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은 회음(淮陰)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집이 가난하였다. 덕행을 쌓지 못해 벼슬자리에 뽑히지도 못했고 장사꾼이 되어 돈을 벌어들이지도 못한 채 늘 남의 신세를 지며 생계를 이어갔다. 어느 날 한신이 성 아래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빨래하던 아낙이 그를 불쌍히 여기고 밥을 주었다. 수십 일을 그렇게 얻어먹고 나서 한신이 말했다. “제가 후에 반드시 이 은혜를 두터이 갚겠습니다” 이에 아낙이 화를 내며 “젊은 대장부가 제 힘으로 먹고 살아가지도 못하니, 나는 그대가 불쌍해서 밥을 차려준 것이오. 무슨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란 말이오”라고 하였다.
회음의 한 젊은이는 “다 큰 성인 남자가 칼 차고 다니기나 좋아하고 겁만 많다니”라고 한신을 비난하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한신을 망신줄 요량으로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그 검으로 나를 찌르시오, 하지만 죽음이 두렵다면 내 다리 밑으로 지나가시오(能死, 刺我; 不能, 出跨下)”라고 하였다. 한신은 젊은이를 한참 보다가 몸을 구부려 그의 바짓가랑이 밑으로 기어서 지나갔다.
불우했던 젊은 시절의 한신은 이처럼 미천하고 무능력한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후에 능력을 인정받고 한나라의 무장이 되어 유방(劉邦)의 군사를 이끌며 초(楚)나라 항우(項羽)를 패배시키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 고향으로 금의환향한 한신은 어려웠던 시절 밥을 먹여준 정장과 빨래하던 아낙에게 은혜를 갚았으며, 저자거리에서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는 치욕을 준 사내는 치안을 담당하는 관리로 임명하였다고 한다.
과하욕은 훗날의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 잠시의 치욕이나 고생을 감수할 줄 아는 담대한 성품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출전:《한서(漢書)》
[2022년 11월 18일 149호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