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3일

레저/여행

무한한 가능성과 거친 현실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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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도 더운물도 다정하게 나란히

 

떨쳐지지 않는 라면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목적지인 이코고시리조트 IKOGOSI RESORT로 향했다. 한적한 국도 옆에서 뭔가를 물통에 넣어 팔고 있기에 차에서 내려 물어보았다. 크기가 제각각인 물통에 든 것은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즐겨먹는 팜오일이었다. 팜나무 열매를 짜서 만든 오일로 크기에 따라 4불에서 40불 정도로 판매한다.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대부분 카메라를 꺼려하는데 팜오일을 파는 처녀는 촬영에 아주 적극적이었다. 아가씨 이름은 베라. 16살 소녀인데도 아주 성숙해보였다. 팜오일 말고도 카사바라는 곡물과 고구마 같은 얌, 구워먹는 바나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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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의 가족은 4남매로 언니와 아직 어린 두 남동생이 있고, 아버지는 외국으로 돈 벌러 나갔다고 한다. 노점으로 버는 하루하루 수입으로 어머니까지 다섯 식구가 겨우 먹고살 정도라는데도 베라의 밝은 표정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도로를 따라 바위산이 곳곳에 솟아올라 있다. 아주 오래전 화산활동과 지각변동으로 생긴 바위산들이다. 이런 바위산 중 유명한 게 수도 아부자 근교의 주마락Zuma rock'이다.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모양새에 높이가 725미터에 달하는 것으로 아부자의 상징이다. 단일암괴로는 세계 최대라서 나이지리아의 화폐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

 

86.JPG수목이 우거진 밀림을 향해 달려 목적지인 이코고시리조트에 도착했다. 이곳은 따뜻한 물이, 다른 쪽엔 차가운 물이 흐른다. 두 물이 평행으로 흐르다 교차지점에서 합류하면 70도씨의 물이 37도씨가 된다.

그런데 때로 찬물에서 자라야 할 나무가 뜨거운 물이 흐르는 지류에 있어 죽어가는 경우도 있고, 오묘하게도 냉수와 온수의 교차점에서 두 종류의 나무가 각기 제자리를 잡아 다정하게 커가는 경우도 있다.

  

신기한 샘물을 찾아온 사람들이 이곳저곳 발을 담가보며 희한한 개울을 체험해본다. 나무로 만든 움막에는 이곳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프리카 전통음악을 틀어놓고 있던 이들이 동양인 관광객이 찾아오자 리조트에서 키우는 아기사슴을 보여준다.

카메라로 이것저것 찍는 것을 보더니 음악에 맞춰 흐느적거리는 춤사위를 선보인다. 우리도 자연스럽게 합류하여 한껏 흥겨운 춤판이 벌어졌다. 이런 아프리카인들의 흥은 어디서나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모양의 ‘주마락’ 수도 아부자의 상징
냉수와 온수의 교차 … 신기한 샘물 여행객들의 힐링체험지

  

리조트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오전 에키티시청을 방문했다.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시청이나 관공서에도 특징적인 조각이 관사 앞을 장식하고 있다. 에키티시청에는 물을 뿜는 분수조각이 눈길을 끄는데 조각이 아주 정교하고 이색적이다. 청사 앞에는 총 든 경찰이 지키고 있어 다소 위압적으로 보였지만 우리와 사진촬영도 같이 해주고 보기와 다르게 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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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내 로비에서는 젊은 남성이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조율이 잘 되어 있고 듣기에도 편안해 시청을 찾은 사람들이 중간중간 감상을 한다.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친절과 봉사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점도 시민들을 위한 행정서비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축복이거나 저주이거나, 검은 황금의 땅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의 정식이름은 나이지리아연방공화국. 15세기 포르투갈인이 침입하여 노예무역의 근거지로 삼았고 현지의 소규모국가들은 17~8세기에 오요제국의 통치에 이어 이슬람국가인 소코토킬리프국에 편입되었다. 그러다 19세기 말 영국과 프랑스가 나이지리아 전역을 식민지화했다.

 

영국 통치시절 남부지역엔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전파하고 대학과 기업, 병원을 세웠지만 무슬림이 득세하는 북부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한 데다 독립 후 국토개발과 이권문제에서도 소외되어 지금껏 종교, 경제, 민족 간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엔 풍부한 자원과 인구 때문에 아프리카국가 중 가장 발전가능성 큰 나라로 기대를 모았다. 게다가 1956년 국토의 젖줄인 나이저강 삼각주의 늪지대에서 석유가 쏟아져나와 장차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듯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석유는 오히려 이 나라에 숱한 갈등과 폭력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석유는 나이지리아 수출의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외국 석유회사가 내는 세금이 정부조세의 7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효자자원에 틀림없지만 석유로 번 돈의 70퍼센트 이상이 부정부패의 늪으로 사라진다는 사실 또한 놀랍기 짝이 없다.

해마다 150억 달러가 그렇게 검은 늪속으로 빠져드는 데다 세계 8위의 산유국이자 아프리카 석유매장량의 3분의 1을 가진 나라면서도 정유처리 능력이 떨어지고 석유를 둘러싼 테러가 끊이질 않아 매년 백억 달러어치나 석유제품을 수입하기도 한다.

 

빈곤을 탈피하기 위해 젊은이들은 도시로 몰려들고, 도시빈민이 모여든 마을은 자연스레 슬럼가로 형성된다. 이런 곳에는 전기나 수도, 하수 정비 등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물이 부족하다보니 닭을 요리하려고 생닭의 털을 그대로 뽑고, 털에 붙어나오는 살덩이를 줍기 위해 수채구덩이를 헤매는 것이 나이지리아 빈곤층의 현실이다. 라고스의 휘황한 밤거리를 떠올리면 민낯의 도시빈민가는 낯설 지경이다.

 

또 하나 큰 문제는 세계 최대습지 중 하나인 나이저삼각주 지역이 석유로 인해 물고기도 생태환경도 다 말라버린 채 산성비와 환경파괴, 굶주림과 테러만 무성한 황폐한 땅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석유생산지에 살면서도 정작 막대한 부의 분배에서는 소외된 나이저강 하류의 부족들은 유혈사태를 일으키고, 석유를 훔친다. 또 비밀무장세력인 나이저델타해발운동(MEND)은 석유생산시설과 송유관을 파괴하며 석유회사 외국인근로자를 납치하는 등 거센 저항을 벌이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독립후 1998년까지 일곱 번의 쿠데타와 역 쿠데타가 이어진 혼란이 계속되는 동안 온 나라가 오일머니에 중독된 환자가 돼버렸다.

 

그뿐인가. 종교간 갈등도 만만치 않다. 북부의 하우사족은 장기간의 부정부패와 무질서에 대항하여 강력한 샤리아(이슬람율법)국가를 제창하며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이들이 바로 그 유명한 보코하람(나이지리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이다. 보코하람이란 서방교육은 신성모독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정부군의 대대적인 반격에 대항해 학교나 도로, 차량, 외국인, 교회와 모스크에 무차별테러를 가하여 10년 사이 1만 명 이상을 살해했다고 한다. 정식 수교국인 북한의사 3명이 살해되기도 했고, 최근엔 수업중인 여중생 200여 명을 납치하며 더욱 악명을 떨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풀 길 없이 엉켜버린 매듭 같다. 검은 황금이라는 석유를 가졌으면서 그 개발과 이권은 로열더치셸과 같은 외국의 다국적기업이 싹쓸이하고, 그들의 뒷돈이 정부의 부정부패를 더욱 부추기며, 그것을 생산하는 국민들은 어떤 혜택도 이익도 받지 못한다.

국민들은 민족간, 종교간, 경제간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갈등과 반목에 휩싸여 유혈쟁탈전을 벌인다. 그런데도 쾌적한 관공서나 소수 부유층들을 보면 도대체 이 나라 부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서,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얼마인지 도저히 실감할 수 없다.

무한한 가능성과 거친 현실이 공존하는 나라 나이지리아. 아직은 현실에 발목 잡힌 병든 거인 같은 나라. 언제쯤 그 거인이 발목의 사슬을 풀고 걸음을 뗄 수 있을까.

[2017120일 제8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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