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한 페이지를 열고 들어선 것 같은 예쁜 공간에 책이 있고, 음악이 흐르는데 핸드드립 커피까지 마실 수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북구 화명 신도시로에 위치한 동네 책방 ‘메멘토 모리’에 가면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에세이에서 쓰고 요즘 대세가된 단어 ‘소확행’이 떠오른다.
“예전부터 쭉 책방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 왔었기 때문에 그냥 열었어요”라고 무심히 얘기하는 이행순 대표는 북부경찰서 근처 사람이 많이 다니지도 않는 건물 2층에 책방을 열고 6개월 여 활동 중인 동네책방지기이다.
하얀 책장과 테이블에 진열된 책은 다 해야 500여 권. ‘개인서가 만큼의 책으로 서점을?’ 이라는 의문이 들겠지만, 독서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책들을 둘러보는 순간 책방지기의 취향과 개성, 내공이 담긴 한 권 한 권의 책들이 내뿜는 아우라에 마음을 붙들리게 될 것이다.
게다가 ‘아름다운가게’에서 공정무역 커피개발 업무를 맡았던 책방지기가 커피를 잘 알다보니, ‘메멘토 모리’에 가면 공정무역커피를 이용한 질 좋은 핸드드립 커피 맛을 볼 수 있다.
오전에는 주로 책 주문하고 커피를 내리고 블로그 관리 등을 하며 책방을 지킨다는 이 대표는 “판매하는 책들은 개인적으로 읽었던 책, 읽고 싶고 나누고 싶은, 그러니까 순전히 제가 관심 가는 책들입니다”라며 자신은 한사코 책 전문 큐레이터도, 책을 엄청 많이 읽은 전문가도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굳이 독서이력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기자에게 털어 놓기로 그는 책과 특별히 인연이 된 계기 같은 것도 없이 어릴때부터 그냥 활자를 가까이 했고, 사춘기때는 밥 먹는 것을 잊을 정도로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으며, 당시 ‘생의 한가운데’,‘구토’ 등등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한다.
이후 대학교 1, 2학년 때도 책을 집중적으로 봤던 기억이 있고, 독서가 그냥 일상이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고 한다. ‘메멘토 모리’ 책방에는 현재 이런저런 독서모임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책방지기 내공 담긴 500여 권의 책 진열
강제독서클럽·낭독모임 등 활발히 운영
지난해 11월에 책방을 열고 가장 먼저 결성한 모임은 ‘필사모임’. 책방지기가 ‘동네 책방으로서의 수줍은 손을 처음으로 내 밀었다’는 이 모임은 ‘함께 모여 사적인 시간을 갖는 느낌’으로 회원들이 ‘필사의 힘을 온몸으로 체험 중’이란다. 이름만 들어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강제독서클럽’은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모인다.
책방지기와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미리 선정된 소설을 일주일 동안 읽고 얘기를 나눈다. 일주일에 한 권씩 무조건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다는데 이대로라면 “연간 50여권의 소설을 강제로 읽게 된다”니 모임의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격주독서’는 이보다 좀 더 여유가 있다.
2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와서 책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이나 생각을 발표하고 책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를 나눈후 ‘밑줄 그은 한 문장’을 읽고 마무리 한다.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멤버들이 한 페이지씩 돌아가며 책을 읽는다는 ‘낭독모임’은 소리 내어 읽기 좋은 내용과 두께의 책으로 한 번 모일 때 거의 한 권을 다 읽는데 목소리로 책을 읽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
목요독서는 2주에 한 번 목요일 낮에 모여 사람과 세상이야기를 나눈다. 이외에도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책방극장’이열린다. 대형 스크린과 프로젝터를 이용해 영화 보고 차도 마시고 감상평도 들어보는 시간이다.
자그마한 동네책방에서 이렇게 알찬 모임들을 꾸려가며 6개월 동안 ‘메멘토 모리’를 운영 해 온 책방지기의 요즘 고민은 ‘지속가능한 책방운영’이다. “책방 열고 처음 일주일은 행복했어요. 도서정가제 때문에 그나마 책방이 많이 생기게 된 것도 맞구요. 책방하면서 책도 많이 보고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고 마음이 열려있는 독자들을 만나는 것이 참 좋습니다.
하지만 자발적 가난이라 하더라도 그냥 견뎌내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음 스텝에 대해 계속 모색하고 고민하고 있어요” 그는 요즘 책모임 회원들과 독자들의 걱정과 응원에 힘을 얻어 ‘강의’나 그 외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기획중이다.
기자가 미리 생각하고 갔던 뮈리엘 바르베리의 ‘고슴도치의 우아함’과 함께 책 한권을 추천해 달라는 말에 갑자기 환히 웃으면서 최근에 만난 인생 책이라며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내 놓는 책방지기의 표정을 보니 ‘메멘토 모리’가 오래오래 책 덕후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박정은 기자
[2018년 5월 25일 제100호 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