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시대에 맞닥뜨린 인류에게 창조란 오래된 지혜를 떠올리는 것 아닐까. 어떠한 혼란과 위기에도 우리는 인간임을 증명해야 한다. 어리석음은 새로운 우주이다”
김수우 작가는 신간 <어리석은 여행자>(호밀밭)에서 ‘어리석음’이라는 지혜를 ‘조각빛’처럼 밝히고 있다. 각자도생이 활개 치는 시대에 “한참 더 어리석어야 했다”는 이 가늠하기 어려운 통찰의 의미는 무엇일까?
책은 부산 원도심의 글쓰기공동체 ‘백년어서원’ 대표이자 시인이기도 한, 저자만의 인문학적 시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물질과 소비 중심의 현시대를 비판적으로 응시하고, 그와 반대 방향의 삶을 모색하며 “환(幻)의 세계로 부터 벗어나 느릿느릿 함께 나아가는 방법”을 제안한다.
더하기보다 빼기에 가까운 이러한 삶은 곧 어리석음으로 연결된다. 저자는 왜 어리석음이 필요한지, 어떻게 어리석어질 것인지, 어리석음의 숨은 능력 등을 찬찬히 들려준다. 영성을 가꾸는 일이 우리가 지구에 온 까닭이라는 그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리석음이 영혼과 영원에 닿아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읽기와 쓰기와 여행이 중요한 공부라는 것과 상상력과 감수성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능력인지도 책 속에서 깨닫게 된다. 또한 끊임없는 배움 속에서 저자가 발견한 언어인 ‘거룩한 바보’, ‘자발적 가난’, ‘진심을 품은 공부’ 등의 의미는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울러, 책을 지나치게 좋아했던 어린 시절부터, 지천명에 백년어서원을 열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발자취도 엿볼 수 있다. 어리석음이 품은 깊이와 크기 만큼이나 문학, 철학, 종교적 사유가 가득하고, 시인의 산문 아니랄까 상징과 은유로 빚어진 섬세한 문장들도 음미해 보면 좋겠다.
“어리석음이 생산하는 건 손해 보고도 손해인 줄 모르는, 속고도 속는 줄 모르는 무위”라니, 요즘 세상에 쉽사리 해내기 어려운 여정이다. 하지만 ‘떠돌이별’을 자처하는 저자를 따라 배낭을 둘러메 보자. ‘메마른 고원이 된 영악한 시대’에 천금 같은 우주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리석은 여행자 / 김수우 지음 / 호밀밭 / 260면 / 1만 4천원
박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