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뜨겁게 사랑했던 두 주인공 은수(이영애)와 상우(유지태)가 이별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그만 헤어져!”라고 말하는 은수에게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우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반문한다.
많은 사람은 사랑이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도 계절의 흐름처럼 변해가는 것이다. 아니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속도로 사랑은 변해 간다. 수많은 시인이나 문학가나 철학가들이 사랑에 대해서 정의하고 규정하려 하지만 사랑의 본질에 대한 접근은 영원한 인류의 숙제일지도 모른다.
성의학자로서 사랑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여 사랑 또는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화학물질과 호르몬의 변화에 따른 현상이라고 말한다면 그 낭만적인 사랑이 너무나 삭막하게 느껴지진 않을까?
사랑의 단계는 크게 세 단계를 거쳐 나아가는데 서로의 매력에 끌리게 되는 ‘첫 이끌림’단계, 그리고 서로에게 홀딱 빠지게 되는 ‘열정적 심취’단계, 그리고 흥분과 설렘이 지난 후 믿음을 가진 애정으로 서로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애착’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이끌림’ 단계에서는 페로몬이라는 유혹의 화학 물질이 분비되어 이성을 유혹하게 된다. 그리고 ‘열정적 심취’ 단계에서는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물질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성적 욕구와 흥분이 증가하고 심박동 수를 증가시키게 된다. 여기에서 더 사랑이 발전하게 되면 페닐에틸아민이라는 물질이 분비되고 사랑에 빠졌다는 전형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소위 말하는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 상태로 황홀감, 무아지경에 빠진 느낌, 행복감, 성적 욕구 등을 느끼게 되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맛보게 되는 가장 행복한 시간일 수도 있다. 이 시기에 사랑의 느낌을 섹스를 통해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또 섹스를 통해 친밀감을 더욱 더 고취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페닐에틸아민은 6개월이 지나면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하고 18개월 이후에는 거의 완전히 없어진다. 이때쯤이면 더 이상 사랑은 가슴 뛰는 설렘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서로 간의 신뢰관계를 통해 ‘애착’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이 시기쯤 되면 ‘사랑이 변해간다’고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랑이 변했다고 느낄 때쯤이면 성 클리닉을 찾아오는 여성들을 많이 보게 된다. 놀랍게도 많은 수의 여성이 젊고 아름다운 신혼 초의 아직 출산도 하지 않은 여성들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미혼 여성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더 이상 성의 문제는 젊은이들에게서 이불 속에 감춰진 문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대상이자 공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건강의 문제가 된 것이다.
과거 우리의 성교육은 획일적으로 ‘피임을 잘해야 한다’거나 ‘순결을 목숨처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거나 성병에 대해 지나친 공포를 확산시킴으로써 성인이 되어 건전한 성생활을 해야 할 시기에 성에 대한 왜곡된 선입견을 심어주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었다.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획일적인 성교육이나 성장 환경이 여성 성기능 장애의 주요한 원인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료실에서의 성 상담과 치료과정에서 많은 환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의 몸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치게 된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출산과 노화과정을 거치면서 남성보다 더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성욕을 조절하는 호르몬도 감소하게 되고 성관계를 할 때 윤활액의 분비도 잘 이뤄지지 않으며 또 오르가슴의 빈도도 떨어지게 된다. 출산 후 질의 헐거움이 심해져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거나 성감의 감소를 가져오기도 하고 요실금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더 간절해지지만, 남편과의 사랑할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의 약 40% 이상의 부부가 한 달 동안 한 번 이하의 성관계를 갖는 섹스리스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통계를 보면 스페인이나 브라질 등의 부부간의 성생활의 만족도는 약 60~70%에 달하는 것과 비교해서 한국인 부부의 경우 남녀 모두 7~9% 정도만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하였다. 그리고 여성의 약 40%에서 여성 성기능장애를 호소하고 있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들(한국인들)’이 밤마다 잠만(?)자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반문하는 상우의 대사처럼 우리는 그동안 사랑이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 믿어왔던 것은 아닐까? 봄날의 기억은 그렇게 흘러가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과 겨울이 오듯이 사랑 또한 계절의 흐름처럼 변해가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의 참모습일 것이다. 다만 변했다고 슬퍼하기 전에 적극적인 치유를 위하여 현대의학과 손잡는다면 변해가던 사랑이 굳건한 믿음의 ‘애착’ 단계의 사랑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훨씬 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새로운 사랑의 모습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017년 8월 25일 제91호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