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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저 이만하면 잘 살았죠? 근데요, 정말 힘들었거든요."
흥남부두에서 손을 놓친 여동생 막순이를 찾기 위해 어렵게 오른 배에서 다시 내리면서, "네가 이제부터 가장이다. 내가 돌아올 때 까지 어머니와 동생들 잘 보살펴야한다. 부산에 가면 국제시장에서 가게를 하는 니들 고모 '꽃분이네'를 찾아가라."고 다짐을 놓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벗어 덮어주던 외투를 부여잡고 오열을 하는 덕수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장으로서 평생을 희생하며 살아온 지난 삶을 반추한다.
속도 모르는 신세대 자식들은 촌스럽다며 핀잔이지만, 언젠가 가족을 찾으러 올 아버지를 위해 포목 잡화점 '꽃분이네' 간판을 바꾸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덕수. 자신이 손을 놓친 죄로 평생을 무겁게 짓누르던 여동생 막순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살지만 끝내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간 여동생 막순이를 찾아내면서 그제야 소명을 다했다 생각한다.
선장이 되는 게 꿈이었던 덕수는 동생들 학업을 위해 철저히 자신을 희생하며 독일광부로 나서고, 결혼 후에도 주경야독하며 해양대 입학통지서를 받지만 여동생 결혼자금을 위해 또다시 월남으로 떠난 덕수는 다리에 총상을 입고 불구가 되어 돌아온다. 단 한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보지 못한 덕수의 인생은 그야말로 가장으로서 우리의 아버지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희생적 삶이 점철되어 있다.
"내 꿈이 뭐였는고 아나? 나는 선장이 꿈이었데이. 당신 꿈은 뭐였노?"
"당신은 내가 어디가 맘에 들었어요?"
"이쁘니까!" "사랑하니까!"
"당신은 내가 어디가 맘에 들었어요?"
"이쁘니까!" "사랑하니까!"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산복도로 집 툇마루에서 노인이 된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지난 17일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윤제균 감독)이 인기다. 연일 극장가는 북새통이다. 부산사람들에게는 생생한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을 주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적 큰 관심을 불러 모은 영화이기도 하지만 전후 또는 전쟁세대들에게는 옛 추억과 역사를 돌아보는 산교육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 영화중 하나다.
특히 한국동란이후 국가재건을 위해 독일로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했던 이야기, 월남파병, 이산가족 찾기,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 흥남부두 등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한 생생한 에피소드들과 포목점을 찾은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 월남 파병으로 만난 남진, 자갈치 음식점에서 만난 씨름선수 이만기 등 실존 캐릭터들이 극중에 등장함으로써 재미를 더했다.
피난민 천막학교에서 만나 구두닦이 등 갖은 노역과 험한 인생을 살면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온 덕수(황정민 분)와 달구(오달수 분)의 피보다 진한 우정, 죽음의 문턱을 함께 넘나들며 인생의 고락을 함께하는 모습도 감동을 자아낸다.
또 하나,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여성, 즉 모성의 강인함이다. 술주정뱅이 고모부를 대신해 포목잡화점을 운영하며 친정오빠 군식구들을 기꺼이 받아들인 고모의 억척인생과, 남편과 생이별하고 배아파 낳은 딸을 잃어버린 아픔조차 내색 않은 채 삯바느질을 하며 가족을 돌본 어머니 등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강인한 생활력을 보인 여성들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칫 무거움을 느낄 수 있겠으나 시종일관 흥미롭다.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 실제를 방불케하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중간중간 코믹스러운 장면들이 웃음을 자아내고 그런가하면 너무도 진지하고 애틋한 스토리는 눈물샘을 자극한다.
영화 국제시장은 격변기를 살아온 한 가장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고달프고 눈물겹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을 일으켜온 우리들의 아버지상이기에 뿌듯함마저 느끼게 하는 영화다.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게 희생하며 살아온 국민 아버지 덕수의 일대기가 생생한 한국 현대사의 재현과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가슴 벅찬 메시지를 선사하는 지도 모른다.
개봉 열흘만에 관객 400만을 돌파하기에 이른 저력도 이러한 탄탄한 구성과 스토리, 배우들의 연기력이 더해 만들어낸 합작이다.
김유혜민 기자
[2014년 12월 26일 제59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