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3일

레저/여행

검은 황금의 축복 그러나 아직은 슬픈 땅

캡처d.JPG
 72.JPG
 

태고적의 예술혼이 살아 숨쉬다

 

어느 날 대학생 네 명이 빌려준 돈을 받으러 채무자가 있는 마을로 찾아갔다가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훔쳤다는 의심을 받고 절도범으로 몰렸다. 급기야 이들은 마을사람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하고 발가벗긴 채 온몸에 휘발유를 뒤집어쓰고 화형을 당하고 만다. 영국 BBC는 경찰의 판단에 실망한 사람들이 범죄자를 직접 화형에 처했고, 이 일로 마을대표 13명이 나이지리아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또 어떤가. 인신매매용 아기를 생산, 판매하기 위해 소녀들을 가두고 임신시켜 태어난 아이들을 노동노예, 성노예로, 그리고 장기매매를 위해 내다파는 일도 있었다. 경찰에 검거된 이 조직에서 아기를 임신시킨 남자는 놀랍게도 한 사람이었다. 이토록 충격적인 사건들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화형사건은 201210, 아기공장 사건은 20135월 중앙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발생한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이런 끔찍한 사건들이 비단 나이지리아뿐만 아니라 아직 여행자들이 쉽게 방문하지 못하는 중앙아프리카 도처에서 벌어지는 현재진행형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이지리아는 정말 미개하고 원시적인 야만의 나라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구 17천만 명이 넘는 아프리카 대국으로 196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풍부한 자원과 가파른 경제성장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신흥경제국이다. 2010년 초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화인민공화국)로 꼽히는 6개국 중 하나인 성장잠재력 빵빵한 나라라는 얘기다.


71.JPG
 
현재 나이지리아 정부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2020년도에 세계 20대 강국의 도약을 목표로 수많은 개발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일면 낙관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500개 이상 되는 민족 간 대립과 권력다툼, 이슬람 무장세력의 테러, 그리고 앞서 언급한 사건 같은 여러 사회문제를 개선하지 않는 한 그런 희망을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 만큼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중앙아프리카 여행은 오지여행가인 필자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행에 대한 정보부족과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여행일정과 인근국가의 비자발급 여부 등 어느 것 하나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나이지리아 코이카KOICA에 근무하는 정상훈 소장의 권유가 없었다면 시도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구 1억 7천만명 가파른 경제성장 잠재력 빵빵한 나라
아프리카 예술의 심장 라고스 ‘목공’ ‘갤러리’곳곳에 즐비


라고스에서 만난 아프리카 예술

 

시에라리온을 거쳐 나이지리아 최대도시 라고스Lagos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경. 해가 진 라고스에는 어둠이 깊이 내렸다. 공항을 빠져나가는 길은 차로 뒤덮여 정체가 심하다. 라고스는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도시로 1991년까지 나이지리아의 수도였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상업과 공업의 중심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라고스 시내로 들어서자 고층빌딩의 화려한 불칩과 고가도로를 달리는 차량들 모습이 여느 아프리카 오지와는 대비되는 문명의 얼굴로 다가온다.

 

오랫동안 여행을 하며 체험한 바로는 도시보다 시골에 갔을 때 여행자를 대하는 태도가 더욱 관대하고 치안도 좋아 안전하다. 보다 풍요롭고 인구가 조밀해진 도시가 치안이 더 불안한 이유는 산업화에 따라 농촌에서 유입된 상당수 도시인들이 대부분 치열한 경쟁 속에 살다보니 삶의 여백조차 줄어들어 인심 자체가 각박해진 탓일 터이다.

 

라고스에서 첫 밤을 보내고 처음으로 찾아간 곳이 목각시장이다. 규모가 상당히 큰 시장으로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목공예품을 판매하고 있다. 얼굴 가면이나 동물조각,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없는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금속공예품, 골동품, 왕이 사용하던 장신구와 시대적으로 오래된 목공예품을 판매하고 있다.

49.JPG
 

뿐만 아니라 금속공예품, 골동품, 왕이 사용하던 장신구와 시대적으로 오래된 목공예품도 있다.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2천 불이 넘는 제품도 수두룩하다. 손으로 다듬어 만든 것일진대 조금도 흠잡을 데 없는 다양한 조각들은 몇 번이나 지갑을 꺼내게 만들 정도로 사람을 매료시킨다.

 

기원전 천 년경 나이지리아 북부에서 태동한 노크Nok문화는 아프리카 역사와 문화의 발원지인 서아프리카에서도 그 최초의 문화다. 그리고 기원 후 나이지리아 이페Ife의 청동주조는 현재 블랙아프리카의 제일가는 미술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들이다.

 

알다시피 야수파, 입체파 같은 현대미술은 아프리카 미술의 예술성에 힘입은 바 크다. 발표 당시 일파만파의 센세이션을 몰고온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 바로 아프리카 미술의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누구나 그 처녀들의 얼굴에서 아프리카 가면의 독특한 미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사실 이런 목각시장을 들러보다보면 누구든지 온갖 조각과 가면에서 보이는, ‘원시적이 아닌 시원적인 느낌, 유모감각과 유니크한 개성이 함께 어우러진 그 매력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18-12.JPG 18-3.JPG

47.JPG 48.JPG 

     

목각시장을 실컷 구경하고 나서 현지의 색채가 가장 많이 묻어나는 데를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니케미술관Nike art Gallery이다. 니케라는 여성작가의 사설갤러리로 서부아프리카에서 제일 큰 미술관이라고 한다. 사실 나이지리아에서는 여행객이 즐겨 찾을 만한 관광지나 문화예술 공연이 별로 없던 터라 그나마 기대감이 상당했다. 약간의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애써 찾아갔건만 실망스럽게도 미술관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66.JPG
 

아쉬움에 금방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정문에 설치된 인상적인 철제조각이며, 건물 외부의 조형물들이며 어느 하나 눈길을 끌지 않는 게 없다. 금속조형물, 석상, 출입구까지 모두 예술품이다. 하물며 부서진 조각상도 연못 옆에서 하나의 예술품으로 나름 멋들어진 역할을 한다. 전시품 하나하나만이 아니라 공간을 이루는 모든 것들을 예술적으로 포진시켜 둔 것이다. 이런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보니 내부 작품들에 대한 궁금점이 더욱 커져 다음날 일정을 비워 다시 오기로 했다.

 

62.JPG
 

이튿날 다시 찾은 미술관에는 놀랄 만큼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림만 해도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 추상화 등을 총 망라했으며 금속공예품, 조각, 도자기, 가죽공예, 섬유 등의 작품이 갤러리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은 무려 7천여 점이라고 했다. 많은 작품들이 어떤 것은 슬프게, 어떤 것은 즐겁게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을 아프리칸 특유의 시선과 색채로 표현하고 있다. 솔직히 그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도 다양한 작품과 표현기법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68.JPG
 

작가 니케는 예술성을 타고난 천재인 것 같았다. 현재 예순이 넘은 니케는 여섯 살 때부터 예술활동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작품활동을 이어왔단다. 심지어 작가가 무용도 한다고 하니 그 능력을 가늠할 수가 없다. 그녀는 세 번 결혼했는데, 첫 남편은 그녀의 동의하에 15명의 부인을 더 두었고 이들에게도 예술을 가르쳤다고 한다. 지금도 자선활동의 일환으로 불우청소년을 위한 무료댄스강습과 미술, 공예교습을 실시하고 있으며, 다른 지역에 세 개의 갤러리를 더 운영하고 있다니 그 재능이나 규모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76.JPG
 

관람이 끝날 무렵 간단한 다과에 초대를 받아 가보니 마침 전직 고위경찰 출신인 남편의 생일이라 조촐한 파티를 준비한 것이었다. 가족뿐 아니라 배움의 혜택을 받는 청소년들도 함께 노래를 부르며 파티 분위기를 근사하게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나이지리아에 대한 두려움은 환상적인 작품과 환대에 녹아 사라져가고 어느 새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20161123일 제8218]

추천0 비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