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일이 전쟁처럼 여겨지는 여성들이 있다. 그녀들에게는 가장 황홀해야 할 시간이 가장 무섭고 두려운 시간이다. 질경련이라는 질환이 사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성의학자들에게는 그렇게 낯선 질환은 아니다.
유병률만 보더라도 성인여성의 약 15%정도가 되므로 성인여성 10명 중에 한 두명은 이 질환을 앓고 있을 만큼 흔한 질환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병의 경중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심하지 않은 경우는 질경련인 줄 모르거나 그냥 무심코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성교통을 가진 여성 중에 꽤 많은 숫자가 질경련을 앓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년 전 필자의 클리닉을 찾았던 K씨의 경우는 전형적인 질경련 환자로서 결혼 후 약 3년이 지났음에도 전혀 성관계를 못 할 정도로 증상이 심한 상태였었다. 대부분의 질경련 환자가 그러하듯이 결혼 후 아기가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시부모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을 찾아왔었다.
K씨는 이 증상으로 일반산부인과에 갔다가 진찰대 위에서 제대로 다리를 벌리지 못한다고 심한 호통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병원에서는 너무 긴장하지 말라는 조언과 함께 윤활제를 처방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K씨가 아무리 마음을 편하게 먹고 성관계를 하려고 해도 심한 공포감과 긴장 때문에 번번이 성관계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질경련에서 또 다른 문제는 남편 역시도 오랫동안 성생활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자위에 의존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성욕을 해결하다 보니 가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또 조루나 사정 장애, 발기 부전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질경련이 의심되면 이를 그대로 방치하지 말고 즉각적인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
질경련의 가장 핵심적인 병리기전은 ‘삽입 공포’이다. 성기뿐만 아니라 탐폰이나 질경 등을 삽입할 때도 심한 공포감으로 질 근육이 움찔거리거나 수축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공포감이 골반바닥근육의 과도한 근긴장과 함께 회피반응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하고 있다.
질경련은 대표적인 성교통증질환인 유발정 전정통(외음전정염)과 증상이 유사하게 나타나기도 하며 유발성 전정통 환자에서 증상이 서로 겹쳐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삽입에 대한 공포가 질경련에서는 핵심적인 병리기전이며 유발성 전정통과는 달리 전정부의 통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K씨의 경우도 검사상 전정부의 통증은 없었고 삽입 공포가 주 증상이었다. 치료의 핵심도 이 삽입 공포를 극복하도록 하는데 있는데 약 3개월 정도 통원치료를 받다가 최근에 소식이 없어서 전화를 해보니 K씨는 치료가 잘되어 벌써 임신을 해서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질경련은 보통 사람이 누리는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게 하는 질환이다. 보통의 부부에게는 당연한 성생활이 어떤 부부에게는 고통, 공포, 공허함을 줄 수도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질경련은 물리치료와 심리치료, 인지행동치료 등을 통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면 90% 이상에서 치료가 될 만큼 매우 치료의 예후가 좋은 질환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성 치료 프로그램을 가지고 치료하면 질경련으로 결코 두렵거나 무서운 밤을 보내는 일이 없을 것이며, 새로운 신혼이 시작되는 기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뒤늦게 신혼의 단꿈을 갖게 된 K씨 부부에게 진심으로 축하와 박수를 보낸다.
[2017년 2월 23일 제85호 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