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순 지음/ 부크크/ 316쪽/1만7500원
저자는 13년간 기업을 운영해온 커리어우먼이었고, 건강했으며 자신의 사업에 혼신을 다 하 는 열정가였다. 그러나 2023년 몽골 여행 중에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량이 일으킨 큰 충돌로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됐고 만신창이의 몸으로, 사고 이후 손해배상과 소송 과정에서 겪은 기막힌 일을 ‘기록’해 세상에 내놓았다.
신체 감정 절차와 그와 관련해 경험한 일을 가감 없이 쓴 이 책에 대해 저자는 “단순한 개인적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손해배상 소송 과정에서 이뤄지는 ‘신체감정제도’가 실제 피해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알리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으로 썼다고 강조한다.
사고 이후 저자는 어깨를 찢는 통증, 극심한 몸살 같은 고통, 현기증과 함께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국내 치료를 받았고 종합병원 등에서 뇌진탕으로 인한 어지럼증, 좌측 견관절 회전근개 부분파열, 목, 허리, 무릎 등에 염좌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아도 통증이 악화돼 한방치료도 병행했다. 후유장애 진단까지 받았지만, 치료비가 많이 나오니 소송을 하면 피해자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여행사 측 손해사정인의 안내에 따라 소송을 한 것이 문제였다.
손해배상 책임 범위가 과도하고 부당해 신체 감정의 필요성이 있다는 여행사 측의 주장에 따라 법원 촉탁 병원에서 신체 감정을 받은 결과 저자의 병증이 “100% 기왕증이며 사고와 무관”하다는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이후에도 저자의 고통은 계속됐으나 사고와의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았고 감정 결과에 따른 각기 다른 판단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저자의 외로운 분투가 시작된다. 감정인 소속 병원에 민원을 제기하고, 방송사 제보는 물론, 국민신문고를 통해 행정기관에도 알렸으며, 대한법률구조공단 상담에, 지역구 국회의원실까지 찾았으나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었고 “억울함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책임 없는 구조 한가운데 서 있었다”라고 한다.
저자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여행사를 믿고 해외여행을 떠났다가 피해를 입었으니 보호받아 마땅한 일인데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제도의 폭력’이었다.겪어보니 “나의 사건이 제도 안에서 이렇게까지 왜곡될 수 있었다면,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 비극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이 경험을 단순한 개인의 불행으로 덮어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책은 “한 장의 감정서가 어떻게 피해자의 인생을 0으로 만드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객관성과 사실성을 담보하기 위해 자료도 첨부했다. 사고 이후 삶이 무너져 내렸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시간을 지금도 겪고 있는 저자는 부조리한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자신과 같은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기에 펜을 든 것이다. “기록이 또 다른 침묵을 깨우고, 제도를 바꾸는 첫 번째 질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박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