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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여행

태평양의 등대 ‘산타아나산’ 산살바도르의 센트럴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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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위에 또 한 겹의 하얀 솜으로 이루어진 바다가 있다.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태평양의 모습이다. 그 솜겹 구름을 뚫고 내리쬐는 햇빛은 더욱 강렬하다.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로 가는 바다는 그렇게 더욱 파랗게, 물감으로는 도저히 표현 못할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하여 31시간의 긴 여정 끝에 도착했지만 우연히 둘째딸 친구를 비행기에서 만나게되어 지루함이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대기하는 시간을 틈내 시내구경도 할 수 있었다. 어떤 이에게는 지루하고 힘든 시간일지 모르지만 나는 덤으로 더 많은 곳을 볼 수 있는 시간의 다른 이름이 환승이다.

2004년 주한엘살바도르 명예영사로 취임한 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양국의 우호증진과 교류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엘살바도르는 우리에게 중미의 어느 국가쯤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많은 커피전문점에서 엘살바도르산 원두의 맛을 즐길 수 있어 고무적이다.

또한, 지난해 한-중미 FTA 체결로 값싸고 맛있는 다양한 열대과일과 아보카도 같은 채소가 우리 식탁위에 자주 오를 날도 멀지 않았다. 이 나라는 가장 먼저 눈에 띈 건가슴이 확 트이는 시원한 해안 풍경이었다. 해안선 위로 화산에 구름이 걸린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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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이 국토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엘살바도르는 인구 7백여만 명. 엘살바도르란 ‘구세주’란 뜻이다. 12년 내전 끝에 7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1992년 협정을 맺으면서 평화를 되찾았다. 동유럽 어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엘살바도르에서도 음악회나 공연장에서 보는 공연보단 거리 연주단이 눈에 더 많이 띈다.

흥겨운 라틴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절로 흥을 돋운다. 이들은 ‘마리아치’라 불리는 거리악단인데, 보통 3~12명으로 소규모다.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생활 속에서 음악이 묻어나는 엘살바도르국민들의 민족성이 느껴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베사메무쵸’는 길 가다가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워낙 귀에 익은 터라 낯선 길이라도 이 노래를 들으면 반가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트리오로스칸페로스’라는 악단과는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 악단의 평균 나이는 65세. 63세인 막내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배운지 15년 됐고, 다른 단원들은 거의 50년씩 기타를 쳤다고 했다. 이들의 상당수가 악보를 보지 못한다. 음악이란 단순히 오선지위의 음계로만 표현할 수 있는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악보를 보지 못하니 당연히 음을 암기하여 연주하다보니 세월의 무게가 실려 모든 곡이 가슴에 와닿는다. 눈물을 들킬 새라 손수건으로 훔쳐 내다보면 시뻘개진 코는 숨길 수가 없다. 산살바도르 근처에는 1951년 한 유지가 만든 산타루치아(Santa Lucia)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식 성당이 있다.

성당 맨 위 오른쪽에 커다란 종이 있고 중심에는 큰 시계가, 그 위로는 하얀 십자가가 달려 있다. 국민의 83%가 로마가톨릭을 믿는 국가답게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보기엔 여느 성당과 다를 바 없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흑인이란 점에서 특이했다. 스페인 식민지로 있는 동안 억눌린 약소민족의 설움과 반감을 ‘흑인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창출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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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앞 큰 공원입구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있다. 아마도 더위를 식히러 나온 동네 사람들인 듯했다. 하지만 성당 앞쪽으로 차가 주차되어 있고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떼지어 있는 게 아닌가. 혹시하는 생각에 다가가 보니 짐작이 맞았다. 영구차였다. 이곳의 장의풍습은 어떨까. 염치불구하고 유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얼른 영구차에 올라탔다. ‘관은 또 어떨까, 우리와는 뭐가 다를까.’ 호기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관 앞쪽 문을 열고 고인의 얼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문도 열었다. 드문드문 수염이 난 깡마른 얼굴의 70세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유가족에게 감사하다며 연신 머리를 숙였다. 한국 같으면 어림도 없을 사진촬영을 허락한 가족들은, 호기심 많은 동양인이 싫지는 않은 듯 계속 나를 쳐다보며 미소지었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소리내어 통곡을 했을 터인데 말이다.

상주인 마리아는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가 술을 좋아해 매일 마셨다고 말했다. 시쳇말로 ‘알코올중독자’인 셈 이었다. 곧이어 묘지로 향하는 그들에게 머쓱해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부디 천당이든 극락이든....” 나도 고인의 명복을 빌며 머리를 숙였다. 전체적으로 엘살바도르는 축제가 많다. 동네 곳곳에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진다. 참가자들은 화려하게 꾸민 우마차와 꽃으로 장식한 말들을 타고 1시간 가량 행진을 한다.

흥겨운 음악을 배경으로 경쾌하게 움직이는 우마차는 흡사 유랑극단을 연상케 했다. 이날의 잔치는 미인대회. 사회자는 분장을 한 광대였다. 아름다운 미인들을 보기위해 사람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거나 담벼락 위에 서기도 했다. 국가적으로 미인대회에 관심이 많은, 정열의 나라답게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지난해엔 17세의 고교 2년생이 우승했다는데 이런 미인대회가 마을마다 열리며 출전자는 주로 10대란다. 우리로 치면 ‘미스코리아’ 대회의 지역예선 격이었다. 이 대회 우승자는 전국 단위의 ‘미스 엘살바도르 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갖는다고 했다. 잠시 후, 산살바도르 광장에선 ‘뿌뿌사’ 먹기 대회라는 이색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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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제한 없이 뿌뿌사를 가장 많이 먹는 사람에게 상금 10달러와 티셔츠를 선물로 주었다. 뿌뿌사는 엘살바도르의 주식인 옥수수나 밀가루로 만든 빵으로, 호떡처럼 둥글납작한빵 속에 샐러드나 여러 가지 음식들을 넣는데 값도 아주 저렴했다. 중앙아메리카에선 크리스마스와 연말이면 불꽃 축제가 이어진다.

새벽 1~2시까지 계속 폭죽을 쏘아대 차량 정체가 극심해지지만 사람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경적을 울려대는 사람도 하나 없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축제를 즐기기 때문. 이곳 사람들은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1년 동안 모은 돈을 전부 폭죽 사는데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작물이 쉽게 자라는 열대성기후 덕인지 즐거움을 인생 최대의 낙으로 삼고 있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노랫말까지 붙여가며 가난을 향유하던 우리의 과거에 비추어 보니, 한때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이 일견 어리석어 보이기도 했지만 순간적이나마 노동 뒤에 오는 행복, 즉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는 곳, 가는 곳마다 음식과 축제가 넘치고, 만나는 이들마다 담백하고 활달한 역동성을 품고 있기에 엘살바도르가 더없이 좋은 여행지가 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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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25일 제110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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