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매력이 물씬한 ‘토성맨숀’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알 수 밖에 없는 특별한 카페가 있다. 수수한동네 골목길, 소탈한 밥집과 공구점 옆에 비밀스럽게 숨겨진 입구엔 그흔한 간판도 하나 없다. 예전엔 옥매트를 파는 곳이었다 하는데, 그 전전엔 분명 누군가의 집이었을 것이 빤한 곳.
벽도 트지않고 오래된 가정집의 구조를 그대로 이용하고 있는 이 기묘한 카페의 이름은「 토성맨숀」이다. 오래 알고 지낸 이의 집에 놀러온 듯한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려 절로 웃음이 난다.
“토성동에 위치한 카페라는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의미도 있어요. 저멀리 태양계의 ‘토성’에서 온 카페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지요. 동네의 이름을 그냥 사용하면서도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조용하게 웃는 이 카페의 젊은 여사장은「 토성맨숀」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토성은 분명 지구의 과거를 닮았을 것이다. 토성인이 지구에 차린 카페는 눈이 부시게 밝고 포근했다.
이곳의 매력은 아주 옛날 우리 집 어디쯤엔가 굴러다니다 잊히고 버려졌을 법한, 그런 잡동사니 같은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 하나하나 빛을 발하는 데 있다. 못해도 몇 십년은 됐을 것 같은 오래된 전화기와 캐비닛, 약장, 난로, 시계, 사다리까지 구석구석 자리를 잡고 있고, 화병들엔 소박한 꽃들이 담담하게 햇볕을 쬐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 걸맞게 음료를 내 오는 찻잔도 모두 어딘가 우리 엄마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빈티지 풍의 인테리어가 유행하면서 이런 소품들을 가져다 채운 카페들도 많아졌지만, 이곳만큼 빈티지의 매력을 제대로 살린 곳도 드물것이다.
새 가게 냄새가 풀풀 나는 실내에 옛 물건을 흉내 낸 소품들이 불편하게 끼어 앉은 카페들은 예쁘기는 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감을 지울 수 없다. 최신 유행하는 옷에 복고풍으로 머리를 올린 느낌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토성맨숀」은 빈티지의 매력을 정말 잘 살린 카페.
간판도 없고 메뉴도 적지만「 토성맨숀」에 한번 발을 들인 사람들은 그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을 찾아 단골이 되고 만다. 어느 곳 하나 부자연스럽거나 억지스러운 면모가 없기 때문이다.
「토성맨숀」은 원래 부산대 근처에 위치하던 ‘라움308’이라는 카페에서 시작했다. 플로리스트인 친구와 함께 운영했던 ‘라움308’은 차와 음료는 물론 식물과 빈티지풍의 옷도 파는 재미있는 곳이었다고.
그러다 친구가 꽃집을 열면서 독립하고, 남은 한 명은 이곳 토성동에「 토성맨숀」을 열었단다.「 토성맨숀」과 마찬가지로 빈티지의 매력이 가득했던 ‘라움308’을 잊지 못해 먼 곳에서 발걸음 하는 옛 단골들도 많다고한다.
다크초콜릿을 녹여 담아내고 그위에 부순 초콜릿과 우유거품을 얹은 쇼콜라쇼는 진하고 씁쓸한 맛이 일품이다. 이 진한 쇼콜라쇼를 먹기위해 ‘라움308’에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을 정도.
귤처럼 껍질을 벗겨낸 레몬조각들이 들어앉은 레몬티는 탄산이 들어간 레몬에이드와는 다른 소탈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사진을 찍으러 오는 손님들이 많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햇볕이 잘드는 명당자리에선 이미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이들이 있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은 카페의 소품들을 따뜻하게 비춰 한 장한 장 누군가에게 엽서로 보내고픈 장면을 만들어낸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정말로 우연히「 토성맨숀」에서 친구들을 만나게 된 손님들이 있었어요. 그것도 두 분이 아니라 세 분이, 서로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서 말이에요.
그 손님들도 뜻하지 않은 우연에 즐거워하셨지만 저에게도 신기하고 웃음 나는 경험이었어요.”「토성맨숀」의 사장은「 토성맨숀」이 그런 곳이기를 바란다.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아지트 같은곳, 좋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곳, 봄날의 오후처럼 따뜻하고 소박한 공간 말이다.
한가로운 오후, 마치 오랜 과거의 한 시점에 앉은 듯한 기분으로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누릴 수 있다면 그곳에선 혼자여도 함께여도 행복할 것이다. 바람에 꽃잎이 날리는 봄날, 인디음악이 담백하게 흐르는「 토성맨숀」으로의 나들이는 어떨까.
송나영 기자
[2011년 4월 11일 18호 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