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 체 게바라의 나라, 낭만적인 음악이 있고 정열적인 춤이 있는 나라, 세계 몇 안되는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국민들이 행복한 나라, 바로 중남미의 보석 쿠바이다. 쿠바 섬은 ‘서인도제도의 진주’라고 불릴 만큼 널리 알려진 동경의 섬이다.
이 나라가 공산화되기 이전인 1940년대만해도 미국과 서구 상류사회에서 최고로 치는 휴양지였다. 최근 국내 인기 드라마에도 소개되어 더 많은 여행가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이다. 북쪽은 약 300km의 플로리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미국 플로리다 반도와 마주하고 있으며 북동쪽은 바하마, 동쪽은 아이티, 서쪽은 유카탄 반도와 마주한다.
서인도제도에서 가장 큰 쿠바 섬과 약 1600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보네족, 타이노 족 등 5만여 원주민들이 고도의 농경생활에 종사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던 쿠바 섬은 16세기 초에 에스파냐에 정복된 이후 근 4세기 동안 그 지배를 받아오다 19세기 말에 에스파냐와 미국의 전쟁이 발발해 다시 미국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미국의 조종을 받는 정권이 들어서며 부패와 수탈을 자행하다 바티스타 독재정권 때에 이에 항거하는 게릴라들이 일어서서 정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았다. 그지도자가 라틴 아메리카의 신화적인 영웅 체 게바라였다. 그는 피델카스트로와 함께 반란에 성공한 후정권을 카스트로에게 맡긴 후 다시 게릴라 활동을 지도하기 위해 중미의 다른 나라 밀림 속으로 떠났다.
카스트로는 미국에 맞서 엄격한 공산정권을 탄생시켰고 이후 미국의 철저한 봉쇄와 견제로 국가 재정이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 이후부터는 양국 사이에 화해 무드가 조성되어 미국 뉴욕과 마이애미에서 쿠바 수도 아바나와 정기 항로가 연결될 정도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 단독수교국으로 한국과 정식 국교는 없으나 무역교류가 활발하며 입국에 별 어려움은 없다. 쿠바 여행은 수도 아바나에서 시작한다. 아바나에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멋이 가득한 쿠바의 택시들이 번쩍인다. 아바나의 첫 번째 관광명소는 센트로 아바나에 있는 건물 까삐똘리오다. 아바나의 랜드마크인이 까삐똘리오는 쿠바 혁명 이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던 건물인데 지금은 쿠바 국립과학원으로 사용중이다.
인기명소답게 까삐똘리오 앞은 여행객들을 위한 다양한 탈 것들이 대기하고 있다. 세계 4대 공동묘지의 하나인 세멘테리오 꼴롱 묘지는 20만 평이 넘는 넓이에 200만개가 넘는 묘가 들어서 있어 차를 타고도 한참을 달려야 다볼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크다.
이 묘지는 공동묘지의 크기 때문에 4대 공동묘지의 하나가 된 것이 아니라 너무 아름답고 입이 벌어질 정도로 광활한, 한마디로 너무 화려하기 때문에 그렇다. 쿠바 정부는 이 꼴롱 묘지를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입장료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묘지를 장식한 예술품 못지않은 조각상들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공동묘지가 아닌, 거대한 조각공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행자들에겐 멋진 볼거리지만 가족들에겐 아련한 슬픔의 장소이다. 꼴롱 묘지의 조각들은 화려하기만한게 아니라 조각마다 다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고 한다. 소방관이 오기 전 불을 끄다 죽은 31명의 용감한 주민들이 조각된 것도 있고, 가슴 아픈 모자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이 묘지의 가운데쯤에 쿠바의 초대 대통령 세스페데스의 묘지가 있다. 그런데 그 바로 옆에 대통령 묘비보다 훨씬 높고 더 화려한 묘지가 있다. 이 묘지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재미있다.바로 미국의 대문호 헤밍웨이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공산화되기전 미국과 서구상류사회 최고의 휴양지
고풍스러운 멋의 수도 아바나 여행객 인기명소로 각광
다양한 공연과 춤과 음악이 있는 뜨거운 열정의 나라
1950년대 초는 헤밍웨이의 전성시대였다. <노인과 바다>로 53년에 퓰리처상을 받고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밍웨이는 툭하면 플로리다에서 쿠바 별장으로 갔다. 쿠바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은 아바나에 있는 <플로리디따>라는 바였다.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곤 했는데, 그곳의 늙은 흑인 바텐더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셨다. 이 흑인 바텐더는 헤밍웨이를 위하여 새로운 칵테일을 하나 개발했다. 그게 바로 다이키리이다.
우리나라의 칵테일 바에도 다이키리라는 칵테일이 있다. 얼음을 갈아 만든 빙설에 럼과 사탕수수즙, 레몬을 넣고 만든 이 칵테일을 맛본 헤밍웨이는 그 때부터 다이키리만 마셨다. 이것이 소문이 나자 돈 많은 미국관광객이 쿠바의 플로리디타 바에서 다이키리 한 잔을 마셔보지 못했다면 쿠바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바는 미국인 부호들이 줄을 섰다.
사람들은 모두 다이키리를 개발한 흑인 노인이 직접 만든 다이키리를 마시려고 했고, 바 주인보다 가난한 흑인 바텐더가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다이키리 한 잔 값은 50센트였지만 팁으로 열 배, 스무배의 돈을 벌은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흑인 바텐더가 플로리디따 바를 사고 그 옆에 딸린 식당까지 사버렸다.
꼴롱 공동묘지의 대통령묘 옆에 있는 크고 화려한 묘의 주인이 바로 이 흑인 바텐더의 묘이다. 쿠바를 얘기할 때 헤밍웨이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만큼 쿠바 곳곳에는 헤밍웨이의 흔적들이 많다. <노인과 바다>를 아무리 읽어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데 쿠바에 와서 걸작의 깊이를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아 이번 여행의 또다른 의미를 찾았다.
아바나 동쪽으로 가면 작은 어촌, 꼬히마르가 있다. 작고 조용했던 해변 꼬히마르는 유명세를 타면서 커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원래는 헤밍웨이가 낚시를 즐겼던 곳이다.
헤밍웨이는 이곳에 서서 낚시도 하고 가끔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기도 했는데, 이 꼬히마르의 평화로운 풍경을 보며,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낚시를 즐기던 선착장에는 유명세 탓인지 언제나 많은 낚시꾼들로 붐빈다. 헤밍웨이는 1930년대부터 쿠바혁명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60까지 쿠바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그 때 묵었던 호텔이나 식당이 잘 보존되어있고, 헤밍웨이가 살던 집은 박물관으로 만들어져 있다.
박물관에는 사슴, 표범가죽, 호랑이 얼굴 등 집안곳곳에 그의 취미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 헤밍웨이는 낚시와 함께 사냥도 무척 즐겼다고 한다. 또 대문호답게 밥 먹는 식당만 빼고는 그 어떤 방을 가도 온통 책으로 가득 차있다. 3층으로 올라가면 언제나 유유자적 놀기 좋아했던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전망 좋은 방도 있다.
미국의 작가가 지금은 대표적인 반미국가인 쿠바의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어 있으니까 이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바나의 하늘에 노을이 지고 낭만적인 밤이 찾아오면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볼 수 있다. 밤이 되자 카페는 더욱 활기가 넘친다. 거리도 춤을 추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열정적인 아바나의 밤이다. 가게 뿐 아니라 거리 어디를 가나 신나는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아바나의 밤이 깊어질수록 아바나는 점점 춤과 함께 뜨거워진다.
아바나엔 다양한 공연을 볼수 있는 카페가 많고 플라멩고부터 클래식 연주까지 취향대로 골라서 갈 수 있다. 쿠바의 낮과 밤을 겪어보면 헤밍웨이가 사랑한 나라 쿠바, 춤과 음악의 뜨거운 열정이 끓는 나라 쿠바를 왜 카리브해의 진주라 부르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2019년 1월 23일 제108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