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6년 03월 23일

책/문학

[편집장의 북 리뷰-책과 틈] 벌집과 꿀

 책과 틈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을 뜻하면서, 동시에 길을 트듯책과 스스럼없이 가까워진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는 곧 서평의 방향성을 나타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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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소설, 서제인 옮김, 엘리, 2025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지내던 사람들의 서사가 긴 여운을 남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감각이란 당사자가 아니라면 가늠하기도 어렵겠지만, 이 소설 특유의 분위기와 절제된 문장들이 함축하고 있는 진실은 무겁게 다가온다.

소설 벌집과 꿀은 미국 뉴욕, 스페인, 에도시대 일본, 영국 런던, 러시아 극동지방 등 광막한 시공간을 살아가는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당한 상황 등 타의에 의해 낯선 곳에 내던져진 채 묵묵히 살아간다. 그러다 때로는 갑작스런 폭력으로 그동안 견뎌냈던 감정을 분출하기도 한다.

사실적인 서사는 작가의 잔잔하고 부드러운 문체와 만나 연결되지 못한 이들의 외로움과 좌절, 갈망 등을 예리하게 그려낸다.

주목받고 있는 작가 폴 윤은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의 조부가 한국전쟁 때 탈북한 피난민이었다고 하나, 정작 작가는 자신의 역사에 관해 누구에게도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고 체념해야만 했을 그는, 대신 소설을 통해 한국인 디아스포라와 정체성에 대해 탐구 해 나간다.

벌집과 꿀7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돼 있다. 작가는 다양한 시공간으로 독자를 이끈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어렴풋한 기억과 쓸쓸한 정서를 간직한 이들이다.

하지만 가족이 없어지자 그들은 가게 창문 밖의 삶으로부터도, 서로로부터도 더욱 고립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혹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누군가가 묻는다 해도 해리는 알지 못했다.”(크로머)

한국계 청년 가 뉴욕에서 일하다 나쁜 일에 연루돼 교소도를 가게 되고 출소 후 다시 낯선 도시에서 살아가는 보선에서처럼, 각 단편 속 인물들은 부모를 포함한 옛일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다. 탈북한 이후 남한, 독일을 거쳐 스페인에서도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중년 여성을 그린 코마로프의 주인공 주연은, 남편을 그리워하지만 생사를 알 길이 없다. 역참에서는 일본의 조선 침략 때 붙잡혀 온 조선인 고아 유미가 곡예단의 짐승 취급을 받으며 살다가 조선으로 돌려 보내지게 되지만, 조선말을 아예 모르는데도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탈북해 영국에 자리 잡은 부모를 둔 한인 2세 부부의 이방인으로서의 복잡한 내면, 고려인 정착지에서 매일같이 폭력을 행사하던 남편을 살해하고 자신도 즉각 남편의 동생에게 끌려가 죽임을 당하는 여성의 사건 등 작가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다각도로 비춘다.

아버지가 손을 잡았던 곳에 온기가 남아있다. 온기는 거기, 손바닥에 집중돼 있다. 교도소를 지나 다시 길을 걸으면서도 막심은 계속 그 온기를 느끼고 있다.”(「고려인」)

주인공들에게는 잠깐의 다정한 온기도 쉽게 허락되지 않았고, 한국전쟁 후 폐허가 된 고향 집도 그들을 온전히 보듬어 주지 못한다. 

바로 그 순간, 마치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듯 나비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 그림자에 닿을 듯 말 듯 닿지 않는 곳에서 날개를 치며.” 역참에서의 마지막 부분이다. 시의 일부를 보는 듯한 표현으로 결말을 열어두고 있다

부유하는 존재들이 끝내 풀 수 없는 근원적인 고민과 고통을 안고서도 어떻게든 그들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박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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