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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야기

부산 서민들의 삶이 밴 양념의 맛 “그윽”

 
골목이야기<12> 초량동 돼지갈비골목

돼지갈비… 영양가 높아 서민·노동자 든든한 영양 보충식
정성과 양념이 비결… 한국전쟁후 50여 점포 성업 명성·맛 그대로
 
부산엔 유독 돼지고기를 주제로 하는 골목이 많다.
 
돼지 뼈를 고아낸 국물에 삶은 돼지고기를 넣은 부산의 명물 돼지국밥과, 매콤달콤한 양념과 재빠르게 볶은 돼지두루치기, 뼛속 부드러운 살까지 살살 발라먹는 돼지감자탕, 큼지막한 족발을 성겅성겅 잘라 내오는 돼지족발과 삼겹살을 얇게 썰어 감칠맛 나게 구워먹는 대패 삼겹살, 부드럽기도 쫄깃쫄깃하기도 한 돼지껍데기에, 구수한 냄새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통통한 순대까지 온갖 돼지와 관련한 음식들이 부산 곳곳에 무리 지어 독특한 돼지 골목을 만들어 낸다.
 
가난한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던 시절, 노동자들이 소주 한잔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고기로 돼지고기만 한 것이 있었겠는가.
 
돼지고기는 값이 싼 데다 중금속을 해독하는 효과도 있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노동자들에게 안성맞춤인 음식이었다.
 
이런 골목들 중 특히 '초량동 돼지갈비골목'은 부두의 노무자들에게 고된 노동 후 달콤한 휴식이 되어주었던 고마운 골목이다.
 
한국전쟁 직후 원조물자가 들어오는 부산항에 노동자들이 대거 몰려들었고, 부산항에서 가까운 초량시장에 저렴하면서 영양가 높은 음식인 돼지갈비를 파는 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초량동이 아닌 곳에도 ‘초량 돼지갈비’라 는 상호가 전국적으로 브랜드처럼 쓰일 만큼 초량동의 돼지갈비는 그 명성이 대단했다. 지금도 초량시장을 지나 부산고등학교 쪽으로 큰길가와 안쪽 골목까지 돼지갈비 전문점 50여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 갈비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초량역 1번 출구에서 나와 조금 걸으면 ‘초량 돼지갈비 골목’이라고 적힌 커다란 입간판이 나오고, 그 입간판 뒤편으로 늘어선 돼지갈비 집들을 따라 걷다보면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마다 빼곡한 돼지갈비 집들을 또 만날 수 있다.
 
여름 한낮의 돼지갈비 골목은 지나치리만치 한산해 보이지만, 돼지갈비 집마다 손질 중인 고기의 양이 밤이면 모여들 손님들의 수를 가늠케 한다.
 
세월이 지난 만큼 연탄불은 숯불이나 가스불로 바뀌고 주인 바뀐 집들도 많지만,갈비짝 채로 주문한 고기를 직접 부위별로 손질하여 마늘과 생강이 듬뿍 들어간 양념에 재워 숙성시키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초량동 돼지갈비가 지금까지 부산의 돼지갈비 본가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데에는 이런 정성과 양념 비법이 한몫 했을 것이다.
 
은하갈비, 남해갈비, 울산갈비, 진주갈비, 싱싱갈비 등 척 보기에도 연륜이 느껴지는 갈비집들 중 특히 은하갈비는 블로거들 사이에서 그 이름이 높다 .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최고 전성기를 누리다 지금은 많은 집들이 문을 닫거나 옮겨 초창기에 문을 열었던 가게는 3~4곳이 전부인데, 그 중 상호도 주인도 바뀌지 않은 유일한 집은 은하갈비 뿐이라고.
 
다른 가게들은 2세대가 물려받거나 자리를 옮긴 경우가 많단다. 마침 고기를 손질 중인 은하갈비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장님은 싱싱갈비, 남해갈비등 다른 갈비집도 가보라며 소개한다.
 
많은 갈비집이 있지만 가게마다 간직한 손맛에 따라 맛이 달라 각자 독특한 맛을 가지고단다. 하긴, 이 많은 가게들이 다 같은 맛을 가지고 있거나 우열이 확연히 갈린다면 이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남긴 어려웠으리라.
 
그 예로, 은하갈비의 고기가 자작하게 졸인 달달한 양념이 특징이라면, 울산집은 야들야들 부드러운 갈매기살, 남해집은 단맛보단 감칠맛 나는 짭조롬한 양념이 특징이란다.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코끝 저리게 번지는 골목을 오늘은 어느 집에 가볼거나, 휘적휘적 헤매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1980년대, 날개 단 드럼통, 그 안에서 벌겋게 타고 있었을 연탄과 두꺼운 불판 위에선 양념갈비가 자글자글 익어갔을 것이다.
 
달고 짜고 고소한 냄새가 진하게 풍길 때 쯤이면 갈비짝들이 불판 위에 눌러 붙었을 테고, 노란 월급봉투를 손에 쥔 부두 노무자들은 자식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 한점 한점에 땀을 씻고 웃었을 것이다.
 
그런 인생들이 이 골목을 채운 날들이 모이고 모여 초량 돼지갈비 골목이라는 명성을 만들어내고, 그 추억을 간직한 아이들이 다시 아버지가 되어 이곳을 찾고 있다.
 
이제 80년대의 명성은 다소 찾아보기 어렵지만, 부산의 맛 기행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골목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 초량동에서 만나는 돼지갈비엔 부산 사람들의 삶이배어 있고, 묵은 여독과 하루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힘이 있다.
 
수십 년 동안 서민들의 좋은 먹을거리가 되어 준 돼지갈비 한 점으로 근심을 잊어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송나영 기자
[2011년 7월 15일 21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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