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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학

[편집장의 북 리뷰-책과 틈] 지금부터 조선 젠더사

 [편집장의 북 리뷰-책과 틈] 지금부터 조선 젠더사

책과 틈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을 뜻하면서, 동시에 길을 트듯책과 스스럼없이 가까워진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는 곧 서평의 방향성을 나타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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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조선 젠더사, 하여주, 푸른역사, 2025

 

통렬하고 시원시원한 책이다.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무뎌져 있던 우리 안의 젠더 감수성을 자극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현실을 살피게 하는 힘이 있다.

조선 시대 여성들은 과연 강고한 유교의 틀 안에서 갇혀 지내기만 했을까? 저자는 이 질문을 품고 유교(성리학) 이상주의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젠더 규범을 세우고 왜곡하고 이어나갔는지를 여성들의 삶을 통해 추적한다. 조선 젠더와 관련된 법과 제도는 물론 생활사까지 자료와 증거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지금부터 조선 젠더사에 따르면 유교 젠더 규범만들기 작업은 조선 건국 이전부터 시작됐다. 고려를 지우고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통제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유교의 나라 조선은 재가한 여성의 후손에게 관료가 될 기회를 박탈하고 정절 지키기, 삼종의 의리, 내외법 등을 만들어 여성을 교묘하게 규제했다.

재가했거나 실행한 사족 여성의 자손 및 서얼의 자손은 문과 생원·진사시에 응시하지 못한다” ‘경국대전에 실린 내용이다. 재혼한 여성의 아들과 손자가 양반이 되는 길을 막는, 이 정도로 강력한 법은 다른 유교문화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여성에게 재혼은 주홍글씨나 다름없던 것이다.

저자는 조선 건국 후에 권장됐던 의례 제도도 꼼꼼히 조사해 보여준다. 조선의 입법자들은 상복 입는 기준을 정하면서 자기 부모에 대한 여성의 복상을 줄이고 시부모에 대한 복상을 늘렸다. 가문의 제사는 종손인 남자가 담당했고, 여성은 자기 친가의 제사를 담당하지도 참여하지도 못하는 등 친족 질서가 오로지 남성 중심이 됐다.

양반 남성들은 여성을 남성의 보조자로 만들기 위해 유교 젠더 규범이 담긴 여성 교훈서를 써서 교육하기도 했다. 조선 전기 아동용 필수 교재인 소학은 남성용 유교 수양서다. 그러다 조선만의 여성 교훈서가 탄생한다. 송시열이 시집살이를 할 딸에게 주려고 지은 책 계서녀에는 부모, 남편, 시부모에 대한 도리와 시가에서 해야 할 가사 등이 담겼다. 칠거지악이 등장하고 투기를 금지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유명한 의서 동의보감은 음양론을 전제로 여성의 몸을 분석해 수동적이고 감정이 많은 편이며 기의 조화를 깨뜨려 질병에 걸리기 쉬운 몸이라 남자의 병보다 열 배로 치료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러한 여성의 몸의 성질에 대한 규정은 성리학과 연결돼 여성의 치우친 본성이 대의를 실천하지 못하게 한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

조선은 여성을 출가외인으로 만들었고, 시집살이는 자리를 잡았다. ‘한씨부훈에 보면 한 집안이 흥하고 쇠함은 여자의 행실에 달려있다고 할 정도였고 여성은 몸을 움직여 집안일을 할 것과 절약하고 절제할 것을 강요받았다.

저자는 그럼에도 조선의 여성들은 남성들이 만든 틀에 갇혀 살지만은 않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친가 식구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가문을 지켰다는 것을 강조하며 대표적인 사례로 진주 하씨의 별거 성공기’, ‘논공댁 곽정례의 시집살이 적응기등을 제시한다. 남성과 그 집안이 일방적인 이혼 요구권을 가졌던 시대, 쫓겨난 여인 신숙녀의 사건을 분석해 이 일이 인조 대의 시대 상황과 맞물리며 사건의 주인공이 조선판 마녀로 담론화되는 과정도 집요하게 보여준다. 담배가 전국적으로 유행할 땐 금연하라는 젠더 규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성들이 자유롭게 흡연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세상이 많이 바뀐 것처럼 보이는 요즘에는 전통혹은 관습의 허울을 쓰고 여성을 옥죄는 것들이 사라졌는지, 조선의 유교 젠더 규범이 만들어낸 표본을 예로부터 내려온 미덕인 양 아무 생각 없이 답습하고 있지 않은지, 책은 자연스레 이러한 의문을 갖고 현재를 보게 한다.

박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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