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4월 29일

건강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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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 분야에서 아니요, 당신은 수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라고 환자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개원 의사는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현실적인 문제와 이유로 질환의 치료가 아닌 성형과 같은 비보험 성형수술 분야에서 환자를 돌려보내는 의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여성 음부 성형수술에 관한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환자 한 분이 있다. 30대 중반인 그 여성은 질 성형수술을 원하여 필자의 병원을 방문했었다. 그녀는 왠지 불안해하고 서두르는 듯했다.

천천히 병력을 들어보니 그녀는 아무래도 자신이 남편을 성적으로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약 1년 전에 질성형술을 한번 했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또 다시 질이 헐거운 느낌이 들어서 다른 병원에서 2차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여전히 자기 자신이 남편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불과 1년이 지나지 않은 짧은 기간에 3차 수술을 받기 위해 필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상태는 지극히 정상적이었고 검사상 질 수축력도 매우 양호한 편이었다. 자세히 병력을 물어보니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고 여전히 이 질환의 증상은 남아 있었다. 질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임을 파악한 필자는 수술을 할 필요도 없고 수술하기도 힘들다며 정신과 치료를 더 받으시라고 환자를 돌려보낸 적이 있었다.

그 후 1년이 지나 그 환자가 필자를 찾아 왔다. 이번엔 성교통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환자는 다시 강남의 한 산부인과를 찾아가서 질 안에 필러 삽입 시술과 임플란트 질성형술이라고 불리는 실리콘 질을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그 이후로 성교통이 생겨 전혀 부부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만난 의사 중에 수술을 하지 말라고 한 의사는 필자 밖에 없었기에 이 의사선생님이라면 좀 더 객관적으로 얘기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필자를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이미 수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질이 너무도 좁은 상태인데도 몇 차례의 수술을 반복한 이 환자에게 이런 시술을 또 다시 시행했으니 삽입된 이물질로 인해 성교통이 생기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극심한 통증으로 아예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이물질을 제가하는 수술을 하면서 왜 할 필요도 없는 수술을 해서 이런 고생을 하느냐며 환자를 나무랐지만 사실은 이런 약한 환자의 마음을 이용하여 하지 않아도 될, 아니 하지 말았어야 할 수술을 시행했던 그 의사들에게 더 화가 났었는지도 모른다.

그 의사들에게 이 환자가 돈으로 보였거나 아니면 성의학적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성 음부 성형수술에서도 분명히 적응증과 금기사항이 존재한다. 하지만 성형분야에는 어느덧 경계논리로만 접근하는 의사가 많아짐으로써 당신은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하는 의사가 거의 멸종(?) 직전까지 와 버렸다. 같은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이로서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질성형술은 출산으로 인해 늘어난 질을 출산 이전의 상태와 유사하게 좁혀서 되돌려 주는 질 회춘술의 개념으로 부가적으로 음취증이나 직장류, 방광류 등을 개선시켜 주는 것이지 마음의 문제나 정신과적 성의 문제까지 개선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주된 문제가 성행동이나 심리적인 문제라면 성 치료나 인지행동치료, 또는 성교육 등 다른 치료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모든 여성의 성 문제를 질성형술과 같은 수술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과장광고를 하고 있는 일부 병원을 보면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소음순 성형수술 역시 수술을 하지 말아야 할 경우가 있는데 자신의 몸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이거나 치료되지 않은 섭식장애가 있는 경우라든지, 끊임없는 성형수술로 자신의 몸을 교정하려는 환자인 경우, 그리고 강박증이나 편집증이 있는 경우,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함부로 수술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신성한 의학적 판단이 아닌 다른 이유로 수술을 하지 말아야 할 환자에게 수술을 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수술을 시행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라고 말할 수 있는 의사가 마치 신기한 동물처럼 여겨지는 오늘의 의료 현실이 또한 너무 아쉽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의학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서 또한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은 의사가 되어야 하는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 또한 의료현장의 역설이다.

다행히 수개월이 지나 다시 그 환자의 경과를 추적관찰 해보니 이제는 수술에 대한 강박증에서 벗어나 우울증 치료를 잘 받고 있다고 한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도 또 다른 수술이나 병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조금씩 그녀의 성생활에서 행복을 되찾아 가고 있다니 정말로 다행스러웠다.

한국의 의료현실에서 비단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어두운 우리 의료계의 뒷모습이며, 필자 역시도 이런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낮은 수가와 같은 한국 의료제도의 구조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비보험 분야의 의료 영역에 많은 의료인들이 경쟁하다 보니 이런 일들이 생긴다. 진정으로 라고 말할 수 있는 의사들이 그립다.

 

[20171027일 제9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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