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2월 26일

레저/여행

얼음이 얼고 눈이 쌓이는 아프리카의 고산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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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소토 왕국(The Kingdom of Lesotho). 세상에 그런 나라도 있었던가? 지도책을 펴놓고 아프리카 대륙을 아무리 뒤져봐도 어지간히 큰 지도가 아니면 나오지도 않는다. 아프리카 대륙 남단, 남아공 넓은 땅이 사람 얼굴이라면 왼쪽 뺨에 점 하나, 바로 그것이 레소토 왕국이다. 만델라가 집권하기 전 남아공 백인정권이 아프리카 흑인을 격리시키고 인종 분리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위성독립국의 하나겠지 하고 섣불리 예단하면 완전히 틀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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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소토 왕국은 전통적인 소토족의 부족왕국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마사이족과 함께 가장 용맹스럽다는 줄루족의 침략도 굳건히 막아내고 1910년 남아연방이 성립된 수 남아공정부가 여러 차례 병합을 요구했지만 끝까지 버티어낸 깡있는왕국이다.

남한의 3분의 1만한 땅에 인구라야 2백만 명이 조금 넘는 소왕국 레소토는 모르긴 해도 이 세상에서 다른 한 나라 내륙에 박혀 있는 유일한 나라이지 싶다. 여러 나라에 둘러싸인 나라는 수없이 많고, 3면이 바다로 싸인 나라도 많지만 레소토 왕국처럼 4면이 한나라 내륙에 둘러싸인 나라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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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소토 왕국은 우리나라와 비자면제협정을 맺은 몇 안되는 아프리카 국가 중 하나다. 이 떠돌이 여행객이 이 나라에 첫 발을 디딘 것은 우리나라가 6월 기온으로는 수십 년 만에 최고였던 어느 날이었다.

참으로 희한한 모습은 흑인들이 귀를 덮는 방한모자에 두꺼운 모포를 온몸에 감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침에는 얼음이 깡깡 얼고 마차제 산에는 하얗게 눈이 덮였다. 5월부터 7월까지 말루티산엔 스키장이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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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소토 왕국은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와는 달리 산악국가다. 이 나라 서남부의 저지대라는 곳도 해발 17~18m이고 대개 해발 2m가 넘는다.

물이 부족해 쩔쩔 매는 다른 나라와 달리 산이 높고 골이 깊어 사시사철 계곡에 물이 콸콸 흘러 여기저기 댐을 만들어 놓고 있어 남아공에 물을 팔 정도다. 남아공이 국경을 막아버리면 레소토 왕국은 밖으로 빠져나갈 길이 없어지지만, 레소토 왕국이 물길을 막아버리면 남아공은 목이 말라 죽을 판이다.

레소토는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따지고 보면 그 흔한 야생동물이 뛰어노는 국립공원 한 군데 없고, 빅토리아 폭포 같은 깜짝 놀랄 자연경관도 없고, 선조들이 남긴 볼 만한 유적도 없고, 쇼핑을 할 만한 화려한 백화점도 없다. 그러나 관광객이 아닌 참 여행꾼이라면, 그리고 아프리카의 관문 요하네스버그까지 왔다면 이곳을 빠뜨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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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을 돌아다니며 이 나라 사람들을 만나 보면서 이 떠돌이 여행객은 마치 오랫동안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긴장의 연속인 아프리카 여행에서 이곳은 고향마을에 온 것처럼 이상하게도 마음이 푹 놓인다. 흙먼지를 날리며 시골길을 달리면서 마주치는 산하는 도대체 낯선 느낌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거칠지도, 하늘을 찌를 듯 높지도 않는 산세는 고향마을 앞산처럼 포근하다.

저녁 햇살 아래 주름진 산자락 사이로 모락모락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면 주인을 태운 당나귀는 타박타박 제집으로 돌아가고, 둥근 흙벽 초가집에는 램프불이 켜진다. 어느 집에나 들어가 저녁 한 끼 얻어먹자고 해도 거절하는 사람이 없다. 옥수수를 빻은 가루를 반죽해 만든 밀러밀이라는 그들의 주식은 한 끼 식사에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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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프 불빛 아래 흰 이빨을 드러내고 빙긋이 웃는 검은 얼굴들을 보노라면 인정이 뚝뚝 흘러내린다. 마주 보며 웃고 있는 이 떠돌이 여행객도 머지않아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한 1년 동안은 살아보리라 작정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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