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틈’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틈’을 뜻하면서, 동시에 길을 ‘트듯’ 책과 스스럼없이 가까워진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는 곧 서평의 방향성을 나타낸다. [편집자 주]

스적스적, 김형로, 전망, 2025
시를 왜 읽느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느끼려고’ 읽는다고 대답하겠다. 무덤덤해진 감각들을 가만가만 일깨워 마침내 마음에 ‘찡’하고 공명하는 그 느낌말이다. 하지만 어쩐지 그런 시들을 쉬이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시와 한참을 소원하게 지내기도 하다가, 또 언젠가 좋은 시집을 만나면 ‘그래 이 맛에 시 읽지’ 하며 혼자 찬탄한다. 그런 시를 최근 만났다.
김형로 시집 『스적스적』은 첫머리에 ‘작은 새들과 김종삼 선생님께’ 부친다고 언급해 놓았기에 시 전편에 빠짐없이 새가 등장하는 것과, 총 4부로 나눠진 각 장의 제목을 김종삼 시인의 문장에서 빌려온 연유를 헤아리며 읽게 된다.
새는 무한의 상징이다/ 까만 눈 보면 예술이 되고/ 먼 몸짓은 철학이 된다/ 생각대로 생각되는 새/ 천변만화의 질료다 (시 「신에 가깝다」 중에서)
시인들은 종종 작고 흔한 자연의 일부를 아주 특별한 존재로 만들곤 한다. 분명 세상의 수많은 이름 가운데 하나였는데, 시인의 감각을 거치면 어느새 생각을 불러오는 대상이 된다.『스적스적』에선 그 주인공이 바로 ‘새’이다. 무심히 ‘훅-뒤돌아 날아’ 오르는 새를 통해 애잔한 생(生)의 이치를 투영한다. 시인의 세심한 관찰과 애정 어린 탐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새에 무심했을 것이다.
김형로 시인은 모호한 구석 없이 반듯하고 선명한 언어로 존재를 말한다. 절제된 시어가 전하는 깊은 메시지와, 왠지 외롭고 적적해 보이는 새의 이미지가 계속 마음을 끄니 오랜만에 시집을 붙들고 감상에 젖는다.
새는 아나키스트/ 속박도 핏줄도 던져버린 자유/ 두 날개짓으로/ 신분도 계층도 권력도 떨친 몸짓/ 나는 힘만 가진/ 극한의 미니멈을 향하여/ 영원한 떠돎-/ 아나키스트 새가/ 땅도 나라도 없이/ 날아간다 넘어간다 사라진다 (시 「아나키스트」 전문)
시인은 김종삼 시인을 ‘새로 돌아갔을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 시 「스적스적」을 보면 저물녘에 내려앉은 새를 ‘꼭 어떤 뒷모습 같은’이라고 표현해 김종삼 시인을 환기한다. 짐작건대 작가의 작가가 있듯, 시인의 시인도 있을 것이다. 김형로 시인은 김종삼 시인에 대해 긴말을 하지 않았지만 시를 읽은 사람이면 어찌 모르랴, 아껴 쓴 시어 결결이 그를 흠모하는 마음이 서려 있다는 것을.
평생 가난하고 겸양했던 것으로 유명한 김종삼 시인은 우리 현대 시 사상 매우 위대하고 뛰어난 순수시인으로 손꼽힌다. 그럼에도 시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모르거나, 알았다고 해도 차츰 잊혀가는 시인이기도 하다.김형로 시인은 ‘라산스카’, ‘호수돈 고녀생에게 첫사랑이 번지었을 때’, ‘오십 평생에 단칸 셋방뿐’ 등 자신의 시에 김종삼 시인의 시 제목 또는 그의 문장을 차용하고 있다. 이는 모방의 차원을 넘어 “정신주의적이고 본질적”인 그의 문학을 존중하고 잊지 않으려는 마음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차용은 작품의 의미를 확장하고 후대가 원작자를 기억하는 데 기여 한다.
곁을 주지 않으면서, 길 없는 하늘길을 날고 또 나는 새의 상징을 음미하고, 한 거목의 예술가와 시간을 넘어 교감하는 기쁨을 맛보게 하는 시집이다. 마침 집 책장에서 빛바랜 『김종삼 전집』을 발견했다. 이어 읽어볼 생각이다.
박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