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1일

시네마 톡톡

완벽한 결혼? 죽은 사람이 산사람 잡는(?) 고요한 서스펜스

 
 
수만 번의 지나간 봄과 앞으로 다가올 수만 번의 봄 사이에 낀 무심한 5월.

요사이 잦은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것은 아직 내 안에 습관이 되지 못하고 늘 바람으로만 맴도는 어떤 수행과제에 대한 강박, 이제는 무엇이라도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한낮의 햇살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이를테면, 매일 수 십 번 맘으로만 외치던 각오와 감정들을 그냥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기를 통해서라도 적재해 두어야 한다는 강박이 불쑥불쑥 치받는다. 살아가며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는 것 외에 생각보다 옵션이 많이 따라붙는다.
 
기억이 오락가락하는가 하면, 시도 때도 없이 울컥하고 목젖을 넘어오려는 혼자만의 설움이 있질 않나, 철철이 외로움이 따라붙질 않나, 속내와는 다르게 친절과 온화함으로 평정심을 연출 해야 질 않나, 구(口)력이 붙어 말 빨은 갈수록 쎄지는데 말 수는 줄이라 주문 하고 수입은 줄어드는데 지갑은 자꾸 열라고 한다.
 
이런 일상의 힘겨운 감당 거리들을 우아하게 억누르고 살아감을 ‘성숙’ 이라고 말한다. 성숙은 바꿔 말하면 인내와 깨달음으로 숙성된 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도달 할 수 없는데, 체화된 성숙이야말로 진정한 성숙됨이다.
 
알다시피 붙어사는 가족간에도 오랫동안 서로의 기질에 익숙한듯하여 속내를 보이면 대부분은 불편한 결과를 가져온다. 자신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란 경험상 자식을 키우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은 도전이다.

‘시네마 톡톡의 탄생은, 여성 리더들과 여성들의 다양한 삶을 투영하는 부산의 유일무이한 여성 뉴스가 새롭게 뉴미디어 시대의 비상을 꿈꾸는 지금, 가장 대중적 장르인 ‘영화’라는 이야기를 통해 여성 특유의 감성을 발현하고자 하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걱정인 것은 고단한 글쓰기에 용감하게 뛰어들었으나, 부족한 식견으로 이내 애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함이다. 이를 대신할 유일한 것이 있다면 일상의 숨겨진 것들과 불편한 진실에 대해 영화 속이야기, 그 주변의 것들을 가지고 솔직한 담론의 장을 여는 것.

‘사는 게 이런 거구나’ 그렇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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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향하는 남편과
현재를 살고 있는 아내,
조금씩 생겨나는 균열’

최근, 폭력성이 난무하는 스크린들 사이를 비집고 입소문을 내고 있는 가을을 닮은 영화가 있어 이렇게 첫인사로 대신한다. 결혼생활에 대해 어쩌면 습관처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영화다. <45년 후> 우리 관계... ‘괜찮다고 했지만...사실 그렇지 않아’

평온한 삶이라고 여기고 살았던 나날들, 결혼 45주년 기념일에 남편의 첫사랑의 소식이 도착했다. 그것도 곧 다가 올 기념일 행사를 준비하느라 한껏 들떠 있은 어느 날. 시신이 어느 깊은 산골짜기, 냉동상태의 젊디젊은 그 모습으로 꽁꽁 얼어있다는 사연이다.
 
편지를 받은 날부터 남편은 첫사랑과의 은밀한 추억에 대해 주절주절 염치없이 늘어놓기 시작한다. 호기심 반 질투 반으로 꾹꾹 참고 들어주던 아내의 인내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순간, 추억이 아닌 현실로 다가 온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 잡는(?) 격으로 그야 말로 죽은 첫사랑으로 인해 집안공기는 로맨스에서 서스펜스로 바뀌고 만다. 남편은 피우지 않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자다가 수시로 벌떡 일어나 다락방을 찾는다.
 
그렇게 이들 사이에는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급기야 결혼기념일 행사까지 망쳐버린다. 영화의 흐름은 잔잔하기 그지없지만, 배우들은 격 정적이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매 순간 진지하고 편안하지 않다. 45년이나 살을 부비고(한 장면 있음 ^^) 살아도 정년퇴직하신 선생님다운 우아한(?)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가 알고 있는 말을 다 할 수 없음이 잔인하다.
 
결혼생활 45년? 해체되는데 45분이면 족하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만약에 나라면 어쨌을까?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연출의 탁월함이다. 언제 치고(?)들어가야 할지... 시종일관 첫사랑 몰입중인 남편!

황당한 말만 늘어놓으면 과거로 다시 돌아갔다. 알고 보니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었던 내 남자의 치명적인 과거는 아내의 신분으로도 넘.사.벽. 그 이상이다. 사람은 그래서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는 큰 가르침도 주는 영화다.

우리는 대부분 결혼준비는 수년간 하지만, 결혼생활에 대한 준비는 하지 않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소위 가전제품을 사도 매뉴얼을 꼼꼼히 읽어 보고, 심지어 버리지도 않는다. 쓰다가 고장이 나면 또 봐야 하니까.
 
하물며, 어찌 다른 환경과 다른 생각으로 각자 살아 온 한 인간에 대해서는 사용법에 대한 고민이 없을까. 첫사랑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내에게 구구절절 말하는 남편! 그럼, ‘당신에게 난 누구였나요? 라고 던진 이 물음 앞에 다가올 시련에 대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를 놓고 화성인과 금성인의 언어로 부딪히는 아리고 따뜻한 시선의 이 영화.
 
45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한 ‘케이트’와 ‘제프’에게 찾아온 첫사랑은 죽음이라는 부재로 이들 앞에 놓인다. 사랑의 지속, 관계와 믿음에 대한 섬세한 통찰을, 그렇게 서로가 다름을 절제된 언어로 보여준다.
 
누군가는 인생을 걸어도 괜찮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이전의 사랑이 끝나고 찾아온 하나의 선택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져오는 감정의 파동을 잘 표현하는 영화.
 
이렇듯 노부부의 사랑과 갈등, 결혼과 신뢰라는 것에 대한 뛰어난 연출의 통찰력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고 두 배우의 깊이 있는 연기는 스크린으로 발화되어 여성 특유의 감성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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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의 결혼생활은 봄날입니까?
 
‘샬롯 램플링’은 <45년 후>에서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첫사랑 소식에 흔들리는 남편을 보며 불안감을 느끼는 ‘케이트’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혼란스럽고 복잡한 심정을 지닌 ‘케이트’라는 인물의 작은 표정 하나까지 섬세하고 완벽하게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물에 대한 몰입도가 좋았다.
 
엄숙한 눈빛, 별로 이용하지 않는 얼굴근육, 중저음의 목소리 그리고 절제된 연기가 어우러져 그녀 특유의 마력의 배우로 완성된다. 오래오래 보고픈 배우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에 이어 제88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됐던 것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연기였다.
 
‘톰 커트니’ 역시 베를린국제영화제 남우주연을 수상했는데, 오래전 첫사랑 이야기에 민감한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 남편’제프’역을 맡아 묵직한 울림을 선사하는 내면 연기를 보인다. 여기서 백미는 결혼기념일 장면에서 결혼생활에 대한 ‘소감’ 한 마디 하는 장면인데, 살짝 취한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보는 내내 불안해 마지않는다.
 
‘45주년’ 결혼기념일을 제대로 우울하게 만드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각 자의 이상적인 결혼을 상상하며 완벽을 추구하지만 현실 앞에선 힘없이 무너진다. 그렇게 지구라는 행성에서의 지난한 삶은 늙으나 젊으나 여전히 이해 못 할 일들로 가득 하기만 하다.
 
속도와 조급함의 경계에서 봄은 벌써 와 버렸고, 일상은 이전의 상처가채 낫기도 전에 새로운 상처에 익숙함으로 흘러간다. 인생이란, 그렇게 세월을 버티는 힘으로 굴곡져 감이다. ‘내 결혼생활에 의심이 든다? 어서어서 달려가자 영화관으로~~!!!!
 
5월의 시린 영화 - <45년 후>
감독 앤드루 헤이|출연 샬롯 램플링, 제라드딘 제임스, 톰 커트니|영화의 전당 상영.
 

이경섭 객원기자
[2016525일 제7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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