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Date: 2024년 11월 25일

레저/여행

광활한 초원위의 자유로운 영혼들…인간에 유익함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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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이를 찾아 초원을 돌아다니는 소와 양떼들이 장관을 이룬다.
    
 
비타민, 유기물, 미네랄이 풍부한 말젖은 환자의 영양식
 
가축의 먹이를 찾아 초원을 돌아다니는 유목민의 삶인지라 그들의 살림살이는 궁색하다. 소와 양들은 풀을 찾아 초원으로 나가고 집 가까이서 키우는 닭과 당나귀가 유르트를 지키고 있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천막 밑으로 기어든 개 한 마리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다.
 
아들 셋을 키우고 있는 여인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척박한 지역에 사는 만큼 몰골이며 매무새도 열악할 수밖에 없다. 사탕을 얻으러 다가온 아이들의 몸에선 시큼한 젖냄새가 묻어났다. 땟국물로 얼룩진 옷차림이며 따가운 햇살과 추위로 갈라진 아이들의 손등을 보니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그러나 그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천진하고 행복해보이기도 했다. 멀리 설산을 배경으로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드넓은 초원. 그곳에서 넉넉지는 않지만 가축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짓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행복의 기준은 상대적이란 생각이 새삼 들었다.
 
말젖을 짜서 만든 쿠미스라는 마유주와 우유를 개어서 덩어리로 만든 치즈를 얻어먹고 우리 일행은 다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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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젖을 숙성시켜 만든 쿠미스라는 마유주가 유명하다. 
 
 
쿠미스는 말젖을 숙성시켜 만든 술인데 이러한 마유주를 몽골에서는 아이락Airag, 영어로는 쿠미스Kumis 혹은 쿠미즈Kumyz 등으로 부른다. 말은 전통적인 유목국가에서 중요 역할을 하는 동물로, 말젖을 발효한 쿠미스는 인기 있는 전통술이고 말고기도 널리 애용된다. 신선한 쿠미스는 5월에서 8월 사이 맛볼 수 있으며 상점이나 길거리에서 쉽게 살 수 있다.
 
암말의 젖을 발효시켜 만들어낸 것이라 엄연히 말하자면 유제품이지만, 숙성되면서 젖에 들어 있는 락토오스가 에탄올과 이산화탄소, 산으로 바뀌면서 술이 된다. 갓 짜낸 암말의 젖을 며칠 동안 직접 저어주거나 통에 넣어 흔들어주면서 숙성시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쿠미스는 0.7에서 2.5퍼센트 정도의 알코올 도수를 갖게 된다. 19세기 말에는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며 만성질병인 폐결핵, 인후염, 만성피로, 기관지염 등에 좋다고 하여 그 인기를 더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 미국매체 <포브스Forbes> 온라인이 세계 10대 혐오식품을 발표하면서 그 1위로 마유주를 선정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말젖의 효능은 중국에서도 옛날부터 열을 내리는 특효약이라하여 상류사회에서만 즐겨 마셨다고 한다.
 
특히 비타민, 유기물, 미네랄 등이 풍부해 환자의 영양식과 건강회복을 위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어 세계 혐오음식 1위로 꼽힌 것에 네티즌들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마유주의 뒤를 잇는 두 번째 혐오음식은 아이슬란드의 향토요리 하칼Hakarl’로 상어고기를 수개월 발효시킨 것이며, 5위로는 인도네시아의 루왁커피가 올랐다. 사향고향이의 똥에서 추출한 커피라고 하여 상향고양이똥 커피로도 불리는데, 혐오식품으로 선정된 것과 달리 전 세계로 수출되면 사랑받고 있는 제품이다.
 
중국에서 황제의 요리로 통하는 피단은 오리알을 삭힌 음식으로 8위에 올랐다. 이는 1년 전 CNN에서 선정한 혐오식품으로도 꼽혀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다치게 했는데, 한국의 개고기도 당시 CNN의 혐오식품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이러한 논란 가운데 말젖을 이용해 결핵 치료제를 개발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20124월 영국의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에서 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쿠미스로 결핵환자들의 고통을 완화할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유리 신야스키 카자흐국립영양아카데미 교수는, 말젖에는 암환자의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영양소가 함유돼 있다면서 말과 염소젖으로 만든 약품이 개발되어 앞으로 3년 내에 생산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말젖이 모유와 비슷해 영양적인 면에서 우유보다 사람에게 더 낫다고 평가하고 있다.
 
 
서서히 나타나는 고소증세
 
고도가 높아질수록 수목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더니 해발 2,000미터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아예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다. 기압차 때문에 식재료로 가져간 진공포장 제품들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우리 일행은 계속 물을 마시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도시를 출발한지 6시간 만에 입산허가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입산신청을 해야 통과할 수 있다. 미리 준비해간 허가서를 제출하고 한 시간이 넘도록 너른 분지를 달린다. 저 멀리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봉우리들이 보인다. 우리가 지금 달리고 있는 길에는 햇볕이 내리쬐는데 저 봉우리 위에는 까만 먹구름이 내려앉아 눈을 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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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지를 빠져나오면서 비포장도로로 들어서자 뭐든 붙잡지 않고서는 제대로 앉아 있기도 힘들 지경이다. 협곡을 타고 들어가는 차량을 따라 튤립과 에델바이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진창길, 물길을 가리지 않고 고물차는 열심히 달린다. 베이스캠프가 가까워오자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도 추워져서 너도나도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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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가 되어서야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우리가 머무는 이곳은 해발 3,800미터. 미리 예약해둔 텐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흩뿌리는 빗발 때문에 서둘러 텐트로 짐을 옮긴 뒤에야 비로소 캠프주변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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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봉우리마다 흰 눈을 이고 있다. 흐릿한 저녁 어스름 아래 멀리 보이는 산맥 위로는 내 키높이에 맞춰 구름이 내려앉았다. 솟아오른 봉우리와 층을 지면서 낮게 내려앉은 구름들이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하얀 수염을 기른 신선이 구름을 타고 내려올 것만 같다. 베이스캠프는 캠프 운영자가 머무는 유르트 한 채와 식당용도로 쓰이는 대형 텐트, 그리고 산악인들이 머무는 2인용 텐트 8개가 전부다.
 
드디어 파미르에 도착했구나하는 안도와 함께 자연이 만드는 장관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 조금씩 어지럼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다른 일행은 모두 멀쩡한 것 같은데 가장 먼저 내게 고소증세가 오는 것 같다.
 
서서히 진행되던 두통이 갑자기 심해진다. 그와 더불어 문득 찾아온 어둠 사이로 꼭대기에서 불어오는 눈바람에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텐트로 들어가 챙겨온 겨울옷을 몽땅 껴입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을 막기 위해 깔개를 깔고 캠프주인에게 이불까지 빌려 깔았지만 으스스한 한기는 어쩔 수 없었다.
 
극심한 두통은 마치 쇠꼬챙이로 머릿속을 북북 긁어내는 느낌이다. 예전 히말라야에서의 증상보다 더 심한 듯하다. 고소증을 예방한다고 연신 마셔댄 물 탓인지 기압 탓인지 소변도 자주 마려워 간이화장실까지 가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숨을 쉬기 어려우니 몇 발짝 걷기도 쉽지 않다. 설상가상 설사까지 만났다. 추위에 고소증, 게다가 배탈까지. 몇 차례 텐트를 들락거리다 결국에는 탈진해서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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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25일 제7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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