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3일

레저/여행

전통과 문명 공존…느리게 느리게 진화하다

박물관탐험 vs 정글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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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스는 아부자Abuja로 수도를 이전하기 전까지 나이지리아의 중심지였고 지금도 인구가 가장 밀집한 대도시다. 북적이는 쇼핑센터도 우리나라와 별 다를 게 없지만 치안이 아주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일행에게 시비를 거는 젊은이들을 만나 소란이 커질 뻔했는데 우리 운전사가 백미러가 휠 만큼 과감한 역방향 운전술로 교묘히 빠져나온 일이 있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래도 7월 날씨치고는 대체로 시원하고, 바나나며 땅콩이며 싸고 맛있는 군것질거리도 많고, 휘발유값도 싸서 여행에 큰 불편을 없었다.

 

다만 나이리지라뿐 아니라 서부, 중부아프리카 대부분이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 없다보니 볼거리나 즐길거리가 그다지 없긴 하다. 그런대로 가볼 만한 곳이라면 갤러리나 박물관 정도랄까.

 

라고스국립박물관에는 아프리카 전통부족민의 생활과 유물들, 최근 노예시장으로 끌려다닌 흑인들의 아픔이 기록된 유물까지 상당히 많은 자료가 진열되어 있고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가 곁들여졌다.

여성들의 할례의식(여성의 외도를 막기 위해 성기일부를 제거하는 행위)에 대한 설명은 꽤나 충격적이었는데, 아직도 일부 부족에 남아 있는 이 의식은 아프리카부족의 일부다처제 전통과 함께 여성들의 억압을 대표하는 상징이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너무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여성이 있다. 소말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흑인모델 와리스 디리. 그녀는 세계 최초로 여성할례를 사회적 논점으로 부각시킨 용감한 여성이다. 와리스 디리는 사막의 꽃이라는 뜻인데 그녀의 실제 이야기를 담아낸 동명의 책과 영화가 있다.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가난한 유목민의 딸로 태어나 할례를 받고 강제결혼을 피해 런던까지 도망쳐온 소녀가 세계적인 톱모델이 되는 인생역전의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녀가 자신과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소녀들을 위해 여성할례문제를 공적인 장으로 불러내 세계인의 충격과 지지를 이끌어낸 이야기가 핵심이다.

 

그녀는 이 주제로 UN에서 최초 연설을 했고 UN특별인권대사로 임명되어 많은 나라에서 이를 금지하도록 법제화하는데 기여했다. 사실 막연히 알고 있는 여성할례에 대해 직접 설명을 듣고, 더구나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의미와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국립박물관과 함께 라고스를 대표하는 곳은 리키보호센터. 라고스의 자연보호구역이다. 78헥타르의 넓은 지역이 6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 우거진 숲과 호수, 휴식공간과 사바나 등이 펼쳐진 지역을 트레킹과 미니기차로 구경할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음악소리가 들려 가보았더니 파티가 한창이다. 아직 한낮이고 테이블에 술이 보이지 않는데도 흑인들의 흥취와 리듬감은 대단하다. 모두들 음악에 맞춰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몸짓이 흥겹다. 단정한 주황색 셔츠를 차려입은 종업원도 마음 내키면 같이 춤을 춘다. 꽤 부유층의 파티인 듯 참석한 사람들의 옷차림과 치장이 상당히 세련된 모습이다.

 

하우스 밖의 넓은 정원에는 커다란 아프리카거북 두 마리가 한가로이 어슬렁거리고 맵시를 뽐내는 공작새 무리도 정원을 활보한다. 맹그로브나무 우거진 숲 사이로 난 좁다란 소로를 따라 가면 밀림으로 들어선다. 물에 잠긴 진창길도 있고 나무 타는 원숭이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숲 속에 지어진 조그만 놀이터에는 폐타이어로 만든 그네 두 개뿐이지만 밀림 한가운데서 그네 타는 맛은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 리가 된 듯 색다른 기분이다.

 

밀림 한가운데쯤 꼭대기도 보이지 않을 만큼 높다란 나무 위에 오두막집이 보인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도록 사다리를 만들어두었는데 족히 30미터는 될 듯하다. 젊은 사람도 지레 겁을 먹고 꽁무니를 뺄 정도지만 일단 낑낑대며 올라가서 나무꼭대기에 도착하면 아프리카 정글의 시원한 전망을 만나고 열매 따먹는 원숭이를 바로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보상은 충분하다. 정글 트레킹은 덥고 황량한 아프리카에서 정말 해볼 만한 색다를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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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인두미의 잊지 못할 슬픈(?) 추억

 

나이지리아는 수도 아부자특별주를 포함해 37개 주가 있다. 종족구성도 250여 개가 넘어 부족 간의 융합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각 주를 넘어가는 것이 웬만한 국경 통고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경찰이 떡값을 요구할 때가 많은데, 외국인의 경우는 더 하다.

우리 돈으로 치면 얼마 안 되긴 해도 하는 짓이 괘씸해서 안 주고 버티다보면 별의별 꼬투리를 잡아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아프리카에서는 부국에 속하지만 워낙 부의 집중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부정부패도 만연하다보니 서민들 생활은 당연히 어렵고, 뇌물을 요구하는 경찰도 많은 것이다.

 

경찰이라 해도 시민을 보호하고 정의를 지키겠다는 특별한 사명감은 없다. 대도시의 경우 강도사건이 발생해도 경찰이 절대 빨리 출동하지 않고 사건이 다 끝나 강도가 도망간 후에야 현장에 나타난다.

위험한 일을 하다가 죽거나 다쳐도 국가에서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으니 아무리 경찰업무라도 다치면 자기만 손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변두리 외곽 지역에서는 살인을 하고 도로변 정글에 던져놓으면 찾을 방법이 없어 검문하는 경찰이 강도로 돌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주를 넘어가는 지방도로는 대개 사정이 엉망인데다 편도 1차선이 대부분이라 속도를 내는 차량은 거의 중앙선을 넘기 일쑤다. 다른 차가 없을 때는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영화에서 보는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이 이어진다. 그러니 당연히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다. 사고가 나거나 전복이 되어도 견인하고 수리할 능력이 없어 버려진 차들이 도로 곳곳에 남아 있다.

 

라고스를 벗어나 몇 개의 주를 거쳐 에케티Ekiti주에 도착하니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편안한 느낌을 준다. 장시간 이동으로 점심을 거른 탓에 호텔을 잡자마자 식당으로 달려갔다. 배가 고플수록 맛있는 한국음식이 그리운 법.

마침 일행이 가져온 라면을 호텔주방에 부탁하여 끓여먹자는 제안이 나왔다. 직원의 영어구사력이 신통치 않아 가급적 말보다는 라면봉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고, 바디랭귀지도 사용하면서 조리방법에 대해 확실하게 설명했다. 식당에서 추천하는 닭고기요리 2인분을 주문하고 우리가 제공한 라면에 계란도 넣어 끓여주면 추가비용은 물론 팁도 주기로 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목이 빠지게 라면을 고대하던 일행은 점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음식이 도착했을 때 우리가 느낀 실망감이란.... 라면은 푹 퍼졌고, 추가로 부탁한 계란은 깨뜨리지도 않은 채 통째로 라면국물 속에서 삶아져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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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우리가 기대한 라면맛은 아니었지만 사전에 지불키로 한 추가요금은 정확하게 청구되었다. 한국라면에 대해 한껏 부풀었던 기대감이 어이없이 어그러지고 말자 미련이 아니 남을 수 없는 법. 라면에 얽힌 사연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니, 한국식당이 없는 나이지리아에서 한국라면을 먹기 위한 일행의 눈물겨운 노력은 여행 내내 계속되었다.

 

에키티주에서의 둘째 날. 우리 일행은 전날 한국라면에 대한 기대가 무참히 깨진 것이 너무 아쉬워 저녁에 다시 라면을 먹기로, 그것도 설명서에 나와 있는 그대로 조리된, 한국에서 먹던 맛 그대로 제대로먹어보자고 합의를 보았다.

이제 남은 라면은 단 두 개. 오늘 제대로 된 라면을 먹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국의 맛은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따라서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했고, 어제의 실패가 계란을 깨뜨려넣는 것을 식당직원에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탓이라는 원인분석까지 마치고 이번에야말로 라면조리법을 확실히 숙지시키고자 정확한 정보전달 의지를 다졌다.

 

문제는 이번에 간 식당에서도 어제처럼 직원들에게 영어가 거의 안 통한다는 점은 같았지만, 주방에 외부인 접근이 금지되어 있어 제대로 된 한국라면 끓이기는 더 어려운 여건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끝에 요리사를 불러내 라면과 스프, 계란을 보여주며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는 아예 물이 끊기도 전에 미리 스프를 넣고, 물이 끓으면 면과 계란을 넣으라는 시늉까지 해보이고 나서 5분 뒤 가져오라는 주문을 했다. 물이 끊는 상태를 설명할 땐 냄비의 물을 가리키며 영어로 water boiling을 연신 강조했고, 5분 뒤를 설명할 땐 시계와 시계바늘을 가리키며 다섯손가락도 활짝 펴보였다.

 

한국라면을 처음 보는 주방장이 못 미더워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코리안 인두미Korean Indomie"라고. 인두미는 한국돈으로 300원 정도 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나이지리아라면 같은 음식이다. 인두미라는 말을 듣자 주방장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걱정하지 말라는 동작을 취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라면을 건네고 10분이 지나면서는 어제처럼 푹 퍼진 라면에 삶은 계란까지 먹게 될까 노파심에 직원들을 닦달하자 그들은 한결같이 ”No problem. It's coming now!"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나자 주방장이 직접 큰 라면 쟁반을 들고 막중한 임무를 완수한 개선장군 같은 얼굴로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테이블에 내려놓은 쟁반을 보자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계란은 풀어져 라면과 잘 섞여 있었지만 국물이, 국물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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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자세히 설명한다고 덧붙인 코리안 인두미라는 한마디가 화근이 되었을 줄이야. 원래 인두미는 국물 없는 비빔면과 비슷한 것이라 바짝 졸인 라면을 끓여온 것이다. 마지막 남은 라면을 잃어버린 실망감이란.... 종업원에게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하여 억지로 국물을 만들어 먹긴 했지만 맛있는 한국하면을 먹고자 했던 우리의 야무진 꿈은 산산이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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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3일 제83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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