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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학

[편집장의 북 리뷰-책과 틈] 엄마만 남은 김미자

 책과 틈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을 뜻하면서, 동시에 길을 트듯책과 스스럼없이 가까워진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는 곧 서평의 방향성을 나타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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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 남은 김미자, 김중미, 사계절, 2025

 

읽는 동안 소설이라는 착각에 수시로 빠졌었다. 때로는 우리의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아 몸서리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대화체가 많은 생생한 전개에 개성 가득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책이라 특히 더 그랬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는 지역 활동가로 살면서 지난 2000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시작으로 동화, 청소년 소설, 에세이 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꾸준히 들려준 김중미 작가 개인의 가족사다. 책의 큰 틀은 자식의 부모 돌봄으로 현재의 시점에서 마지막 장까지 엄마의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 되찾아간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내가 지나온 시간과 나의 어머니 김미자, 아버지 김창삼, 그리고 외할머니 최어진, 친할머니 정옥생이 걸어온 시간의 결과물이다라는 문장처럼 책은 단순히 인지장애로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지켜보는 딸의 이야기만이 아니다.작가가 풀어내는 가족 이야기는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며, 여성의 서사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삶은 물론 윗세대를 포함해 친지, 형제자매, 이웃 등 서로 영향 관계에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매우 다층적으로 비춘다.

작가는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을 진저리가 나도록 들으며자란 K 장녀로, 가난 때문에 특출난 재능을 보였던 미술과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가계를 도왔다. 문학적 소양이 깊었던 엄마 김미자는 흔한 어머니상과는 사뭇 달랐으나 신여성이었던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평생 세끼 밥상을 제일 중히 여기며 자식을 위한 엄마로만 살았다. 그 시대에 소설을 썼던 외할머니는 6.25전쟁 때도, 치매에 걸려서도 원고 뭉치를 보물처럼 끌어안고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외할머니가 그토록 남기고 싶어한 이야기를 언젠가 책으로 꼭 쓰고 싶었지만 일기장은 태워졌고, 소설은 쓰레기와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김소월과 백석을 자랑스러워한 평안도 출신 아버지는 예술을 사랑했으며, 천성적인 자유주의자에 나르시시스트라고 작가가 정의를 내릴 정도로 독특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다. 민며느리로 시집온 작가의 친할머니는 언문조차 배우지 못했지만 집안 사업을 일구고 식솔들을 거느리며 산 여인이다.마치 소설 속 캐릭터 같은 인물들에게 벌어지는 일은 실화라서 책의 몰입도를 더 높인다.

개인의 삶은 공동체로 연결되는데, 가난이 모두를 짓누르던 시절 작가가 부모와 함께 겪은 빈곤한 마을에서의 경험을 보면 알게 된다. 작가가 왜 자발적 가난을 택해 공동체와 어우러지는 삶을 축복처럼 여기며 살아가는지를.

작가가 유년 시절을 보낸 동두천에서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가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사정을 살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옷을 모아다 주는 등 내 집 아이만 감싸며 살지 않았다고 한다.한하운 시인을 알려준 엄마는 한센병을 문둥병이라고 낮잡아 부르지 못하게 했고, 동전 하나도 아끼던 시절 걸인이 오면 먹을 것과 함께 지폐를 내어주기도 했다. 인천의 친할머니는 싸전을 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몰래 쌀을 퍼주고, 주변에 배곯는 사람이 있으면 데려다 고봉밥을 차려주었으며 여름이면 노천카페를 열어 동네 사람들과 커피를 나누었다.

엄마와 할머니로부터 타인을 존중하고, 곁을 내어주는 법을, 섬기고 배려하고 나누며 사는 삶의 행복을 배웠다. 그래서 가족 안에 갇히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내 주위의 어른들은 공동체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작가는 또 단칸방에 살면서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케롤을 부르고, 새해 아침에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신년 음악회에 맞춰 왈츠를 추던 일을 떠올리며 가난 속에서도 예술의 즐거움을 잃지 않았던 부모님과의 추억이 힘들 때마다 자신을 지키는 단단한 보루라고 고백한다.

상호 의존과 나눔의 힘을 믿는 작가는 제도적인 복지만큼 중요한 것이 공동체라는 생각으로 그 안에서 두 딸을 성장시켰으며 여전히 농촌 공동체의 큰이모로 살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근대 한국 신여성의 삶을 오롯이 보여주는 산 역사의 기록이자 희귀 소설이 될 뻔한, 외할머니의 원고 뭉치와 일기장을 놓친 일은 너무 아쉽다. 소설로 탄생했더라면 어떻게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있으랴.

예상했을지 모르지만 담담하고 숨김없는 서사 곳곳마다 눈물 바람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숱하게 자리하고 있다. 안타까움과 공감으로 읽다 보면 각자의 부모와 그간 살아온 이야기도 곰곰이 돌아보게 될 것이다.

박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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