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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여성이야기

어사암에 새긴 어사와 기생의 사랑

잊혀진 우리의 이웃여성<기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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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읍 죽성리 두호마을 남쪽에 있는 매바위를 어사암이라 한다. 조선시대 고종 임금 때인 1883년 기장현 일광면 독이포(지금의문동리) 해창에서 조공으로 바칠 대동미를 실은대동선이 부산포로 가다 죽성 앞바다에 침몰하였다.
 
극심한 가뭄으로 굶주림에 시달리던 여기 어민들은 물에 빠진 볏섬을 건져 식구들과 먹어 버리자 관련자 모두가 기장관아에 붙들려갔다. 그리고는 집집을 수색하여 곡식을 앗아갔고 옥에 갇힌 주민은 고문과 가혹행위로 죽기까지 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듬해 볏섬 도난사건과 고문사건을 조사키 위해 이도재(1848-1909)를 어사로 파견, 진상조사를 하게한다. 어촌주민들은 기장관기 월매로 하여금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하소연하고 관아에서 가혹행위를 가해 건져낸 볏섬을 과장, 수탈까지 자행했다고 진정 하게 한다.
 
열아홉 살 월매는 이도재가 주민 편을 들도록 설득하였다. 일종의 미인계였다. 현장 조사차 매바위에 온 어사에게 월매는 주민들 억울한 사정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매바위에 주안상을 차리고 가무로 어사의 노고를 위로했다. 이때 지은 어사 오언절구를 바위에 새겼으나 세월이 흘러 마모됐고 대신 어사와 기생의 이름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웃의 고통을 나누고 이웃에 덕을 베푸는 데서 시작한 두사람 사랑의 정표인 것이다. 이후로 여기 갯바위를 어사암이라 부른다. 어사 이도재의 조치로 무사 방면된 여기 어민들은 이도재 불망비를 세워서 그 공덕을 기려 왔다.
 
참고로, 최근 기장군에선 주민 암행어사 제도를 도입했다. 그 모티브가 바로 어사 이도재이고 여기 어사암이다.
 
사진 동길산
[2013년 1월 25일 제3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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