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말기의 학자 응소(應邵)가 지은 ≪風俗通(풍속통)≫에 자신의 할아버지 응빈(應彬)이 남긴 말 중에 두선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는 이상한 것을 보고 놀라 스스로 병이 되는 사람이 많다……. 우리 할아버지 응빈이 급현(汲縣) 원이 되었을 때 일이다.
하지(夏至) 날 문안을 온 주부(主簿) 두선(杜宣)에게 술을 대접했다. 마침 북쪽 벽에 빨간 칠을 한 활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그것이 잔에 든 술에 흡사 뱀처럼 비치었다. 두선은 오싹 놀랐으나 상관의 앞이라서 그냥 아무 말도 못 하고 억지로 마셨다.
그런데 그날로 가슴과 배가 몹시 아프기 시작, 음식을 못 먹고 설사만 계속했다. 그 후로도 아무리 해도 낫지 않았다. 그 뒤 할아버지 응빈이 두선의 집으로 가서 문병할 때 까닭을 물었더니 두선은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두선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놓고 여러모로 생각하던 끝에 벽에 걸린 활을 돌아보며, ‘저것이 틀림없다’ 하고 사람을 보내 두선을 가마에 태워 곱게 데려오게 했다.
그러고는 자리를 전과 똑같은 위치에 차리고 술을 따라 전과 같이 뱀의 그림자가 비치게 한 다음, 그에게 말하길, ‘보게, 이건 벽에 걸린 활의 그림자가 술에 비친 걸세. 괴물이 무슨 괴물이란 말인가’ 하고 일러 주었다. 그러자 두선은 갑자기 새 정신이 들며 아픈 증세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출전《풍속통(風俗通)》
[2022년 4월 28일 143호 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