오는 사람들도 있으니 오래 장사하면 이런 게 재미있어요.” 불과 25년 전만해도 40계단 근처에는 일본인들도 제법 남아있었고 흔히 야쿠자라던 사람들도 그 계단에 늘어서서 ‘오야붕’ 이 걸어 내려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 험한 시대도 겪고 15년 전 최루탄 맞으며 학생운동 하는 것 격려해가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일하셨다고. “요즘이야 냉각기가 있지만, 옛날엔 없었거든. 13℃ 올라가면 낙지는 다 죽으니 이 길로 얼음장수도 다녔어요. 아니면 내가 자갈치에서 지고 왔고. 얼음이 한 포대에 300원이었는데, 요즘엔 냉각기가 낫지요. 그래도 지금 낙지랑 야채 아침마다 사고, 점심까지 뜨거운 물로 그릇들 샤워시키고 하는 건 매한가지고.” 조금 변한 게 있다면 손님들이 외국인이거나 중년이니 자식 건강 챙기듯이 매운맛을 조금 줄인 정도. 당뇨나 혈압 걱정 없이 맵게 먹고 싶다면 말만하란다.
청량고추 1년 삭힌 것에 물엿 넣어 버무린 매콤 달콤한 반찬도 있는데, 어떤 손님이 특히 좋아하는지 입맛까지 다 기억한다고. 낙지볶음만 해온 고집도 한결같지만 곁들이는 여섯가지 반찬도 49년 전 그대로 라니 이게 바로 전통이 아닌가 싶다. “반찬 맛은 안변하니까 그 맛에 오는 사람도 있는데, 그럼 좀 챙겨주지요. 손님들은 그래서 친정 온 것 같다나봐 오호호.” 한결같은 음식 맛도 비결이지만 맛깔나게 건네는 할머니 말솜씨도 49년 단골을 만들어내는 이곳 힘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누구하나 비 맞고 돌아갈까 놓고 간 우산 찾으러 올까 해서 모아놓은 우산들을 보면서 주인 할머니 가게를 친정집처럼 느끼는 손님들의 마음도 이해할 것 같았다. “내가 옛날 사람이라 밥보다 비싼 커피를 먹는 요즘 사람들을 이해하긴 힘들지만, 싸고 푸짐하게 매콤한 것 그리우면 오라구.
아들딸 있고 일안해도 되지만 난 뭐 여기 떠날 생각 없으니까요. 이 가게가 구식이고 일하는 게 힘들어도 난 연금보다 이 일이 훨 좋거든.” 할머니 배웅을 받으며 다시 떠나는 길은 왠지 명절날 시골에서 돌아오는 기분이다. 따뜻한 인심 옛날건물들 많은 중앙동이지만, 최근 남포동을 중심으로 광복로가 정비되면서 다시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오랜 전통가진 가게들이 명맥을 함께하고 있으니 참 다행인 일이다. 고요한 원도심에도 길하나 새로 나고 건물하나 생기니 사람들의 물결은 빠르게 이동하고, 거기에 휩쓸리듯 이곳도 조금씩 변한다. 이런 세월의 흥망성쇠 속에 ‘길’이란 것이 북적이는 번화가에서 대로변 골목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은 어쩌면 순리일지 모르겠다.
60년 중앙동 터줏대감, 천안곰탕 이제는 ‘골목’이 된 이곳에 터줏대감이라 불리며 60년을 지켜온 곰탕집이 있으니. 지금의(정비된) 광복로를 조금 벗어난 골목에 자리한 ‘천안(天安)곰탕’이다. (051-245-5695)
이 곰탕집 주인 김동현(53)씨는 1951년부터 운영된 이 곰탕집을 2대째 운영하고 있다. 처음 일어에 능하시던 아버님이 일본인과 한국인들 상대로 장사를 시작했다. 알음알음 곰탕 맛이 퍼져 서울에 서울깍두기가 있다면 부산에 천안곰탕(당시 천안도라무)이 으뜸이라 할 정도였단다. 시멘트 바닥에 탁자대신 드럼(ドラム)통을 박아 그 안을 따뜻하게 해 손님들 춥지 않게 대접한 마음이 천안곰탕을 60년을 지킨 원동력이다.
아들인 김동현씨도 그 마음을 이어받아 변치 않는 맛을 지켜나가고 있다. 다른 집과 달리 커다란 이곳 솥에서 펄펄 끓는 국물은 그간 노하우가 녹아있어 쉽게 흉내 내기 힘들다고. 중앙동에 시청이 있을 때는 역대 부산시장님들은 물론이고 경찰청 법원등도 지척이라 관공서 직원들과 부산의 대학원 총장까지 유명한 분들은 한 뚝빼기씩 꼭 하러 찾던 곳이란다.
60년이 흘렀다보니 이제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지만, 여전히 옛 기억에 들르기도 한다니 60년을 한결 같이 찾는 손님들도 대단하다. 60년이 되다보니 자신도 어느덧 오십 줄에 들어섰더란다. 젊은 시절 카투사 1기생으로, 2대를 이어 가계를 단장하고 꾸려 온 사장으로, 중년을 고신대 영어강사로 참 바쁘게 살았지만, 가장 값지게 남은 것은 그래도 이 천안곰탕이라니 그가 가진 가게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은 남다른 것 같다.
그러면서 88년 한국에서 처음 발간된 맛집 소개책 전국편에 실린 자신의 가게사진을 보여준다. “부산은 딱 네 곳 실려 있는데 여기 우리 집이 나와 있지. 여기 이모들도 몇 십년을 함께했고 이분은 돌아가셨고.. 오셨던 손님들도 그렇고, 다 기억이 나요. 이 책은 이제 희귀하기도 하지만, 우리 가게에 가보 같기도 한 책이지요.” 지금은 잠시 골목이지만, 길이라는게 항상 흥망성쇠가 따른다며 여유 있게 웃으신다.
지금도 이곳은 토박이 손님과 더불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을 비롯 각국 관광 사이트에 이곳이 전통 있는 곰탕집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최근 롯데 백화점이 들어서고 홍콩 직항 페리가 운행되면서 관광객 수가 더 늘었다고 한다. “아내는 일본어에 능하고, 저는 중국어를 조금 해요. 영어는 두말할 것 없으니 한끼 맛있게 대접하고 부산을 제대로 소개하는 것도 저희집 몫이지요.” 세계인의 입맛과 마음까지 사로잡겠다는 당찬 포부는 60년 세월 지켜온 자부심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것 같다.
원도심만의 넉넉하고 편안한 정취 옛 도심이라지만 사람 사는 냄새는 이곳이 더 진하다. 복잡한 도심보다 거닐면서 마음 편하고 신선했던 느낌은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하기 힘들다. 골목골목 찾아 다니며 찍는 옛 정취와 더불어 맛과 실력으로 지켜온 여러 가게들을 지나노라면 장인정신이 전해질 정도다. ‘옹골찬 낚지볶음’과 ‘천안곰탕’ 외에도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곳들이 중앙동에 산재해있다. 100주년을 맞은 '부산 우체국'을 비롯해 62년 된 양복점 '국정사(國正社)', 부산갈매기를 뜻하는 51년된 빵집 '백구당(白鷗當)'도 중앙동과 광복동 일대 오래된 가게이다.
이외 '할머니회국수집', 49년된 '원산면옥(元山麵屋)'까지 골목 곳곳에 자리한 가게들은 이제 빵집, 밥집 하기엔 섭섭할 정도의 역사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어느 도시에나 번화가가 있다. 그곳 너른대로는 차가 가득하고 주변은 높은 주차빌딩과 상점들이 가득 찬 높은 건물이 우뚝선 모습일 것이다. 북적이는 사람들, 그 옆에 외국이름을 달고 있는 프렌차이즈점이 늘어선 거리, 당신이 오늘 찾을 곳도 아마 그러한 번화가 인가? 시간이 멈춘 듯 한 한적한 옛 도심을 걸어보는 것도 아마 전혀 구식 같은 소리는 아닐 듯하다.
심은주 기자
[2010년 6월 30일 9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