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3일

골목이야기

시간도 멈춰버린 꿈꾸는 동화세상

골목이야기<3> 문현동 안동네 벽화거리
 
문현동-진남로 이어지는 갈마산 기슭 5만 5천m2
6.25이후 형성된 판자촌…47점의 벽화, 희망심어줘
2008년 주민·봉사자 참여 생동감있는 마을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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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대표적인 달동네 중 하나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바로 문현동 안동네 판자촌이 아닐까 싶다.

남구 문현동에서 부산진구 전포동으로 이어지는 진남로 왼쪽의 갈마산 기슭 5만5천㎡에 무허가 목조 및 슬레이트 건물 250여 채가 모여있는 `문현 안동네’는 6.25이후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곳이다. 판자촌이다 보니 그동안 어둡고 칙칙한 동네의 대명사로 여겨 졌으나 2008년 거리벽화 그리기를 통해 밝고 화사한 분위기로 거듭났다.
 
부산시에서 노후 불량주택들이 밀집한 재개발 대상지의 경관과 주거환경 개선은 물론이고 볼거리 명소를 만들기 위해 자원봉사를 통한 ‘거리벽화 사업’ 을 추진하기로 하고 그 첫 대상지로 선정된 것이다. 주민들과 학생, 시민 등 자원봉사자 230여명의 3개월간의 노력으로 낡은 시멘트 담벼락은 화사한 파스텔톤의 동화로 채색됐고, 갈라진 벽 위로 ‘따뜻한 사람들의 벽화이야기’ 라는 주제로 ‘봄을 펼치는 아이들’, ‘전화하는 아이들’ 등 47점의 그림이 희망을 꿈꾸며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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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벽화마을’은‘ 2008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주거환경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전국적인 명소로 떠올랐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사진동호회나 벽화동호회등 주말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문현동 안동네의 벽화거리가 좋은 반응을 얻자 덩달아 감천동을 비롯해 도심 곳곳에 벽화거리가 조성되기 시작해 벽화거리도 문현동 안동네는 원조인 셈이다. 평일의 벽화거리는 다닥다닥 비좁게 붙어 앉은 집들에 비해 너무 고요하고 적막해서 마치 사람들이 살지 않는 듯한 분위기를 띈다.
 
들리는 소리라곤 집들의 위에 자리잡은 돌산공원의 노인들이 가볍게 휘파람 부는 소리와 ‘기장 미역 한보따리 천원’ ‘홍합 한보따리 3천원’이라고 외치는 트럭의 소리 뿐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벽화거리 안내판이 있지만 사실 무의미하다. 워낙 미궁처럼 얽힌 곳이라 그냥 골목이 나오는 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곳곳에 숨은 벽화들이 하나씩 나타난다.

정말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의 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층층이 쌓여진 집들과 그 슬레트지붕을 보노라면 마치 이 곳은 시간이 6.25이후로 정지해버린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과거의 시간 속을 헤매고 다니는 느낌이다. 이 문현동 벽화거리가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공동묘지 위에 지어진 집들이라는 것. 마을 곳곳 집안이나 집 밖에 비석이 하나씩 차지하고 있어 으스스한 느낌도 드는데, 생각해보면 공동묘지에도 불구하고 집을 지었을 당시 주민들의 절박함이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비석에 대해서는 설이 또 하나 있는데, 1985년 산사태 당시 매몰되어 죽은 아이들의 무덤이라는 게 그것. 공동묘지가 있다는 이유로 괴기한 분위기마저 느껴졌을 이 거리는 벽화로 그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됐다.

입구에서부터 아이들이 노는 벽화가 이어지는데, 특히 동물들과 함께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주로 많다. 그래서인지 이 곳에서 개나 고양이도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

골목에서 검은 개 한 마리가 내내 어슬렁거려도 쫓는 사람도 없고 그냥 다들 무심히 보고 지나간다. 곳곳에 고양이들이 따뜻한 오후 햇살을 즐기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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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도 다양하다. 어느 집은 벽화로 창문을 내놓았고, 또 다른 집 담에는 아이들이 서로 전화를 하고 있다. 바다를 담은 집도 있고, 나팔꽃이 만발한 집도 있다. 그림화분이 놓여있는 곳도 있고 먼 이국땅 여성들이 줄지어 걸어다니는 담도 있다. 아이들이 야구를 하고 구름 아이스크림이 둥둥 떠다니기도 한다. 정말 위험하고 좁은 골목길 사이에 자리한 철학관 담장은 분홍색과 파란색 장미꽃이 피어있다.
 
 
온통 아이들과 자연과 동물들이 뛰어노는 아름다운 곳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옆에 현대식 고층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벽화로 인해 오히려 더 이 판자촌이 인간내음이 물씬 풍기는 마을로 변모했다.

돌산공원 앞길은 등산로로 이어져 간간히 등산객들이 보이고 또 등산객을 상대로한 식당도 제법 눈에 띈다. 낮시간에도 돌산식당에는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의 떠들썩한 소리들이 간간히 새어나와서 왠지 더욱 정겹다. 아직도 자리잡고 있는 공동화장실 벽의 알림판도 재미있다.

찾아가기도 그리 어렵지 않은데, 차를 이용할 경우 문현동 현대아파트 2차를 찾아가면 산 위 도로에 벽화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대중교통은 지하철 2호선 문전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벽화마을앞에서 내리면 된다. 언젠가는 재개발되어 사라질 마을. 그 때까지라도 아름다운 벽화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벽화마을로 남아주기를.
김애라 기자
[2010년 2월 20일 4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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