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를 사용하나 중국과는 또 다른 섬 타이완. 16세기 포르투갈 선원들이 항해를 하다 초록으로 덮인 이 섬을 보고 ‘일라 포르모사 Ilha Formsa'라 불렀다니, 이름하여 아름다운 섬이라.
아직도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포르모사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작은 나뭇잎모양이라고도 하고 오동통한 고구마처럼 생겼다고도 하는 타이완은 태평양 서쪽 연안에 있는 독립적인 섬들 중 하나다. 서쪽으로는 타이완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대륙과 마주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오키나와섬과 일본이 있고, 남쪽으로는 필리핀이 위치한다.
일라 포르모사! - 타이완
타이완의 지형은 대한민국과 비슷한 동고서저형으로 전체면적의 64퍼센트가 산지고 타이완산맥이 섬의 동부를 남북으로 가로지른다.
남한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면적을 지녔어도 봉우리들의 평균고도는 백두산보다 높은 3000미터를 넘는데다 섬에서 가장 높은 옥산은 표고가 3,997미터에 이른다. 산맥의 동쪽은 평야부가 적고태평양 연안에서는 수직에 가까운 절벽이 계속된다. 그에 비해 비옥한 평야가 완만하게 펼쳐진 서부 해안지역으로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
이처럼 해안근처에 바로 높은 산들이 즐비한 지형 탓에 태풍만 오면 엄청난 비가퍼붓는다. 2009년 8월에는 태풍 모라꼿이 타이완을 강타해 무려 3000밀리미터가 넘는 사상 유례없는 폭우가 내려 46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192명이 실종되기도 했다. 모라꼿은 태국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원래는 태국의 수호신을 뜻하는 이름 ‘하누만’이었으나 인도기상청이 하누만은 힌두교신과 이름이 같다고 이의를 제기해 결국 태풍으로 데뷔도 하기 전에 모라꼿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모라꼿은 에메랄드 보석이라는 우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타이완의 북부는 온대기후에, 남부는 열대 사바나기후에 속한다. 더불어 일본과 비슷한 유라시아판과 필리핀판이 부딪히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크고 작은 지진도자주 발생하는데 1999년에는 진도 7.6의 강진이 일어나 2,400여 명이 사망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타이완 역사가 흥미롭다
타이완이 본격적으로 역사기록에 등장한 것은 1624년 네덜란드 상인이 타이완섬에 상륙하면서부터다. 17세기에 들면서 에스파냐가 타이완의 북부지역을 차지하고,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타이완의 남부지역을 차지했는데, 이 두 세력 간의 경쟁과 알력은 피할 수 없었으니, 마침내 1662년 네덜란드는 에스파냐를 몰아내고 타이완을 통치했다.
이 무렵, 중국대륙은 1644년 명나라가 망하고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장악한 상태. 여기서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구호를 내건 정성공이 맞서 싸우다 결국 타이완으로 쫓겨가고, 당시 그곳을 차지하고 있던 네덜란드를 몰아낸 정씨일가는 21년간 타이완을 통치하다 1693년 청나라 군대에 의해 막을 내린다. 이어서 약 200년간 타이완을 지배하던 청나라는 1895년 청일전쟁에 패하면서 일본에 할양했고, 이곳에 총독부를 설치한 일제는 1945년 패망할 때까지50년간 타이완을 식민통치했다.
일본패망 후 타이완을 수복하고 통치하기 위해 파견된 중화민국정부는 타이완 주민들을 실망시켰고, 그 불만은 1947년 2월28일 항거(2.28사건)를 통해 폭발하게 된다. 이때 장개석에게 요청한 지원병력이 본토로부터 도착하면서 대대적인 유혈진압이 시작되었고, 이 과정에서 본성인本省人3만여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었다. 2차대전 후 장개석이 이끄는 중국국민당 정부는 중국공산당과의 무력충돌이 격화되자 1949년 본토를 포기하고 중화민국정부를타이베이로 옮겼다. 대륙에는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고, 타이완에는 중화민국 정부가 존속하게 되어 2015년 현재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1996년 3월 타이완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총통 선출방식을 개선함으로써 중국국민당의 장기집권을 끝내고 본격적인 민주화시대를 열었으며, 2008년 중국국민당의마잉주馬英九가 당선되어 총통에 취임한 뒤 2012년 5월 재선에 성공하여 제13대 중화민국 총통으로 재임 중이다.
장개석총통 얘기가 나온 김에 중정기념관에 다녀온 얘기부터 해보자. 타이완의 영웅이라고 칭송받기도 하는 장개석. 그러나 오랜 독재정치로 인해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인물이기도 하다. 여행 중 맑은 날을 골라 둘러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어쩌겠는가 하늘에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잔뜩 찌푸린 날씨. 우리는 타이베이 여행의 필수코스 중 하나라는 중정기념관에 들어섰다. 중정기념관의 중정은 장개석의 본명이라고.
타이완의 초대총통이자 최고 권력자였던 장개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곳은 1975년 총통서거 후 국민 스스로 모금활동을 벌여 1980년 완공된 것이다. 잘 정돈된 넓은 정원 중앙으로 우뚝 서 있는 기념관은 하얀 대리석 건물에 파란 기와를 얹어놓은 형상. 이 두 가지 색은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고, 하늘을 가리키는 지붕처마는 사람 人자 형상으로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상징한다고. 또한 30미터 높이의 명나라식 아치형 정문은 타이페이에서 손꼽히는 건축물 중 하나라고 한다.
게다가 중정기념관의 본 건물로 올라가는 총 88개의 계단은, 이 기념관의 주인인 장개석이 사망했을 때 나이인 88세를 기념한 것. 아치형 정문 양옆으로는 중국 전통양식의 국립극장과 콘서트홀이 자리하고 있다.
기념당 안으로 들어서니 드높은 천장의 화려한 문양이 눈에 들어온다. 웅장하면서도 말끔하게 정돈된 느낌이랄까. 1층은 총통의 유물전시관으로 그의 삶을 기록한 수많은 사진과 문서들이 전시되어 있고,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도 보였다. 맨위층에는 25톤의 돌로 만튼 총통의 동상의 드넓은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곳에서 위병교대식도 이루어진다는데, 중정기념관의 명물이라는 그 모습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위병교대식은 오후 5시까지 매 정시마다 진행된다고. 그러나 이곳의 야경 또한 멋지다고 하니 방문시간을 잘 선택해서 가는 게 좋을 듯 싶다.
글/도용복·오지여행전문가 (주)사라토가 회장
[2015년 9월 24일 제68호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