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후 우리나라에서도 와인 문화에 관심과 호감을 많이 가졌던 시기가 있었다. 이때에 자생적으로 많은 와인 동호인 모임이 생겨났고 그 중에서 대형 동호인 모임은 회원수가 수 천명에 이르기도 하였고 또 활동도 아주 적극적이었다.
서울에서는 매일 저녁 많은 와인 동호회들이 레스토랑이나 와인 바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고 와인 맛을 보고 또 열심히 와인 공부를 하였다. 이 기간을 필자는 한국 와인의 2차 르네상스 라고 규정한다.
이 2차 르네상스기간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막을 내렸고 그 이후 특히 내수 경제가 침체하면서 한국 와인시장은 어려운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와인의 소비는 감소와 아주 미미한 증가를 반복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에서 와인이 대중화되었고 생각하고 또 와인을 많이 마시고 있어서 한국의 시장이 상당히 큰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제로 우리 나라의 와인 소비는 많지 않다.
1990년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이 반 병이 안된 수준에서 2016년 현재 1인당 반 병은 넘었으나 1병은 아직 안되는 수준이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1990년에는 거의 0에서 지금은 1인당 연간 약 2병을 마시고 있고 일본은 지금 1인당 약 4병 수준으로 마시고 있다.
아시다시피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국내 경제 환경의 영향으로 우리 나라의 와인 산업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에도 경제가 어려울 때에 많은 와인 숍, 와인 바들과 레스토랑들이 문을 닫았고 또 어려움을 겪던 와인 수입회사들도 문을 닫았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이 과거와 다르게 심각한 것은 지금은 소규모 업체들이 아니라 Top5 와인 수입 회사들이 흔들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재작년에는 수입 와인 업계 4~5위인 나라셀러가 매각되었고, 금년 5월에는 업계 5~6위인 길진인터내셔날이 파산했고 지난달에는 업계 1위인 금양인터내셔날이 건설 회사에 매각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와인 업계 전체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큰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과 같이 와인 수입 업계 Top 5 회사들이 흔들리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국내 경기의 어려움과 관계가 많겠으나 크게 보면이러한 현상은 이미 예견되던 일로서 필자가 이점을 이미 경고한 바가 있었다.
일본의 예를 참고하면 1980~1990년대에 일본에서도 일본 국산 와인의 퇴조와 수입 와인의 성장으로 많은 와인 수입 회사들이 생겨나서 발전을 해왔다. 특히 산토리 회사는 국산 와인의 생산에서도 가장 큰 회사 중의 하나였으며 와인의 수입에도 적극 참여해서 일본에서 가장 큰 와인 수입 회사였다.
그러나 1990년을 전후로 산토리의 수입 와인 판매가 급감하였다. 이것은 유통의 변화에서 왔다. 와인 산업이 발전하고 유통 산업이 발달하면서 많은 백화점들과 수퍼 체인의 본부들이 자체로 와인을 수입하고 또 작은 수퍼들도 조합을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와인을 수입하게 되면서 산토리가 많은 고객들을 빼앗기게 된 것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초창기에 와인 수입 회사들은 유통과는 관련이 없는 회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백화점 등의 유통 회사들이 와인의 비중이 커지고 소비자들의 관심이 많아지는 것을보고 와인을 직접 수입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롯데계열 백화점, 마트 등과 신세계 계열 백화점과 이마트, 현대 백화점 등이 직접 와인을 수입하게 되면서 초창기에 큰 역할을 해 오던 와인 수입 회사들이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와인 수입 회사가 백화점이나 마트에 와인을 납품하면 매상의 약 30% 판매 수수료를 백화점에 주어야 하니 남는 장사가 아니고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효과밖에 없었다. 판촉 직원을 매장에 파견해야 하고 또 수시로 하는 세일에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 하는데 이럴 때는 팔수록 적자를 보는 형편이니 백화점과 마트에서 와인을 팔아보아야 수입 회사는 이익이 별로 나지 않는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통회사 계열이 아닌 와인 수입 회사들은 Top5라고 하더라도 견디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대형 유통회사 계열 와인 수입 회사들이 시장에 주역으로 등장하게 되면 백화점, 마트에서 대형 유통회사의 와인 회사들이 상호 교차입점하고 이들 위주로 판매되고 이외의 와인들은 매대에서 철수가 예상된다.
또한 저가 와인은 마트에서 주로 판매, 고급 와인은 백화점 위주로 판매하게 되어 와인 전문 숍의 판매 위축은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 와인 수입 회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에는 여러 가지의 문제가 있겠으나 그 중에 하나인 유통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따라서 중소와인 수입회사들은 마트의 와인납품에 목을 매지 말고 SNS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에 주력하기 바란다. 스토리가 있는 와인이어야 소비자들이 더 관심을 가진다는 점을 주목하자.
대기업은 대기업대로의 약점이 있다. 고급 와인 시장에서 시장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다 보면 제품의 종류가 너무 많아지게 되고 이는 제품의 재고 증가를 초래하고 결국은 회사의 경영에 압박을 받게 된다.
중소 수입 회사들은 저가 와인 위주로 판매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주류전문점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가 와인도 대기업 수입회사만이 수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찾아보면 각 나라별로 품질 좋은 저가로 수입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많다.
또한 중소 와인 수입 회사들이 가장 주력해야 할 시장은 레스토랑과 와인 바 등 업소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업소 시장에는 고급 와인도 있고 저가 와인도 판매되고 있다. 대기업 수입 와인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도 있고 업소에 근무하는 소믈리에들이 소비자들에게 개인별로 자세히 와인을 설명할 수 있으니 중소 수입 회사들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지금은 국내 와인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언젠가는 와인 문화가 대중화되고 국내 와인 시장도 커지면 그때의 와인 시장은 전 세계의 각 지방에서 생산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와인 브랜드를 찾아내어서 와인 애호가들에게 소개해야 하는데 이런 일은 비대한 대기업 와인 수입 회사보다 몸이 가벼운 중소 규모의 와인 수입 회사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또 앞으로 통신 판매가 가능하게 되는날이 오게 되면 와인 소매 시장 전체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 마트나 백화점이 아닌 와인 전문 숍들에게 유리한 시장이 되고 이것은 중소 와인 수입 회사들에게 유리한 시장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중소와인 수입업체들이 잘 버텨나가길 바란다. 좋은 와인을 다양하게 수입해야 한국의 와인 산업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와인 문화가 대중화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마주앙 공장장 출신 소믈리에 김준철
[2017년 10월 27일 제93호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