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
갈라 프레젠터이션에서 만나는 6개국 7편의 영화
지난 4일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화려한 막이 올랐다.
영화팬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벌써부터 티켓이 매진된 영화도 부지기수. 하지만 실망하긴 아직 이르다. 좌석의 20%정도는 현장 예매 분으로 남겨 두어 아침 일찍 줄을 서는 수고만 감당한다면 보고 싶었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잡을 수 있기 때문.
총 300편이 넘는 영화가 초청된 이번 영화제에서 어떤 작품을 골라 봐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즐거운 고민이다. 수많은 초청작 중에서도 거장들의 신작이나 세계최초 공개작품, 화제작을 선보이는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주목해보자.
올해 BIFF의 갈라 프레젠테이션에는 6개국 7편의 영화가 소개된다. 그 중 한국에서 총 4편이, 중국, 이라크/터키, 이란에서 각 한편씩 작품을 선보인다.
남영동1985/정지영 감독/한국
남영동1985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1985’는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9월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22일간 당한 고문을 극 사실적으로 극화했다.
영화는 김근태의 생애나 공과가 아니라 고문 그 자체에 집중한다. 그로써 감독은 고문이 얼마나, 어떻게 우리네 인간 영혼을 파괴시킬 수 있는지, 정공법으로 제시한다. 그렇기에 영화를 끝까지 지켜보기가 쉽진 않다.
어느 순간 관객인 우리들이 실제로 고문을 당하고 가하는 듯한 착각마저 들기도 한다. 영화의 몰입도가 강력하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고문 묘사에 할애된다. 박원상과 이경영이 고문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기를 치가 떨릴 정도의 사실감으로 구현한다.
이 두 배우는 만들기 여간 힘들지 않았을 영화의 완성도 제고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감독은 반면 명계남, 문성근, 이천희 등이 분한 주변부 캐릭터들을 통해 극적 이완을 부여하는 것도 잊질 않는다. ‘부러진 화살’이 그랬던 것처럼, 수시로 영화에 희극적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보는 이들의 영화보기 부담을 덜어준다.
B·E·D/박철수 감독/한국
B·E·D
박철수 감독의 ‘B·E·D'는 침대를 매개로 우리 네 인간의 성적 욕망을 감각적으로 파헤친다. ‘유혹’등의 중견 소설가 권지예의 동명 단편을 영화화했다. 감독은 “사랑이 허기라면 섹스는 일종의 음식”이라는 원작자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생은 침대에서 시작되고 침대에서 끝난다” 침대를 매개 삼아, 베르테르처럼 우유부단한 성격을 지닌 남자 B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위해서라면 불륜도 마다치 않는 B의 유부녀 애인인 E, 유능한 커리어우먼과 충실한 부인을 동시에 욕망하는, 남자의 아내 D 세 사람의, 나아가 우리 네 인간 보편의 성적 환상과 일탈, 욕망 등을 탐구하는 관계의 드라마다.
닥터/김성홍 감독/한국
닥터
김성홍 감독의 ‘닥터’는 성경강국 대한민국에 관한 통렬한 보고서다. 싸이코패스인 한 성형전문의를 축으로 펼쳐지는데, 김창완의 야누스적 인물 해석 및 연기가 압권이다.
콘돌은 날아간다/전수일 감독/한국
콘돌은 날아간다
전수일 감독의 ‘콘돌은 날아간다’는 평소 가족처럼 지내던 소녀의 죽음에 연루되고, 그로인해 원치 않는 정신적·육체적 시련을 거쳐야만 하는 한 사제에 관한 성찰의 휴먼 드라마다. 전라 노출을 마다하지 않는 조재현, 배정화 두 배우의 ‘비운’ 연기가 일말의 감동마저 자아낸다. 마지막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정원사/모흐센 마흐말바프/이란
정원사
영화인에 대한 탄압이 극심한 이란의 작품도 초청되었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과 그의 아들 메이삼이 함께 만든 ‘정원사’는 이란의 적대국가 이스라엘에서 만든 영화다.
영화인에 대한 탄압이 극심한 이란의 작품도 초청되었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과 그의 아들 메이삼이 함께 만든 ‘정원사’는 이란의 적대국가 이스라엘에서 만든 영화다.
영화는 이란에서 태동하였으나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본거지를 이스라엘로 옮긴 바하이교의 성지에서, 모흐센과 메이삼이 종교와 평화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종교관, 세계관, 영화관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그들의 생각은 때로 극명하게 엇갈리며 이는 세대간의 간극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카메라는 국경을 뛰어넘고,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다. 영화의 역할과 형식에 대해 늘 통념을 벗어난 가치를 추구해 온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아들과 함께 영화를 새롭게 정의한다. 마흐말바프 부자에게 있어 ‘영화는 대화’이다.
그리고 간절히 그들이 바라는 영화의 역할, 즉 카메라가 평화의 꽃을 피우기를 기원하는 의식을 갖는다. 짐작하는 것처럼, 현재 망명중인 이들 부자의 이러한 메시지는 그들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용기’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코뿔소의 계절/바흐만 고바디/이라크,터키
또
또
코뿔소의 계절
또 하나의 특별한 초청작 ‘코뿔소의 계절’은 터키에서 촬영한 작품이다. 이란의 이슬람혁명 시절 투옥되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 재회하는 두 부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이란에서는 제작이 불가능한 작품이었다.
세계적인 배우 모니카 벨루치가 주연역을 맡았고 그녀의 남편역에는 과거 이란의 전설적인 배우 베흐루즈 보수기가 맡았다. 미국으로 이주한 뒤 수십년동안 단 한 번도 이란영화에 출연하지 않았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그를 만나 볼 수 있다. 잔혹한 운명에 휘둘린 힘없는 한 인간의 30년간에 걸친 고통과 분노에 관한 이야기가 두 배우의 열연으로 비장미가 더욱 극대화된다.
위험한 관계/허진호/중국
위험한 관계
쇼데를로 드 라끌로의 1782년작 원작소설을 영화로 옮긴 허진호 감독의 ‘위험한 관계’는 이야기의 배경을 1930년대 상하이로 설정하고, 장동건, 장쯔이, 장백지 등 호화 캐스팅을 동원해 완성한 심리, 멜러 드라마다.
스티븐 프리어스의 ‘위험한 관계(1988)’, 밀로스 포만의 ‘발몽(1989)’,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에 이르기까지 동명의 원작소설은 이미 네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던 작품으로 많은 감독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허진호 감독 버전의 ‘위험한 관계’에서 펼쳐질 위험한 게임이 관객들의 평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