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광무제(光武帝)가 뤄양(洛陽)을 도읍으로 한을 재건했을 무렵의 일이다. 전한 말 중국은 장안을 점거한 적미적(赤眉賊)의 유분자(劉盆子)를 비롯하여, 간쑤성 농서의 외효(隗囂), 쓰촨 촉의 공손술(公孫述), 허난 수양(睢陽)의 유영(劉永), 안후이 노강(盧江)의 이헌(李憲), 산둥 임치(臨淄)의 장보(張步) 등이 할거하고 있었는데, 그 중 몇몇은 스스로 황제라고 일컬을 정도로 세력이 컸다. 한을 재건한 광무제는 이들을 하나씩 모두 토벌하고 농서와 촉만 아직 복속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 중 세력이 약한 외효는 광무제와 공손술 간에 양다리 외교로 명맥을 유지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외효가 죽자 그 아들이 광무제에게 항복함으로써 마침내 농서도 후한의 손에 들어왔다. 이때 광무제가 한 다음과 같은 말에서 득롱망촉이라는 말이 비롯되었다. “두 성이 함락되거든 곧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촉나라 오랑캐를 쳐라. 사람은 만족할 줄 몰라 이미 농서를 평정했는데 다시 촉을 바라게 되는구나. 매양 군사를 출동시킬 때마다 그로 인해 머리가 희어진다”
이와 같이 득롱망촉이란 하나를 이루면 그 다음이 욕심난다는 뜻으로,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속성을 드러내는 말이다. 평롱망촉(平隴望蜀)이라고도 한다.
출전:《후한서(後漢書)》
[2022년 9월 23일 148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