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05월 03일

레저/여행

아프리카 특유의 매력 간직한 작은나라 작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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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그미족은 보통 20~30명 정도로 무리를 지어 산다. 이들은 카메룬사회에서 유일하게 소외된 종족이다. 작은 몸집 때문에 어디서나 차별을 받아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않고, 나라의 큰 축제일인 국가의 날이나 청소년의 날행진에도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원래는 숲에서 사냥을 하며 사냥터를 따라 이동하며 살던 종족인데 나라의 야생동물 보호정책으로 정작 사냥감이 줄어들어 생활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지금은 관광객이 선물하는 술을 마시고 대낮부터 취해 자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곳 말고도 크리비에서 내륙으로 들어가 로미에마을로 가면 그곳 숲속에 200여 무리의 피그미족이 전통방식대로 사냥을 하며 살아가고 있단다. 아프리카의 가장 오랜 족속인 그들이 이런 고립 속에 언제까지 살아남아 자신들의 생활을 유지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로미에마을 피그미들 집이 돔형태의 원형인 것에 반해 이곳 피그미들 집은 거의 사각형이다. 재미있는 것은 집 만드는 일은 모두 여자들 몫이라는 것. 아이를 등에 업거나 젖을 먹이면서 직접 집을 짓는다.

남자들은 사냥을 담당하고 여성들이 채집과 수확, 가사를 담당하는 것이다. 마을에서 만난 피그미 추장은 젊었을 때 사자를 12마리나 잡았다며 자기 키만한 창을 들고 무용담을 들려준다.

집짓는 일 여자들 몫, 남자들은 사냥담당 전통생활 유지
현대문명과 관광산업에 희생되는 피그미 문화 “씁쓸”

안내인이 준비해간 술, 담배, 설탕, 소금을 촌장에게 주자 촌장은 반색하며 가족들을 집결시켰다. 북소리와 함께 온가족 친인척이 모여 노래하고 춤도 춘다. 함께 북을 치고 춤을 추며 같이 놀다가 손으로 새소리를 내니까 피그미족도 따라해보면서 웃는다.

 

카메룬정부의 동화정책에 따라 원시생활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이들은 밀림 속에서 자기들만의 방식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현대문명과 관광산업에 희생되는 피그미문화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부족장의 권위와 자부심이 숨쉬는 반준왕국

 

카메룬에는 200개 이상의 부족이 있지만 아직까지 부족장이 남아 있는 곳은 20여 부족뿐이다. 백인의 침략을 받기 전까진 부족장이 왕과 같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카메룬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행정관료들이 있긴 하지만 아직도 부족장의 권한은 대단해서 어떤 지역에서 행사나 사업을 진행하려면 관공서에서 우선 그 지역 부족장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이러한 부족장의 권위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부족의 왕이 살았던 왕궁이다. 카메룬 서부지역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바미레케족은 서부의 고지대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두알라에서 가장 큰 부족 중 하나로 카메룬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바미레케족의 발생지로 알려진 서부지역 중 우리가 찾은 반준Bandjoun 왕궁은 옛날 왕족의 권위와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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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준왕궁을 알리는 커다란 아치모양의 입구를 들어서면 마치 중세의 성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 나타난다. 넓은 대지에 좌우로 예전 족장의 아내와 아이들이 거주하던 전통가옥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고 그 너머로 지금의 왕이 살고 있는 현대식 건물이 눈에 뛴다.

왕궁 중앙에는 옛 왕족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박물관과 범죄자를 심판했던 재판소, 주술사들이 거주하던 숙소, 큰 행사를 치르던 집회장까지 대부분의 건물에 부족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풀로 이은 지붕, 흙과 대나무로 반죽해서 삼중으로 만든 벽 등. 하지만 가장 탄성을 지르게 하는 것은 나무로 높게 세운 기둥마다 새긴 조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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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이 손으로 깍아 만들었을 그 조각들이 왕의 명령이라면 금방이라도 살아움직일 듯 생동감이 넘친다. 타 부족과는 다른 남다른 자부심을 하나하나 새겨넣은 듯하다. 또 반준왕국박물관에는 부족왕의 가계도와 왕의 초상화, 왕이 사용했던 유물들과 함께 반준부족민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국의 물건들이 보여주는 신기함과 아름다움에 마음이 즐거웠다.

 

한 부족의 지역에서조차 이렇듯 생명력 가득한 조각이나 마스크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아프리칸의 예술적감각을 증명하는 것 같다. 하긴 나중 카메룬의 일부가 된 사오Sao문명에서 청동작품이나, 구리와 철을 숙련되게 주조한 기술을 바탕으로 훌륭한 작품들을 이미 선보인 바 있으니 그 저력이 다 어디로 갔겠는가.

특히 카메룬 품반지역의 예술가거리에서 나오는 작품들은 카메룬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으로 수출된다고 들었다. 실제로 그곳 거리의 젊은이가 즉석에서 몇 분만에 흙으로 소조를 빋어내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런 걸 보면 아프리칸들은 천생 예술가이지 싶다.

 

예전과 같이 막장한 권력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왕의 권위는 아직도 대단해서 부족왕이 마을 방문하면 온통 잔치분위기다. 하루 전부터 북을 울리며 노래를 부르고, 여자들은 음식을 준비하면서 마을전체가 축제준비로 분주해진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한 해 동안 수확한 땅콩을 왕에게 바치고 왕을 위해 춤을 추는 등 왕의 잠깐방문에도 헌신을 다한다. 정작 왕이 주는 것은 짧은 덕담 한마디뿐인데도 말이다. 이토록 낙척이고 흥 많은 사라들이니 하루를, 숱한 나날을, 인생을 즐거이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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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지리와 기후를 모두 담아낸 아프리카 미니어처

 

카메룬은 1884년부터 1919년까지 독일의 식민지였다가 1차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동서로 분할통치를 했다. 그러다 1960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다음해에는 서카메룬까지 통합하여 연합공화국으로 탄생한다.

따라서 카메룬은 일찍부터 독일문화의 영향을 먼저 받고, 1919년 이후 프랑스문화와 영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언어나 사고방식 모두 서구화되어 있다. 영어와 프랑스어 모두 공용어로 사용되지만 실제로는 프랑스어가 더 많이 사용된다. 독일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카메룬을 점령하면서 프랑스가 영토의 대부분인 8개 주를 차지하고, 영국은 나이지리아를 차지하는 대신 카메룬에서는 2개 주만 점령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카메룬은 아프리카나라 중 여러모로 썩 괜찮은 편이긴 하다. 아프리카의 중서부에 위치한 국토는 서쪽으로 바다를 끼고 있어서 내륙국가들의 교차로 역할을 한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강우량이 많고 서늘한 편이라 야채와 농작물, 광일이 풍성하고 아프리카의 축소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모든 기후와 식물군이 존재하여 해안과 사막, 산악, 열대우림, 사바나까지 아프리카의 지리적 기후적 특질을 카메룬에서 모두 경험할 수 있다.

 

70퍼센트의 국민이 농업에 종사하며 코코아, 커피, 땅콩, 고무 등 다양한 수출용 작물을 재배하여, 온 나라가 수출용 작물 한 가지만 생산하는 기형적인 식민지형 농업형태와는 거리가 멀다. 보크사이트와 철이 풍부하고, 적지만 석유도 생산된다.

영어권 지역의 크고 작은 분리독립운동이 계속되고 부정부패나 빈부격차 등 고질적인 문제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정치와 사회가 안정적이고, 딱히 종교갈등으로 인한 분쟁도 없다. 이렇듯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유리한 현실을 살아가는 카메룬이 앞으로도 아프리카 특유의 매력을 간직한 채 더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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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21일 제87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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