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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미술

기존의 미학적 가치관에 반기를 들다




마르셀뒤샹-샘.jpg뒤샹-자전거바퀴.jpg

 
마르셀 뒤샹(Duchamp Marcel):1887-1968
작품명 : 파리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샘" 1915년작 "자전거바퀴"



M.뒤샹(1887-1968)은 프랑스 블랭빌에서 출생하여 일상주의 화풍부터 야수파와 입체파들의 작품경향을 고루 수용하면서 초기에는 비교적 아카데믹한 정통미술의 단단한 기반을 다지고 50년에 접어들면서 기계와 사람의 육체가 결합 한듯한 작품을 시도하여 기존의 회화적 정통성을 파기하기도 하였다.


결국 그는 다다이즘(DaDaism)의 중심인물로서 부각되는 획기적 계기를 마련하게된다. 그실례로 1912년에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현재,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을 비롯한 “자기자신을 풀이하지않기 위하여”등의 다분히 DaDa 정신에 입각한 정체성을 간직한채 기존의 미학적 가치관에 대한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비로소 1913년 뉴욕 아모리쇼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에서 세계 미술계에 이미 크나큰 스캔들로 지목되었고 따라서 1964년에는 드디어 “자전거 바퀴”를 뉴욕화랑가에 처음 선을 보이는 계기로 그의 뉴욕생활이 시작된다.


이 작품은 실제 자전거 바퀴를 의자에 붙인 상태로 뒤샹의 서명과 함께 미술작품으로 전시되었다. 한편 관람객들은 이를 움직여 돌려볼수있었다. 당시 많은 미술형태들의 혁신적인 선구로서 이 작품은 미술품이 미술가에 의해 “창조된” 손댈수 없이 귀한 것이라는 개념을 뒤엎은 것이다.


기성품(Ready made)으로 알려진 이런 일상용품들은 뒤샹에 의해 미술품으로 변신하여 갤러리 공간에 놓여져 기존의 미술(미학)의 가치를 뒤집는 결과를 낳게된 것이다. 이런 전통적 미술행위에 대한 거부가DaDa운동의 특징으로, 이를 주도한 인물이 되었다.


또한 이어서 그는 1915년 “샘”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단순 남성들이 사용하는 소변기통을 그대로 전시장에 옮겨놓은 것이다. 당시 뉴욕의 “앙데팡트전”에 출품하려다가 심사위원들로부터 거부당하자 그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창간한 미술잡지 “눈 먼 사람”(The blind man) 창간호에서 “6달러하는 참가비를 낸 모든 화가는 작품을 전시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라고 항변했다.


이 레디 메이드(기성품)는 기존의 미술이 누리던 전통적 권위에 가해진 일격이었던 동시에 이른바 고귀한 취향이란 것에 대한 비판, 지적, 세뇌 그리고 무관심이라는 원칙의 적용이라 할 수 있을만큼, 여기서는 아름다움과 추함의 개념이 전혀 무의미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특히 그에 있어 “기성품”의 하나인 모던아트(Modern art)에서 오브제의 하나로 실용성으로 만들어진 기성품이라는 그 최초의 목적을 떠나 별개의 의미를 갖게한다. 뒤샹의 변기, 술, 병걸이, 자전거바퀴, 삽 등은 예술작품으로 제출한데서 출발한다.


미개인의 오브제등과 의미가 다른점은 이것은 적어도 기계문명에 의해 양산되는 제품으로서 거기에는 일품제작의 수공예품인 예술품에 대한 역설적인 의미가 숨어있음과 동시에 물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암시되어있다.


그는 이 경우를 예술작품의 비인간화 “물체에 대한 새로운 사고”라고 부르고 있다. 그가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는 1차대전이 거의 끝날무렵으로서 전쟁을 통해 기존체제에 대해 매우 큰 반발이 야기되는 무렵이었고 따라서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해 저항의식으로 시대정신적 운동이 바로 다다이즘으로 이어져 그 중심에 바로 뒤샹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평소에도 “예술이란 진실과 마찬가지로 그 실체가 없다”라고 술회했다. 결국 그는 미(美)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 화가요, 미술이론가였다. 어떤 비평가는 뒤샹을 가리켜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놓음으로서 산업화 사회로 도래한 물질주의 시대, 그리고 대량생산시대에 새로운 예술가로 탄생한 것이다. 그를 만든것은 오히려 현대 자본주의와 대량 생산시대가 낳은 산물일지도 모른다.



백경원.jpg

 

[20171027일 제9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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