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라우템주의 로스팔로스 지역은 전체 인구 가운데 농축산업 종사비율이82퍼센트에 육박한다. 그러나 대다수 주민들은 텃밭 경작 및 가축사육을 통해 자급자족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뿐, 별도의생산활동을 통한 현금소득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지구촌나눔운동은 기존의 노축한활동 위주의 제한적 방법을 벗어나 마을구성원의 재능과 협력을 부가가치화한 티모르게이터(Timorgator) 쿠키 생산 및 판매방식을 도입한다. 제과제빵 교육을 통해 주민의 역량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다.
여성위주로 생산을 시작하여 아동복지 증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유도하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마을단위 소그룹으로 생산판매가가능한 티모르게이터 쿠키는 동티모르의 신화 속 동물인 악어에서 그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한다.
지구촌나눔운동은 세계각지의 빈곤문제 해결과 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1998년 한국에서 설립된 국제개발 NGO다. 이 단체는 동티모르에서 7년간 지역개발을 위한 소득증대사업과 주민교육사업을 수행해왔다
국토의 80퍼센트가 험준한 산악지대로이루어진 동티모르. 그렇다보니 평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마을 대부분이 산꼭대기 분지에 위치해 있다. 산악마을 에르메라(Ermera) 역시 그런 분지에 놓인 마을로 산악도로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이 마을은 동티모르의 주요 커피생산지다.
커피는 동티모르의 매우 중요한 산업이자 주요 수출품목이기도 하다.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소득원이 되고 운송가공에 따른 계절적인 고용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티모르 커피는 원래 자연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라 수세기 전 포르투갈 식민시절 당시 심었던 커피가 그 혈통 그대로 유지되고 보급된 것이다.
이러한 동티모르 커피는 원래 자연에서 자생한 것이 아니라 수세기 전 포르투갈 식민시절 당시 심었던 커피가 그 혈통 그대로 유지되고 보급된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는 커피와 달리 아직까지 유전공학에 의한 종자개량이 이뤄지지않아 옛날 품종 그대로다. 게다가 아프리카나 남미 등에서는 커피를 농장에서 재배하는 데 반해 동티모르는 자연상태 그대로 자라고 있는 것이라 비료나 농약 따위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커피다.
정확히 말해서 동티모르 사람들에게는 커피를 관리하거나 종자를 개량할 능력이 없다고 한다. 단지 자연에서 자라는 그대로 열매만 수확할 뿐이다. 에르메라산 유기농 커피는 가장 이상적인 1200미터 이상의 고지에서 충분한 비와 바람을 맞으며 높은 나무그늘 아래서 재배되기 때문에 그 맛과 향이 깊고 부드러운 최고급 커피로 인정받아 현재 호주나 유럽, 미국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세계에서 유일한 커피대학이 있다. 동티모르 커피를 연구 발전시켜 최고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동티모르 커피를 직접 수입 가공하여 체인점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동티모르의 결혼식
사실 동티모르 여행은 당시 동티모르 대사로 있던 김수일 대사의 초대로 대사관을 방문하고 불우 어린이들에게 물품을 전달하려는 목적이 컸다. 따라서 길지 않은 일정 대부분은 산골마을 글레노와 리히오 마을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사실 동티모르 여행은 당시 동티모르 대사로 있던 김수일 대사의 초대로 대사관을 방문하고 불우 어린이들에게 물품을 전달하려는 목적이 컸다. 따라서 길지 않은 일정 대부분은 산골마을 글레노와 리히오 마을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해발 2,000미터에 위치한 산악마을 글레노는 대사관 비서로 근무하는 안토이오(당시 35세)의 고향으로, 이 청년은 소 7마리가 없어 결혼을 못 한다고 해 우리를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결혼비용은 마을마다 달라서, 미인들이 많은 로스팔로스 마을의 경우 장가를 가려면 70~80마리의 소를 마련해야 한단다.
일반적으로 신랑은결혼하기 전 신부의 아버지에게 벨리즈(Belis)라고 하는 결혼지참금을 지불해야한다. 여기에는 물소 10마리 이상에 현금도 최소 200불 이상, 그리고 귀금속과 의상까지 합치면 통상, 1,700~2,000달러가 든다고.
이는 가난한 신랑에게는 큰 부담이라 지참금을 준비하지 못한 경우 남녀가 함께 도망가서 사는 일도 생기는 등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동티모르에선 보통한 가정에 8명 정도의 아이를 낳으며, 아들을 선호하는 집이 많다. 아들이 딸에 비해 노동력이 강하다는 인식 때문인데, 심지어 10명이 넘는 아이를 가진 집도 있다.
이것은 피임방법을 몰라서이기도 하지만 인구 전체가 거의 가톨릭신자라서 피임을 하지 않거나, 낙태가 종교적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7명의 자식을 둔 안토니오의 삼촌은 경제부장관의 사무총장으로 이 마을에 20년간 살고 있다.
그는 20여 명의 조카와 친인척을 돌보며 사회적으로 성공시켰고, 그의 아들은 포르투갈 대학에서 약사 공부를 하고 있다. 씨족사회인 동티모르는 대가족이 한 집에 모여 사는 풍습이 있으며, 지방에 살던 친척이 도시로 오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한편, 리히오마을 성당에 들러서는 아이들에게 신발과 공을 전달했다. 120만 국민 상당수가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동티모르.내전으로 수많은 난민까지 발생해 성당에 정착시키는 등 그동안 어느 정도 해결된 상태라고는 하나 아직도 공원을 비롯한 곳곳에 난민들이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난민촌에도 들어가기 쉽지 않아 집이 불에 타 없어졌다고 얘기해줄 증인 4명 이상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에서 병원의료비나 교육도 무료지원 하고는 있지만 당장 먹고살기 힘든 처지라 교육은 뒷전인 상황이다.
깨끗한 자연과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땅
한 국가의 수도인데도 딜리에는 관광객이 찾아갈 만한 데가 그리 많지 않다. 곳곳에 전쟁으로 부서져버린 낡은 건물과 시꺼먼 매연을 뿌리며 달리는 고물 자동차들이딜리의 현재를 짐작케 한다.
그나마 볼거리라면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해안도로와 해안 능선 위에 덩그러니 서 있는 예수상, 그리고 딜리 시민들의 주말나들이 장소이기도 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상일 것이다.
수도 딜리의 동쪽 해변에 우뚝 서 있는 대형 예수상은 1975년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점령하고 난 후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복속시킨 것을 기념해서, 딜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 정상에 27미터 높이로 건설했다.
이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리우데자네이루의 거대 예수상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거기에는 좀 못 미치는 것 같다. 이 예수상으로 올라가는 700여 개의 계단을 따라 예수가 탄생하여 최후 순간을 맞이할 때까지의 일생을 새겨놓은 부조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예수상은 세 개의 받침대 위에 지구 모양의 둥근 단이 있고 그 둥근 단을 딛고 예수가 서 있다. 벽돌로 만든 바닥은 일부가 파손되고 타일도 떨어져나가 세월보다 많이 낡은 느낌이 든다. 예수상까지 가는 길은 아름다운 해변을 끼고있어 조깅코스로도 이용된다는데 시간만 있다면 이 멋진 길을 천천히 달려보고 싶었다.
한편, 딜리 시내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상이 바닷가 언덕 성당 옆에 서 있다. 1989년 10월 12일 인도네시아 점령기간 중 동티모르를 방문해 미사를 올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기념하여 2008년 6월에 만든 6미터 높이의 조각상이다.
한국에도 두 차례 찾아왔던 교황의 방문은 동티모르인들의 독립의지를 세계로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티모르 여행은 관광시설이나 편의시설이 거의 없어 편안하고 안락한 여행을기대할 수 없다. 그저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보는 것이 여정의 전부일지 모른다. 하지만 높고 험준한 산과 깊고 깨끗한 바다, 그리고 동티모르가 자랑하는 고산의 그윽한 향을 지닌 커피가 있는 곳이다.
척박하지만 미소를 머금고 사는 사람들, 악어섬 전설처럼 친구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며 늘 꿈을 가지고 남을 돕는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땅, 그곳에서 아픈 역사의 상처를 딛고 조금씩 변화해가는 그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도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재미가 아닐까.
척박하지만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통티모르는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최근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글/도용복. 오지여행가
[2016년 1월 25일 제72호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