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1일

골목이야기

정겨운 농촌마을‘ 예술’옷 입고 재탄생

골목이야기<16> 기장 대룡마을
 
 
 ‘대룡마을’은 부산과 울산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인구 150여명의 작은 마을이다. 큰용이 살았다는 전설로 인해 ‘대룡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의 정확한 주소는 기장군 장안읍 오리.
 
이 작은 마을은 예술마을, 체험마을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기장에서 제법 유명한 관광명소가 된 곳이기도 하다.
 
 대룡마을을 감히 예술마을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유는 젊은 예술인들의 공동창작촌인 ‘아트 인 오리’때문. 지난 2007년 행안부가 시행한 ‘살기 좋은 지역마을 만들기사업’ 30개 마을 중 한 곳으로 선정되면서젊은 작가들이 그 기획을 맡아 예술촌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으며, 1천여 평 규모의 창작촌에 현재 입주작가는 13명.
 
그 중 3명은 이 곳에 거주하며 기본적인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햇살 좋은 한가로운 가을날에 찾은 대룡마을은 마치 고향에 온 듯 푸근함이 감돈다.
 
마을입구에는 최근 몇 년간 손님맞이에 분주했을 돌장승이 멋들어진 소나무아래 자리 잡고 있다. 바로 몇 걸음을 떼어놓자 나무로 만든 큼직한 건물이 관람객의 호기심을 불러온다.
 
가까이 가보니 방앗간이란 작은 글씨가 이내 궁금증을 풀어준다. 예술촌이란 명성답게 방앗간조차도 평범함을 거부한 듯하다. 길은 마을입구의 방앗간 앞에서 세 개의 골목으로 나누어진다. 왼편 골목길을 선택하면 ‘작업실 오리’라는 팻말이 가리키는 한옥집이 나타난다.
 
‘작업실 오리’는 김미희 작가의 도자기 작품을 비롯해 오리를 모티브로 한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 고풍스런 느낌의 기와를 얹은 대문은 활짝 열려있었지만 그동안의 유명세에 제법 몸살앓이를 한 흔적을 골목입구의 글귀에서 느낄 수 있다.
 
도자기 공방이자 가정집이기도 한 이곳은 느닷없는 불청객들의 예고 없는 방문에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글귀를 녹슨 우편함아래 적어놓았다. 관람을 원할 경우 불쑥 발을 들여놓기 보단 주인을 먼저 부르는 것쯤은 그리 어렵지 않은에티켓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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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입구에서 가운데로 나있는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특이한 모양의 조각품들이 곳곳에 나타난다. ‘대룡’이란 마을 이름답게 돌을 딛고 하늘로 승천하려는 용의 형상을 한 조각품, 원두막과 의미를 짐작키 어려운 또 다른 조각품이 마을회관과 마주보고 있다.
 
마을회관과 이어진 대룡역사박물관에는 농업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박물관 앞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한 플라타너스 나무 기둥에는 커다란 나무애벌레가 볼거리를 보탠다. 웅장한 한옥건물 대룡마을 복합회관.
 
최대인원 50명까지 민박이 가능하다는 회관에서는 전통한옥 생활체험도 즐길 수 있다. 마침 이곳에선 기장예술제 기간을 맞아 사진, 서예, 볏짚공예 등의 작품전시가 한창이다.

시골마을 곳곳에서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조각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전시가 수시로 이루어지니 그 어떤 전시장이 이보다 더 훌륭할 수 있을까. 언뜻 보면 그저 평범한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살펴보면 마을 곳곳이 전시장이다.
 
게다가 같은 작품일지라도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자연전시장 때문에 그 느낌 또한 매번 다를 수밖에 없다. 마을회관 위로 비포장 길이 계속 이어져있고, 그 길을 계속 따라가면 삼림욕을 할수 있는 소나무 숲과 닭농장, 한우농장, 꽃사슴농장, 배밭체험장과 여름이면 연꽃이 가득하다는 뒤골 소류지 등 자연이 주는 즐
길거리가 다양한 마을이다.
 
농촌체험과 예술체험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대룡마을. 하지만 마을골목 곳곳을 더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 발길을 돌려 다른 골목길로 향해본다. 비록 흙길이 아닌 포장된 골목길이긴 하지만 기와를 얹어놓은 나지막한 흙담과 낡은 시멘트벽길, 새로 지은 건물들 사이 낡은 슬레이트 지붕들이 주는 시골의 정겨움에 현대적인 조각품들이 곳곳에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한층 더한다.
 
마을입구 방앗간을 끼고 나있는 또 다른 골목길로 방향을 틀자 주민들의 집집마다 도자기로 만든 문패가 특이하다. 독특한 대문도, 벽을 장식하고 있는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모양의 조각품도 눈길을 끈다.
 
오곡 풍성한 가을답게 추수를 끝낸 농가의 앞마당과 골목길에는 탈곡한 벼들이 따사로운 가을햇살 아래 널려 있고, 흙담 위로 솟은 감나무에선 발갛게 감들이 익어가니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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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가을하늘아래 자연이 전시한 예술품들 때문에 한동안 눈길이 멈춰진다. 소를 키우는 축사가 많았다는 대룡마을.세월과 함께 그 많았던 소들이 사라지면서 소 축사와 폐가들이 예술가들에 의해 창작의 공간으로 그리고 주거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이곳.
 
골목길을 따라 오르니 조각가남편과 도예가 아내가 공동으로 작업한다는 ‘space223’이란 작업실이 나타난다. 전시된 여러 작품들 사이에 마을 주변 곳곳에서 보았던 나뭇가지로 만든 짐승모양의 조형물들이 이곳에도 전시되어있다. 조각가 문병탁씨가 벌목으로 죽은 나무들을 묶어 만든 작품들로 인간이 파괴한 자연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난 것이다.
 
작업장 한쪽에는 도자기, 목공예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장이 마련되어 있고, 체험장 뒤 독특한 도예 전시장 건물은 나무를 잘라 장식한 벽이 너와집을 연상시킨다. 전시된 도자기와 다양한 도예작품들은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다.
 
space223의 관람을 마치고 오른쪽 골목길로 내려가니 또 다른 조각품들이 즐비하다. 아무렇게나 놓여 진 조각품들을 대하자니 마치 흙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기분이다. 예술제 기간에 찾은 마을은 곳곳에서 작품전시가 한창이었는데 이곳 작업장 건물 옆에서도 그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장 바로 옆 또 하나의 매력적인 공간 ‘무인카페’. 커피나 음료를 먹은 후 정해진 가격대로 양심껏 ‘coffee pay’ 함에 돈을 넣으면 된다. 작가와 방문객 모두에게 더 없이 자유로운 공간이다. 카페의 내부는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장식되어 있고, 마을을 소개하는 안내장과 예술제를 소개하는 책자들도 눈에 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안내책자는 무인카페 가까운 어느 집 옥상위에 시멘트 고양들이 설치되어 있단다. 한 잔의 커피와 함께 안내책자를 대충 살펴보고 나니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무인카페를 벗어나 내리막으로 향하는 골목길로 접어들면 왼편으로 예쁜 벽화가 그려진 건물과 오른쪽의 ‘오리공작소’라는 작업장이 있다.
 
낡은 벽 아래 맨드라미 곱게 핀 길을 따라 다시 마을입구에 다다르니 아까 미처 보지 못한 특산물판매장 안에서는 멋진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마을을 소개한 안내도에 따라 또다시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겨보니 마을 안팎 곳곳에 스며든 예술품들이 대룡마을 전시장을 떠나는 걸음을 아쉽게만 한다.
 
유정은 기자
[2011년 11월 18일 25호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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