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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미술

‘시인의 방’에서 새로운 부산을 보다

 
 박대련 기획초대전 10월 29일부터 오는 1월12일까지
연꽃이밎 '념(念)' 주제로 고향 동구 사랑담아내
 
시인의방-념.jpg
 
 
산복도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부산항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유치환의 우체통’ 2층 시인의 방에서 부산의 원로여류화백 박대련의 특별한 전시가 한창이다.
 
지난 5월 문을 연 유치환의 우체통은 초량이바구길(부산역~망양로 일대)에 자리 잡고있는 청마 유치환의 예술과 문학을 기리는 전망대다. 이곳 2층 ‘시인의 방’에서는 개소식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원로화백들의 전시가 이어져 오고 있다.
 
지난 1948년 유치환선생과 통영여고 미술교사로 교단에 첫발을 내딛은 특별한 인연의 김봉진 원로화백의 첫 전시에 이어, 이번 10월29일부터 시작된 박대련 화백의 전시는 네 번째 기획초대전.
 
작가는 최근 민화, 탱화, 토속신앙 등을 모티브로 작품 활동을 펼쳐왔으며, 특히 불교와 인연이 깊은 연꽃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해 왔다. 이번 초대전에서도 연꽃의 이미지를 ‘념(念)’이라는 주제로 대담한 화면구성과 다양하고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작품 등 총 1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제 살갗을 뚫고 나오듯 잎을 뚫고 꽃을 피우는 ‘연’의강인함을 보며 ‘인내’를 되새겨 보게도 되고,백합이나 장미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그들 못지않은 은근하고 진한 향기 또한 매력적이지요. 연을 떠올리면 올곧고 반듯함, 깨달음을 연상하게 됩니다”라고 작가는 연에 대한 애착을 표현한다.
 
그간 박대련 작가는 개인전을 지양해왔다. 중학교 1학년 시절, 도화지도 아닌 갱지에 그려낸 포스터 한 장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부터 한평생 그림을 그려왔지만, 작가는 아직도 개인전이야 말로 진정 ‘원숙해졌을 때’ 해야 하는 것이라며, 다수의 교류전과 단체전 위주로 전시활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비록 작지만 이번 개인전을 열게 된 이유는 전시가 열리는 ‘유치환의 우체통’을 비롯한 동구에 대한 남다른 애착에서다. 유치환 선생이 경남여고교장을 2차례나 지내고 부산에서 생을 마감했다면, 작가는 부산 동구에서 태어나 초·중·고시절을 이곳에서 보냈고 경남여고를 졸업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을 졸업 후 13년을 경남여중에서 근무하고,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된 곳도 모두 이곳 동구에서다. 때문에 그동안 개인전의 기회를 수차례 마다해왔음에도 ‘고향에 대한 보은 展’을 연다는 마음으로 이번 초대전에 응하게 됐다고.
 
전시가 열리는 시인의 방 입구에는 작가의 학창시절과 교직시절이 담긴 흑백사진이 오른쪽 벽면을 장식한다. 중·고등학교시절 미술부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 1950년대 나무판자로 칸을 지르고 지붕없는 교실에서 수업하던 경남여고 학생들의 모습, 경남여중 재직시절의 모습까지 지난 35년간 수정동을 지키며 살아온 세월이 오롯이 흑백사진 속에 담겨있다.
 
혹자는 작가의 전시를 보고 ‘그림이 젊다’고 한마디로 표현하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작품이 젊다는 평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작품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새로운 시도, 배움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제게는 몇 가지의 숙제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화가 안견의 작품을 연(蓮)과 결부시키는 작업을 몇 년째 고민하고 있지요. 또, 언젠가 통도사 입구 송림에서 받은 강렬한 여운때문에 소나무와 사리탑을 소재로 새로운 작품을 시도해 보는 과정들이 제게 남은 숙제이지요. 최근에는 옻칠회화에 도전해 볼 계획도 있습니다” 온화하면서도 따뜻한 작가의 말투안에 그만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돋보인다.
 
1970년대 남성을 위주로 한 문학·예술 클럽은 활발한 반면, 여류클럽의 부재를 안타까워 하던 작가는 부산 최초 유일한 여류클럽인 ‘부산여류 7인전’을 만들었다. 1975년 부산여류작가회를 창립했던 그 열정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작품에 대한 고민과 도전으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뼈를 깎는 아픔이 있어야 비로소 작가는 살아있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수없이 스스로를 담금질을 했을 작가로서의 삶이 어렴풋이 짐작된다.
 
이번 전시와 함께 작가는 오는 12월 23일부터 보름간 열리는 (사)부산예술단체총연합회(이사장 송영명)의 사생그림전에도 작품을 전시한다. 여명이 깃든 오륙도 갈맷길의 모습을 작가만의 시선으로 표현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또, 내년 3월에는 문현동 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고 작가의 작품세계를 공유할 예정이다.
 
한평생 그림을 그려온 작가도 문득 자신의 전시작들을 바라볼 때면 아쉬움이 남을 때가 있단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림을 그리며 자기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말한다.
 
유치환의 우체통 시인의 방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누구라도 절로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어떤이에게는 그저 가슴 시원한 경치이겠지만, 이번 전시를 계기로 부산항을 비롯한 동구의 현재를 다시 바라본 작가는 감회가 새롭다.
 
멀리 부산항과 아치섬을 전망하며 “예전엔 해양대학교 학생들이 배를 타고 통학을 했었지요, 항구쪽 건물이 들어선 자리는 그때는 전부바다였지요”라고 말하는 작가는 부산미술계의 흐름뿐만 아니라 동구역사의 산증인이다.
 
1월 12일(일)까지 이어지는 전시기간 동안 작가는 가끔씩 전시장을 들른다. 운이 좋다면 멋진 풍광과 함께 작가가 들려주는 생생한 동구의 변천사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시윤 기자
 
 
▲ 박대련
(현. 한국미협, 부산미협 원로작가. 한국예술교육협회 고문) 부산여류회 창립전~38회, 부산미술제 초대, 부산회화제 초대 / 부산·후쿠오카 미술교류전, 영·호남 미술교류전 외 200여회 / 부산미술대전 심사위원(’97, ’09) 나혜석미술대전 심사위원, 송혜수미술상 심사위원, 부산시립미술관 작품심의 위원, 부산여류전 회장 등 역임, 2013 부산예술대상 수상
 
[2013년 12월 23일 제47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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