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의 치아를 보관하고 있는 불치사는 전세계 불자들에게 유명한 선지순례지이다.
해발 488미터 고원지대 … 심할라왕조의 마지막 수도
스리랑카의 국화 ‘연꽃’ 곳곳에 문양 조각·석굴사원 볼거리
스리랑카의 국화 ‘연꽃’ 곳곳에 문양 조각·석굴사원 볼거리
예로부터 스리랑카 사람들은 석가모니가 이 섬을 세 번 방문했다고 믿고 있다. 기원전 3세기경 불교를 받아들인 후로 오늘 날까지 그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유적들도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콜롬보에서 북동쪽으로 1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캔디Kandy는 역사적인 불교도시로 콜롬보와는 달리 스리랑카에서 가장 스리랑카다운 도시다. 1815년 영국에 점령당하기 전까지 싱할라왕조의 마지막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꽃을 피웠을 뿐더러 해발 488미터의 고원에자리 잡고 있어 지리적으로 적의 침입을막기에 유리한 곳이다.
때문에 1480년 처음 수도가 된 이후 300년 이상 번성했으며 도시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캔디가 신성한 도시로 전세계 불교신자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석가모니의 치아를 보관한 불치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모셔진 석가모니의 치아(불치)는 4세기경 인도의 카랑가 왕자가 머리카락 속에 감춰 스리랑카에 들여온 것으로 수도를 옮길 때마다 불치도 함께 이동하여 마지막 수도였던 캔디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불치사는 유명한 성지순례지가 되어스리랑카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불자들이 찾고 있다. 새로 취임하는 총리도 이 사원에 참배하는 것이 관례라고한다.
흰 옷을 입은 순례자들이 연꽃을 단상위에 올리고 치아사리함에 경배를 올리기 위해 기다린다.
비 내리는 저녁 찾아간 불치사는 환하게 불을 밝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사원 입구에는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가 있어 경배를 올리는 순례자들이보였다. 스리랑카의 사원은 신발을 벗고 입장해야 하며 짧은 치마나 반바지, 민소매 차림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안으로 들어서니 계단 앞에 성스러운 공간의 시작을 알리는 돌판이 조각되어 있다. 반원형의 얇은 돌판에 몇 개의 띠가 있고, 각각의 띠에는 불교세계에서 말하는 윤회와 고통을 상징하는 불꽃과 몇 가지 식물과 동물의 문양, 그리고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북과 피리 소리가 사원전체에 울려 퍼진다. 사원 일층에선 전통복장인 사롱을 입은 네 명의 남성연주자가 넓은 사각형으로 둘러서서 북과 피리, 장구같이 생긴 악기로 신성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데, 목탁 소리가 울리는 우리의 사찰과는 다른 모습이다.
흰 옷을 입은 순례자들은 연꽃과 향을 들고 사원 내부를 열을 맞춰 지나간다. 들고 온 연꽃을 단상에 올리며 기도를 하고, 단상 위에 쌓인 꽃들로 아름답게 문양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하루 세 번 올리는 예불시간에 공개되는 치아사리함을 보기 위해 한쪽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많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순례자를 따라가자 붉은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순례자들을 맞아 준다. 순례자들은 사원전체를 돌며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알고보니 연꽃은 스리랑카의 국화國花이기도 했다.
예불시간이 되어 법당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차례대로 지나가면서 치아사리함에 경배를 올린다. 황금으로 만든 둥근 탑 모양의 사리함에는 화려한 목걸이와 보석들이 휘감겨 있는데 이것은 모두 옛 왕비들이 가지고 있던 장신구를 공양한 것이라고 한다.
고독한 왕의 슬픈 이야기, 시기리야
시기리야 바위산에 궁전을 지은 것은 5세기경 이곳을 다스린 왕 카사파Kassapa 1세다. 그는 아누라다푸라에 거대한 저수지를 만든 다투세나Dhatusena 왕의 장남으로 그 밑에는 배다른 동생 목갈라나 Moggallana가 있었다. 카사파의 어머니가 평민이었던 데 반해 목갈라나의 어머니는 왕족이었으니 비극은 태생적인 차이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동생에게 왕위계승권을 빼앗길까 노심초사하던 그는 결국 왕을 감금하고 자신이 왕위를 차지한다. 이에 목숨의 위협을 느낀 목갈라나는 형에 대한 원망과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인도로 몸을 피한다.
그러나 왕좌에 만족하지 못한 채 결국 부하를 시켜 아버지를 살해한 카사파는 점차 두려움과 죄책감에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인도로 간 동생이 보복하기 위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공포까지 더해지자 마침내 그는 시기리야의 바위산 위로 올라갔다.
그리하여 7년여의 공사 끝에 난공불락의 바위궁전이 탄생한다. 카사파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그 바위산 꼭대기에서 11년 동안 자신이 아끼던 무희들과 함께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냈다. 그러나 운명이란 거스를 수 없는 것일까.
그가 걱정했던대로 이복동생 목갈라나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이에 맞서 싸우기 위해 카사파는 코끼리등에 올라타고 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싸움이 한창이던 중 카사파를 태운
코끼리가 그만 수렁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되자 그는 다가오는 동생의 군대 앞에서 단검으로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코끼리가 그만 수렁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되자 그는 다가오는 동생의 군대 앞에서 단검으로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목갈라나는 바위궁전을 승단에 기증했고, 이후 오랫동안 스님들의 수행처로 사용되다가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오랜 세월 밀림 속에 방치되었던 이 하늘궁전은 훗날 영국인에게 발견되어 비로소 그 존재가 다시 세상에알려졌다.
시기리야 레이디, 천상의 요정 압살라
시기리야 바위궁전으로 오르는 계단은 끝이 없다.
모두 1200개라고 하는데, 힘이 들면 초입부터 뒤따라오는 남자에게 몸을 맡기면 된다. 앞뒤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이다.
나선형 철제계단을 타고 수직으로 올라가면 벽면의 신비로운 여인들이 손님을 맞아준다. 이 바위궁전을 유명하게 만든 또 하나의 유적, 미인도 벽화다. 시기리야 레이디로 불리는 이 그림은 천상의 요정 압살라와 시녀들로 추정되는데, 신비로움과 함께 마치 살아 움직일 듯 정교하다.
카사파왕이 죽은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그렸다고 전해지는 이 여인들은 당초 5백여 명에 이르렀으나 지금은 18명의 벽화만 남았다. 이곳이 스님들의 수행처로 사용 되면서 풍만한 젖가슴을 드러낸 농염한 여인들의 모습이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바위궁전의 미인도 벽화에는 카사파왕이 죽은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그렸다는
천상의 요정 압살라와 시녀가 그려져있다.
드디어 거대한 사자모양의 궁전입구가 나타났다. 지금은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사자의 두 발만 남아 있지만 처음엔 사자 입으로 들어가는 모양새였다고 한다. 수직에 가까운 계단을 오르자 탁 트인 시기리야의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권력에 눈이 멀어 스스로를 가둔 고독한 왕의 하늘궁전. 과연 그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무희들과 행복했을까. 시기리야는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50곳’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그밖에 자연상태의 바위에 다섯 개의 석굴을 뚫어 157개의 불상을 조각해놓은담불라 Dambulla 석굴사원, 스리랑카에 최초로 불교가 전해졌다는 미힌탈레Mihintale, 바위산을 깎아 거대한 열반상과 입상, 좌상을 조각해놓은 폴론나루와Polonnaruwa의 갈비하라Gal Vihara 사원 등 스리랑카에는볼거리가 풍성하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적인 유물, 그리고 순박함과 정겨움이 있는 사람들, 그것이 스리랑카를 찬란하게 빛나는 섬으로 만든다.
[2016년 3월 30일 제74호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