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키스탄의 시장
타지키스탄 하면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고원과 그 일대에서 살아가는 유목민의 모습이 떠오른다. 도시를 벗어나면 흙집이, 국경을 넘어 인근 마을로 들어서면 뽕나무 고목이 거리마다 집집마다 즐비하고 어디서든 당나귀로 짐을 실어 나르는 사람들 모습을 볼 수 있다. 타지키스탄 또한 한류열풍이 불어 드라마 <대장금>에 출연했던 이영애 사진이 여인네들 비닐쇼핑백을 장식하고 있다.
대사관이 없이 입국비자 받는 데 어려움이 있고, 주를 통과할 때마다 허가증과 여권을 보여주어야 하며 거의 모든 국경에는 러시아 군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 게다가 국제 마약거래의 중간기지라는 등골 오싹한 우범지대라니....
그러나 이런 단면이 타지키스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문화권의 대표적인 명절 ‘나브루즈’가 있고, 중앙아시아에 사람이 살았다는 최초의 단서가 되는 유적지 ‘사라즘’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파미르 산맥이 일대 장관을 이루며 이어지는 타지크국립공원은 어떠한가. 어디선가 파미르고원 일대를 휘감아 돌며 동으로, 남으로, 북으로 타지키스탄의 매서운 바람이 불어온다.
유목민의 나라 타지키스탄
파미르고원 일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타지키스탄 사람들
중앙아시아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고원을 병풍 삼아 광활한 대지를 누볐던 유목민의 나라 타지키스탄. 남한면적의 한배 반 정도 되는 이 나라는 북쪽으로는 키르기스스탄, 동쪽으로는 중국,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북서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이다.
이렇게 왜 이곳에는 ‘스탄’으로 끝나는 국가이름이 많을까. 땅이나 나라를 뜻하는 이 말은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범어)에서 비롯되었다. 대개 옛 소련의 한 공화국이었다가 90년대 초 독립한 이 나라들은 현지 다수 종족의 이름을 따서 나라이름을 붙였다고. 타지키스탄은 페르시아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도이란계 언어를 사용하지만 터키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타지크인이 인구의 다수를 이룬다.
타지키스탄은 중앙아시아 초기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군림했던 페르시아제국의 문화적, 문명적 요소를 지닌 민족이다. 하지만 동서양의 여러 문명과 종교가 만나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언제나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아왔다.
10세기 이후에는 투르크족, 13세기에는 몽골족, 14세기에는 티무르제국의 지배를 거쳐 19세기까지 우즈벡 민족의 지배를 받았고 러시아의 남하정책으로 70여 년간 소련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소련이 해체되면서 1991년 9월 독립을 선언했지만 이듬해 정권을 잡기 위한 친사회주의 정부와, 이에 대항하는 이슬람반군과 결합한 민주화세력간의 갈등으로 내전이 일어났다. 그 후 96년의 휴전협정과 97년의 평화조약체결에 이르기까지 5만여 명의 사상자와 백만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고, 6년간의 내전으로 그나마 있던 산업기반도 대부분 파괴되어 더욱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현직 대통령인 에모말리 라흐몬(1952년~)은 1994년 내전 중에 대통령에 취임하여 부정선거 논란 가운데서도 99년과 2006년, 2013년 대선에서 잇따라 승리함으로써 앞으로의 임기를 무사히 마칠 경우 28년간 권좌를 지키게 됐다. 2011년 그는 폐쇄정치와 인권탄압으로 시사주간 타임이 선정한 10대 독재자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걸까? 이웃나라 대통령들도 만만치 않다.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은 1990년 초대대통령으로 선출되어 현재까지 장기집권하고 있고,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역이 1991년 취임하여 25년째 통치하고 있다.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 일대 누볐던 유목민의 나라
석유·가스 등 에너지자원 부족, 겨울철이 가장 고통
석유·가스 등 에너지자원 부족, 겨울철이 가장 고통
심각한 전력난 물가상승으로 국민고
이렇게 비슷한 나라들끼리 잘 지내면 좋으련만, 독립 이후 타지키스탄은 수자원 이용과 관련하여 우즈베키스탄과 지속적인 마찰을 빚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아랄해로 흘러들어가는 강은 아무다리야와 시르다리야 두 강인데 이들은 모두 타지키스탄 파미르에서 발원한다.
그런데 전기의 대부분을 수력에 의존하는 타지키스탄은 이 강에 대규모 댐을 건설하여 전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반면, 우즈베키스탄에선 이 댐이 완공되어 중앙아시아의 수력용수를 조절한다면 자국의 농업용수가 급속히 고갈될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해왔다.
최근 UN에서도 이에 대한 중재로 우즈베키스탄은 풍부한 석유와 전기를 공급하고 그 대신 타지키스탄은 물을 공급해주라고 했으나, 가격에 대한 입장차이로 협상은 결렬된 채 타지키스탄은 세계최대의 로군댐을 건설 중이고 우즈베키스탄에선 공습을 경고하고 있어 양국관계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로써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돌아오는 모든 트럭에 대한 관세는 계속 인상되고, 물류비 상승은 타지키스탄 물가에도 영향을 미쳐 국민들의 생활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타지키스탄은 세계 8대 수자원 보유국으로 백 퍼센트 수력발전에 의해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후 전기공급 사정이 매우 어려워진데다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의 알루미늄 공장이 있어 더욱 힘든 상태다. 수입원자재로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제련과정에 엄청난 전기를 필요로 하여 타지키스탄 전력의 75퍼센트를 이 공장이 소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석유나 가스 같은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타지키스탄으로써는 주로 수력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력 대부분을 산업용으로 쓰다 보니 일반서민들은 외국에서 비싼 돈 주고 수입한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나마도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수도권에서조차 전력난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2012년에는 이례적인 폭설과 한파로 난방이 불가능해 각 급 학교가 일주일간 휴교에 들어가기도 했다. 타지키스탄은 옛 소련시대의 중앙난방시스템이 망가져 주민 대부분이 겨울철에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2016년 8월 26일 제79호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