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1일

시네마 톡톡

‘부산발 급행열차에 오른 당신, 이제부터 함께 달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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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일 영화의 전당, 거기... 뜻밖의 공유가! 한 손에 부드러운 카푸치노가 아닌, 부산행 열차티켓을 들고서. 당신은 영화 <도가니> 로 그를 기억하는가? 어둡고 습한 얼굴, 소심하고 무기력한 선생님? 아니면, 남한으로 망명한 최정예 특수요원 <용의자> 공유? 이도 저도 아니면, 첫사랑을 찾아준다던 <김종욱 찾기>의 그 달콤한 공유? 뭐 어쨌든 공유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을 듬뿍 받아 마땅한(?) 공유할 수 없는 대한민국 배우다.
 
지난 2015년 여름,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는 복도나 화장실에서 알 수 없는 괴성이 수시로 들렸다. 대낮부터 여직원들의 기겁 비명이 이어졌고, 황당한 것은 곧이어 킥킥거리는...기괴함의 반복으로 도저히 업무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두어 달 동안이나! ..진짜, 뭐야, 대체!!???
 
최근, 영화 제목이 <해운대>,<국제시장>,<영도>,<부산행> 이게 무슨 신의 한 수? 이름만 갖다 붙이면 기본이 천만을 찍네! 부산 언저리 어딘가의 지명만 갖다 붙여도 영화가 뜨니, 이게 뭔 일, 무슨 얘기냐고? 한마디로 부산에서 영화 찍으면 대박 난다는 말이지!!!!
 
천만 관객을 부른 국내 영화는 총 13, 그중 부산을 찍은 영화가 8편이니 이건 뭐 두말하면 잔소리 같은 얘기 아니냔 거지.
 
지난 여름은 피서 따위 갈 필요가 없었다. 수시로 들리는 비명소리, 공포에 찬 얼굴로 KTX 열차 칸을 헤집고 다니는 공유를 보노라면. 부산행 급행열차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가족과 친구, 연인을 가득 싣고 떠나는 유행성 좀비열차다.
 
변변찮은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는 숨 막히는 두 시간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하다. 한마디로 천만 관객을 죽여주는(?) 영화라는 얘기다. 느려터진 좀비에 대한 기억은 오! !, 성질 급한 신개념 좀비들을 상상해 보시라!
 
지난여름 두 달 가까이 영화 <부산행> 이 부산에서 촬영되었다. 부산영화제작지원 시스템의 지원을 톡톡히 받으며, 한 여름 수영만을 달군 좀비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열차 00씬은 철도차량정비 사업소에서 팍 팍 지원해 준 결과로, 그 수려한 영상을 스크린으로 보자니 부산 시민으로서 뿌듯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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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사회를 본 뒤, 나는 나의 동물적인 촉(?)을 믿고 주변 사람들과 진지하게 내기에 임했다. 천만에 한 표 던진다고. 이것은 좀비 영화가 아니라, 위기와 공포에 처한 인간들이 보여주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자, 가족 재난 영화다. 감독은 젊고 영리하며, 그의 전작들은 하나같이 내공 가득한 수작이다.
 
부산영상위원회가 그를 열렬히 지지해 준 이번 영화의 결과는 대박예감! 단연코 입 닫고 엄지 척! 할 수 있는 영화로서 당신을 거침없이 이 열차에 초대한다. 영화가 계속 진화한다 우리들처럼. 한국 영화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겁 없이 다양함을 시도하는 가운데 즐거운 비명이 여기저기 터진다.
 
칸느니 홍콩이니 세계 유수의 필름마켓에서도 예고편만 보고도 날개 달린 듯 영화들이 팔려나간다. 우리도 이제 승부를 걸만하다. 소위 말하는 콘텐츠 산업, 문화예술이 멀리 보면 이 되는 사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조상은 두되가 우수하고 예로부터 이야기를 잘 만든다는 얘기다. 그것도 우리 형편에 맞게 말이다.
 
영화 <부산행>의 순 제작비가 어림잡아 80억에서 100억은 든 것 같다.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 35억에 비추면 큰 투자 같지만, CG와 특효가 많은 걸로 보면 그리 큰 자본도 아니다. 만약 저 정도의 영화를 미국 시장에서 만들었다면? 제작비가 족히 500억이 나오는 그림이다.
 
그냥 그들은 돈 안 주면 상상을 현실로 옮기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의 열악함을 상상으로 채우고 기어이 만들어내니 대단한 재능이다. 오랜만에 영화 한 편으로 이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부산 올로케이션, 부산 첫 시사회, 배우들 부산 첫 방문, 우리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부산행 열차에 신나게 올라타야 할 것 같다.
 
지난 이야기를 하자면...최근, 언론과 대중들이 마그마처럼 폭발해 버렸다.
 
고유한 그만의 변두리 사랑 이야기 감독과 젊은 여배우의 영화 같은 이야기, 더불어 한류배우의 성()스캔들이다. 화양연화(花样年华)와 진퇴양난(進退兩難) 사이를 힘겹게 오가면서.
 
어제의 부러움이었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수치와 부끄러움이 되었다. 결론은 무혐의, 어쩌면 그냥 일상 같은 일들이 6월을 스쳤다. 대중에게 스타는 마치 종교를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누군가에게 스타는 종교가 되기도 한다.
 
대중은 힘겨운 현실에서 판타지를 원한다. 이미지, 이들의 실체뿐 아니라 내가 바라는 이미지를 원한다. 내가 아는 것이 이들의 실체이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다. 대중이 거부하는 그 순간까지, 이들이 처음처럼 온전하기를 바란다.
 
내가 먼저 돌아설 때까지. 대중의 사랑은 영원함도 없고 기다림도 없다. 잔인한 게 사랑이라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랑은 스타에게도 환상 같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부도덕성의 잣대가 이들에게 더 가혹하게 적용되는 것은, 교육적인 차원과도 맞물려 더욱 그러하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제공하고, 누군가는 가공하고, 대중은 또 그렇게 윤색으로 일조하고 있으면서도.
 
결론을 말하자면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한 단호한 처단 또한 서두를 일은 아니다. 대중이 만든 우상 같은 존재로 일시적이거나 한시적인 것으로서 사실 그리 큰 위안이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영화 같은 판타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되짚어 볼일이다.
 
어떤 누군가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고 혹은, 숨기거나 단속하고 있을 것이고. 여전히 뭣이 중한지 모르는 노 답들은 또 다른 사건을 열심히 만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중이 소비하는 반복된 이 이야기는 알고 보면 큰 차이 없는 인간사의 한 가운데 놓여 있다. 봐주자는 얘기가 아니라, 체념하듯 무심히 그들을 천천히 사랑하고, 멀리서 바라보고, 좀 천천히 내려놓자는 얘기다. 애정의 형태는 유사하고 반복적이다. 대중은 끊임없이 대상을 찾아 빠르게 소비하고 연소시키기에 속도는 조절해야 한다.
 
배우란 대중이 만들지만, 좋은 배우는 대중의 사랑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배우는 오히려 인생의 굴곡진 다양한 경험 속에서 배우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스타로 성장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으나, 좋은 배우로 성장하는 데는 오랜 숙성의 기다림이 요구된다.
 
직업상 곁에서 배우와 감독, 그리고 다양한 현장과 수많은 스텝들의 조합을 보면서 느낀 것은 배우는 많으나, 훌륭한 배우, 멋진 배우, 인생 전부가 배우인 배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부득이 그들은 아파야 하고 인내하며, 지리멸렬한 시간들을 대가로 우리 앞에 당당할 수 있다. 타인에 의한 생산과 가공이 아닌 진정한 자가발전의 시간이 요구되는 배우라는 직업. 인간을 느끼고 이해하고 발현하는 멋진 배우가 아니면, 오늘의 멋진 영화도 없다.
 
 
이경섭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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