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하구의 농어촌 마을, 사상 사람들의 기억과 삶의 흔적을 따라 추억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됐다.
사상구 삼락천변을 따라 죽 걷다가 덕포시장 입구쯤에 다다르면 부산 사상구(구청장 송숙희)가 전국 기초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공식 박물관 승인을 받은 ‘사상생활사박물관’(관장 서석환)이 자리하고 있다.
사상생활박물관 외관
‘사상생활사박물관’은 2013년 부산시 강동권 창조도시 조성사업의 하나로, 삼락천 인근에 대지면적 704.47㎡에 연면적 641㎡, 지상 3층 규모에 전시실, 체험장, 수장고, 문화마당, 주민쉼터, 아트홀, 주차장 등을 갖추고 건립돼 지난 5월 6일 개관했다.
‘사상생활사박물관’ 개관기념 특별전 ‘아름다운 공유Ⅰ’개최
지역 주민 함께 꾸린 ‘전국 기초자치단체 최초 박물관’
지역 주민 함께 꾸린 ‘전국 기초자치단체 최초 박물관’
1960∼1980년대 사상지역 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이 박물관은 오는 7월 20일(수)까지 개관 기념 특별전 ‘아름다운 공유Ⅰ’이 한창 진행 중인상황.
박물관 1층으로 들어서면 벽면과 엘리베이터 구분 없이 산, 강변 모래터, 고기잡이배와 철새가 어우러진 환한 그림이 관람객을 맞는다.
2층에는 담소방과 문화마당터가 있다. 문화마당터에는 ‘꽃을 사랑한 여인과 갈대를 엮는 사나이’를 주제로 ‘카네이션 할머니’와 ‘갈대로 빗자루를 엮은 사나이’의 사진이 세월과 사연을 품고 전시돼 있다. ‘카네이션 할머니’ 송덕수 어르신은 삼락동에 약 39,000㎡(약12,000평) 대흥농장을 경영하며 한 평생 사상에서 카네이션과 함께 했다.
그런가하면 감전동에는 갈대로 빗자루를 엮은 사나이가 있었으니, 때를 맞춰 채취한 갈대꽃을 정성스레 준비해 색실로 알록달록 옷을 입혀 빗자루 하나에도 정성을 가득 쏟았던 배영희 어르신이다. 어르신은 박물관 개관식 때 갈대빗자루 제작 시연을 하기도 했다. 갈대를 엮으며 살아온 그 정성스런 손길이 사라져 가는 아쉬움을 달래 듯 전시실에는 갈대빗자루 여러 점이 전시돼 있다.
농업, 갈대업,어업 유물들과 정성 가득한 갈대빗자루
3층 입구 오른쪽에는 이 박물관의 설립 과정이, 왼편에는 사상구의 멋진 풍경을 모아서 그린 ‘사상팔경도’가 있다. 모퉁이를 돌면 삼국시대부터 2016년까지 사상구의 역사를 보여주는 연혁표와 사상구 일대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옛날지도, 장마때 물을 퍼내던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총 3개의 테마로 이루어진 3층 전시실 중 1전시실은 “강, 사상 삶의 젖줄”을 주제로 펼쳐진다. 농업, 갈대업의 대표유물로 벼이삭을 추려내는 훑개와 곡식을 계량하던 말, 되 50년대 원예잡지, 갈대발을 만드는 틀과 빗자루가 전시돼 있다. 고이 보전된 고문서《사상면 방경 전말 등록》은 1832년 샛강에 제방을 쌓았던 정황을 기록한문서라고.
어업유물로는 장어를 잡던 통발과 장어 갈퀴가 있는데, 옛날 이 지역에는 장어가 많아서 갈퀴를 휘두르기만 해도 장어가 잡혔다고 한다. 그 앞에 놓인 강굴껍질은 그 크기가 놀랍다.
재첩국 양동이를 이고 “재첩국 사이소~!”를 외치며 골목길을 누비던 아낙네들의 소리를 기억하는가? 이곳에서는 스피커를 통해 그 생생한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재첩을 담는 소쿠리와 20년여 년 동안 감전동에서 재첩국 장사를 한 할머니의 재첩국 양동이, 국자, 재첩장사를 할 때 사용하던 도구들도 함께 진열 돼 있다.
“옛날에는 재첩국 장사 아주머니들이 재첩동이를 이고 걷고 걸어서 구덕산을 넘어 대신동과 대청동까지 가서 재첩을 팔았다고 하며, 기차를 타고 서면, 수영, 해운대까지 가서 재첩을 팔았다”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그들의 생활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이 간다.
현재 사상초등학교의 전신으로 1910년 개교한 ‘사립명진학교’ 표지판을 뒤로한 아담한 교실에 들어서면 얘깃거리는 더 많아진다. 칠판 아래로 놓인 책가방, 옛날 과자봉지, 알루미늄 도시락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발을 부지런히 밟아 연주하던 풍금, 나무 책걸상, 진열장에 놓여있는 손때묻은 교과서, 종이인형, 왕자파스는 추억의 선물처럼 마음에 다가온다.
‘모래톱에 불어온 근대화의 바람’을 주제로 한 2전시실에는 신발 산업을 중심으로한 사상공단의 설립 과정과 당시 신문, 공단 뉴스 영상이 흥미를 끈다. 1969년 사상 공단으로 이전해 사상구의 대표적인 기업이었던 국제상사의 작업복과 공장의 사진, 운동화를 생산하던 영상과 함께 그 당시 여공으로 일하던 할머니의 회고담도 볼 수 있다.
공장 근로자들이 생활했던 방과 부엌
2전시실 한 면에는 당시 공장근로자들이 생활하던 부엌 딸린 단칸방 모형이 있다. 무려 3명도 생활했다는 좁은 방에 당시 입었던 옷가지가 걸려있고 요강이 놓여 있다. 부엌에는 석유곤로와 양은 솥, 사과상자를 엎어 만든 작은 선반, 소쿠리와 빨래판, 빨래 방망이가 있는데 최소한의 기본 살림으로 살아가던 소박한 생활이 엿보인다.
‘사상의 오늘과 미래’를 주제로 한 3전시실에는 공업화로 인한 환경오염을 극복해 나가는 사상 사람들의 모습과 밝은 미래를 제시하고 있으며 사상구의 볼거리, 맛 집, 즐길 거리에 대한 정보를 더치 패널을 이용해 찾아 볼 수 있다.
3전시실을 지나 들어서게 되는 ‘샛강공방’은 지역의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주민들의 멋과 솜씨를 재현하는 장소다.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지금은 잊혀져가는 낯설고도 친근한 물건들이다.
해질녘이면 어느 집에선가 ‘똑각똑각’ 경쾌하게 울려 퍼지던 다듬이질 소리...옛 아낙들의 고단한 일상을 담아내고 있는 ‘다듬잇돌’과 '다듬잇방망이’가 정갈하게 놓여 있다.
추운 겨울밤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밤을 구워먹던 등잔불 아래 화로, 숯을 꺼내 담아 옷을 다리던 다리미, 할아버지의 동정을 다리던 인두도 운치를 더한다. 당시 소한 마리 가격으로 고가였어도 혼수품으로 명성이 높았던 ‘재봉틀’, ‘탁탁탁 차락’ 소리와 함께 활자가 찍혀나가던 타자기, 인기 연속극이라도 방영되는 날이면 동네사람들을 어김없이 불러 모으던 흑백텔레비전...
낯설고도 친근한 그 시절의 물건들
이곳에선 그립고 정겨운 물건들이 뿜어내는 오래된 향기에 한껏 취할 수 있다.
박물관 관람후기나 사상구에 바라는 희망사항을 엽서에 적어 붙이는 ‘사상에게 보내는 편지’코너에는 그 사이 많은 사연들이나 붙어 있다.
사진전 ‘그땐 그랬지’를 따라 시간여행을 즐기고 옥상의 ‘신사상팔경대’로 가서 사상 일대의 시원스런 풍광까지 본다면, 흘러온 세월만큼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말 그대로 ‘아름다운 공유의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전국 최초 주민참여형박물관인 ‘사상생활사박물관’에는 ‘샛강 사람들’로 불리는 60여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있다. 이들은 박물관 운영부터 전시해설까지 담당하고 있는데 사상지역의 역사를 알리는 ‘주말엔 박물관에서 놀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시니어 재능나눔사업의 하나로 6명의 어르신이 박물관 전시장에서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박물관 관람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 까지이며 매주 월요일(공휴일이면 다음날)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단체 관람의 경우 전문해설사의 설명도 들을 수 있다. 051-310-5138
박정은 기자
[2016년 6월 24일 제77호 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