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간에도 우정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는 수많은 청춘 남녀들이 한번쯤은 품어 봤음직한 질문일 것이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고민해 보았다면 쉽게 풀리지 않는 주제임에 틀림없다.
남녀 간에도 절친한 우정이 존재한다고 믿던 남녀 사이가 어느 날 갑자기 멀어지기도 하고 각자의 연인이 생기면서 점점 잊히기도 한다. 때론 아주 드물지만 친구사이에서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일까지도 있다. 하지만 많은 심리학자는 남녀 사이의 우정을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이른바 ‘흔들리는 우정’이란 남녀 간의 우정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수 년 전 필자가 즐겨봤던 TV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란 코너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봤었다. 짝이 있는 남녀가 이성 친구를 만날 경우 만나서는안 되는 친구를 정해주는 내용이었는데 여자의 경우는 ‘같은 종교오빠’가 위험인물이었고 ‘엄마친구 아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동창, 특히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는 피해야 한다고 했다. 반대로 남자의 경우에는 ‘여자는 모두’ 이성친구로 위험하다는 내용이었다. 100% 공감하는 내용에 나도 모르게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 코미디의 내용처럼 남녀 간에는 남녀 사이의 우정을 바라보는 만연한 시각차가 존재한다. 이성친구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진화 심리학계에서도 불모지나 다름없었는데 진화심리학자 에이프릴 블레스케 레첵교수의 연구는 우정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남녀 간의 엄연한정도의 차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블레스케는 이성 친구를 “나와 낭만적인 연애를 하지 않는 절친하고 중요한 이성상대”라고 정의했다. 조사에서 이성친구와의 성적 접근가능성을 이성친구가 주는 잠재적인 이득이라고 남녀 모두 생각하였는데 이러한 경향은 여성보다 남성이 2배 정도 더 높았다.
남성의 경우 애인이나 배우자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이성친구에게서 여성보다 2배 더 성적인 욕망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조사에 의하면 여성의 경우엔 그들의 남성친구들이 자산에게 끌리는 정도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반대로 남성의 경우에는 이성친구가 자신에게 끌리는 정도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남성의 경우 정착 여성친구는 성관계 따위는 꿈꾸지 않는데 그녀가 어느 정도 자기에게 성적으로 끌리고 있다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은 ‘섹스가 없기 때문에’ 이성과의 우정을 먼저 끝내 버리는 경향이 여성보다62% 더 강하며, ‘애정이 식었기 때문에’ 이성과의 우정을 끝내는 경향도 여성보다 65% 더 강했다. 블레스케의 연구는 남녀 간의 우정에서 섹스가 끼어들 여지가 없음이 분명해졌을 때 남성은 이성과의 우정을 끝내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정말로 남녀 사이에는 우정이 설자리가 없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각자의 연인이 있음에도 불고하고 이성친구로 서로 만나고 있는 남녀는 어떻게 설멍해야 하는 것일까? 여성은 남성친구를 두고 싶어 한다. 그들은 우정과 경제적 도움을 주고, 어려울 때 보호를 제공하며, 남성의 속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때로는 자존심을 높여주는 일까지 한다. 남성 역시도 여성 친구로부터 우정, 정보 그리고 때로는 잠재적인 애인까지 소개받는 등 많은 도움을 얻는다. 하지만 그들이 꾸는 꿈은 서로 다른 것이다.
많은 수의 남성이, 그리고 일부의 여성만이 이성친구에 대한 성적인 욕망을 품는다. 때때로 이 욕망이 결실을 맺기도 한다.우리 인간의 뇌 속에 있는 친밀감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때론 낭만적 사랑을 일으키는 도파민의 분비를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처럼 말이다.
남녀 간의 우정이라는 것은 실은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가장 핵심적으로 그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다. 대다수 여성은 남성친구의 성적욕망을 채워주려 하지 않는다. 비록 때때로 남성은 자신의 여성친구가 그렇게 해줄 것이라는 헛된 희망에서 헤어나지 못하지만 말이다. 서로의 희망이 어긋났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동상이몽에서 깨어날 때 우리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냥 친구’로 시작한 두 남녀 사이는 불행한 결말을 맺게 된다.
그렇다면 왜 남성은 여성친구가 자신에게 끌리는 정도를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만약에 여성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데도 이를 과소평가해버린다면 아예 번식의 기회를 가질 수조차없을 것이다. 즉 여성의 관심을 과대평가하는것이 진화나 번식의 측면에서 보면 유리한 우성인자였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남녀 간의 우정이란 것은 어쩌면 각자의 성에 따른 관점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꾸면서 다가올 잠재적인 결론을 기다리는 불안정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2015년 8월 26일 제67호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