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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야기

자연과 문화와 인간이 공존하는 길

 
달맞이 언덕

달맞이 길은 강원도 인제를 출발하여 태백 포항 울산 등을 거쳐 내려온 31번 국도가 계속 이어지는 길이다. 산을 넘고 돌고 돌아 이어진 길이 와우선 능선을 열다섯 번 굽어 돈다고 해서 달맞이 길을 15곡도(曲道)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산 해운대의 달맞이 언덕만큼 많은 아픔과 동시에 많은 발전을 이룩한 곳도 드물다. 1980년대 초 전 국토의 공원화 사업 즈음에 오늘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기 시작한 달맞이 언덕은 해운대와 사이에 있던 골프장이 철거되면서 시민들의 자연스런 접근이 가능해졌고, 이후 고급 빌라들이 들어서고 음식점들이 자리 잡았다.
 
더불어 마린, 열린, 동백아트센터 등의 갤러리들이 여기저기에 둥지를 틀면서 달맞이 언덕은 부산의 대표적인 데이트 코스이자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 과정에는 무분별한 난개발로 신음하던 자연과 그에 대한 시민 사회의 반발 등 많은 고난들이 있어왔고, 최근 주공AID아 파트의 재건축 사업 분양으로 다시금 큰 반향을 불러 오고 있기도 하다.
 
시민 사회의 반발을 줄이고 자연과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방편으로 국내 아파트 재건축 사상 처음으로 국제 현상공모를 통한 설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달맞이 언덕의 능선을 따라 테라스하우스와 아티스트 빌리지 등 첨단 IT를 기반으로 한 고급 주거시설을 조성하겠다는 것인데, 최근 급성장 하는 부산의 부동산 바람을 업고 이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겁다.
 
하지만 이런 화두들과는 별개로, 오늘의 달맞이 길은 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기에 손색없는 풍경들로 가득하다. 어제, 혹은 내일의 달맞이길이 아닌 오늘의 달맞이길이 가진 아름다움과 특별함이 부산 시민 뿐 아니라 외지인들의 발길을 끌고 있는 것이다.
 
해월정 뒤편으로 늘어진 산책로는 초여름의 짧은 비에 그 푸름이 더욱 짙어졌다. 잘 닦인 산책로와 그 길들을 에워싸고 있는 숲의 맑은 공기는 도심에서 한 발짝 벗어난 자연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게 한다.
 
최근에는 달빛을 맞으며 걸을 수 있도록 달맞이길, 달맞이동산, 오솔길, 어울마당을 따라 조성한 2.2km의 <문텐로드>가 특허청에 상표 등록을 마쳤단다. 멀리 해변이 보이는 숲길을 달빛을 맞으며 걸을 수 있는 길이라니,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이다.
 
문텐로드에서 마지막 코스로 가는 길에 위치한 해월정에서 산책로를 빠져나오면 탁 트인 전경으로 해운대 해변과 동백섬이 보인다. 숲길을 걷다 빠져나온 길에서 보이는 해변의 풍경과 그 해변을 따라 공사가 한창인 고층 건물들. 한걸음 멈춰 그 장면을 한참 바라보고 있게 된다.
 
달맞이 언덕의 아름다움이 그 풍성한 자연에 있지만은 않다.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들어선 달맞이길의 가장자리, 카페와 카페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 주택가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너나 할 것 없이 개성 있고 아름답게 지어진 고급 빌라와 주택들, 발길을 돌릴 때마다 나타나는 녹색 풍경, 조용하고 단정한 길과 벽담들.... ‘주택가’라고 하면 이런 풍경이 어울릴 것 같지만, 정작 오늘날 도시의 주거문화는 골목과 마당이 아닌, 아파트와 아파트가 모여 단지를 이루는 곳을 ‘주택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비록 고급 주택과 빌라들이 모여 있다고는 하나, 소담하고 단정한 달맞이 언덕의 골목은 사람이 사는 곳의 온기가 느껴진다.
 
거기에다 1999년 달맞이 고개에 최초로 문을 연 화랑인 ‘마린 갤러리’를 시작으로 동백아트센터, 칸지, 열린, 이배, 그리고 가장 최근에 생겨난 ‘해운대 아트센터’ 등 19개의 갤러리들이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는가 하면, 1992년 추리문학 전문작가인 김성종이 설립한 추리문학 전문 도서관 ‘추리문학관’이 20여 년 동안 추리문학의 보급과 발전에 힘쓰고 있기도 하다.
 
한가로운 오후에 어울리는 갤러리와 조용한 카페, 달빛과 함께 명상하며 걷는 오솔길, 그 한편으로 수평선을 드리운 해운대의 전경까지. 거기다 달맞이 어울마당에선 토요일마다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고, 토요일이 아니더라도 부산의 문화예술인들이 속속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산과 바다, 그리고 문화와 인간이 함께 어우러진 달맞이 언덕은 국내에 흔치 않은 아름다운 길로서, 동양의 몽마르트라는 찬사가 무색하지 않다. 해운대 자연경관을 보존해야한다는 입장과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로 오랜 갈등을 겪어 온 달맞이 언덕.
 
그러나 국제 현상 공모를 통한 설계로 달맞이 언덕의 능선을 따라 주거시설을 조성, 달맞이 언덕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쪽으로 개발을 진행하겠다는 주공AID아파트 재건축 사업의 행보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많은 갈등과 화해, 절충과 숙고가 있어온 만큼, 난개발이 아닌 자연과 인간을 모두 아우르는 재개발로서 달맞이 언덕의 아름다움이 언제나 부산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송나영 기자
[2011년 6월 20일 20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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