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북 리뷰-책과 틈] 존엄하고 초라한
‘책과 틈’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틈’을 뜻하면서, 동시에 길을 ‘트듯’ 책과 스스럼없이 가까워진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는 곧 서평의 방향성을 나타낸다. [편집자 주]

존엄하고 초라한, 강미현, 흠영, 2026
건축을 도구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비추는 책이다.공간을 고민하며 좋은 건축에 대한 믿음으로 30여 년 업계에 몸담아 온 저자는 “건축이 때때로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고, 차별하는 일에 앞장서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대체로 알고 있는 듯하지만 깊이 고민하지 못한 일들과 함께 서술한다.
존재의 보금자리를 진단하면서 가장 먼저 들고나온 것은 최저 주거수준에 미달하는 많은 청년 가구의 이야기다. 쉽지 않은 취업과 감당하기 어려운 월세 때문에 선택하게 되는 주거공간 고시원. 저자는 사회초년생 시절 본인이 겪은 고시원 살이를 언급하며, 창이 없고 볕도 들지 않고, 의자를 책상 위로 올려 누워야 했다는 걸 고백한다. 지금도 많은 청년이 고시원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살필 문제는 14㎡(약4.2평)이라는 낮아도 너무 낮은 우리나라 최저주거기준이다. 또한 이것이 어디까지나 기준일뿐 법적 구속력조차 없다고 한다. 사회주택이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덴마크나 청년에게 주택과 일자리를 하나의 패키지로 제공하는 핀란드 등은 참고할만한 사례로 보였다.
저자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이란 결국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짓은 행위여야 한다는 견해를 일관되게 펼친다. 또한 다수의 통계자료와 신문기사, 단행본, 연구 자료 등을 바탕으로 객관성을 확보하면서도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건조하지 않은 문체로 사회 현상을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사업장에 대한 문제와 도로 위를 오가는 이동노동자들의 쉴 곳 등 노동의 자리도 살핀다. 특히 콜센터, 백화점 등에서 일하는 감정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기존의 형식적인 휴게실이 아닌 조도가 낮고 소음이 차단된 심리 안정실 같은 잠시라도 혼자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표정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해 고개를 끄떡이게 만든다. 이주 노동자들의 거주지 또한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같은 임시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존중받는 보금자리여야 한다고 말한다.
장애인의 이동권이라고 하는 것도 단순히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길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다운 일상에 도달할 수 있는 권리로 보는 저자는 ‘베리어 프리’야말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머물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약속”이라고 강조한다.
딱딱하고 획일적인 우리의 학교 공간에 대해서는 이에 대한 교육 철학적 접근이 부족했다는 점을 꼽는다. 최근에 민주적인 학교 공간을 만드는 여러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점을 언급하면서, ‘사용자 참여 설계’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세심하게 듣고 그들의 작은 바람까지도 건축적으로 구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닭과 오리, 돼지가 사육되는 공간의 문제는 자못 심각했다. 평생을 비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가 도축장으로 가는 순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햇빛을 본다니 가축이라 할지라도 그 공간만큼은 최소한의 생명 윤리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이 효율성과 자본의 힘이 밀리지 않고 실현되길 바란다.
건물을 지을 때 사용되는 모래, 자갈 등의 많은 자원이 세월이 흘러 철거를 하게 되면 폐기물이 되는데 특히나 현대 건축에 쓰인 각종 재료는 재활용도 어렵다고 한다. 이에 저자는 처음부터 순환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하는, “자원순환을 실현하는 리모델링”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과 건축의 현재 모습과 함께, 짓는 행위에 대한 저자의 건축 윤리가 곳곳에 배어 있는 책이다.
박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