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성 지음/은행나무/ 436쪽/ 1만 4000원
독자들로부터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홍준성 소설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지하 정원》(은행나무)이 출간됐다.
이 작품은 여성 식물학자 얀코가 비뫼시라는 가상의 도시 지하에 ‘똬리나무’라고 명명된 거대한 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나가는 파란만장한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비뫼’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의 정신사를 복원해내는 작가 홍준성은 한국문학에서는 보기 드물게 거대서사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전작《카르마 폴리스》를 통해 “어마어마한 몰입감과 환상적인 문체”, “혼돈과 허무, 역사 속의 사회상을 총집결해 놓은 듯”하다는 평을 받은 바 있으며, 2021년 런던북페어에 소개됐던 화제의 한국 작가이기도 하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비뫼시는 소문과 이야기, 음모와 정치, 그 모든 것이 우화적으로 교직된 가상의 도시로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살고있는 현대의 초상이라 할 수 있다.
《지하 정원》에서 작가는 비뫼시 지하에 ‘똬리나무’라는, 생명 법칙을 모조리 어긴 식물의 자리를 마련한다. 여성 식물학자 얀코는 운명을 따라 문명의 기저에 놓인 거대한 토대를 파헤침으로써 비뫼시의 근간에 무엇이 놓였는지를 마주하게 되는데, 이것은 지금 우리의 도시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이성을 통해 세워졌다고 믿어온 인간 문명사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촘촘하게 기획된 비뫼시의 모습은 소설적 재미까지 더한다. 장광설과 요설로 가득한 가상의 세계에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 그러다 문득 그 속에 숨은 생의 의지를 만나는 것,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오랫동안 ‘소설’에 기대해온 바가 아닐까? 잠시 잊고 있던 이야기의 재미에 흠뻑 빠져보자.
박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