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망카, 그라나다, 알함브라, 세비야
유럽의 서남쪽 이베리아 반도를 대부분차지하는 스페인은 유럽대륙에 속해 있지만 북쪽으로는 험준한 피레네산맥이 유럽본토와 경계를 두고 있으며, 남쪽으로는지브롤터해협을 사이에 두고 북아프리카와 맞대고 있어 다른 유럽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지리적 환경에 따른 다양한 음식들과 이슬람, 기독교, 가톨릭이 버무려진 복합적인 문화 그리고 이런 복합적이고 문화적인 배경 속에서 탄생한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 프란시스코 고야, 살바도르 달리, 현대 미로 건축의 거장 가우디의 건축물 등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예술의 본고장이 스페인이다.
최근 TV에서도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등 스페인을 간접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다. 수도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가 유명하지만 작아도 볼거리 많은 도시가 많다. 최근 많은 여행객들이 바르셀로나에 내려서 마드리드로 이동하거나 그 반대의 코스를 선택한다.
주요 도시를 포함하여 남부지방까지 구석구석 여행할 수 있다. 중동지역항공사들을 필두로 외항사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항공요금이 저렴해지고 루트도 다양해진 것은 모든 여행객들에게 최고의 혜택이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작품만을 감상하는데만 수 일이 걸린다. 마드리드에 도착하면 톨레도와 세고비아는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고 일요일에는 꼭 벼룩시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산 미구엘 시장에서 즐기는 스페인산 와인과 하몽은 지금도 그립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칠레에 비해 스페인산 와인을 접할 기회가 적은데 특히 리오하 지방에서 나오는 와인은 실패할 일이 없다. 스페인의 남부도시 그라나다는 가톨릭과 아랍의 두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서기 711년부터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던 무어인들이 스페인에게 항복할 때까지 780여 년 동안 그라나다는 아랍문화의 중심이었다. 이를 대표하는 곳이 알함브라궁전. 알함브라는 ‘붉은 성’이라는 뜻으로 한밤에 성벽과 망루, 그리고 성안에서 비치는 횃불로 마치 성이 붉게 타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화려한 유럽의 왕궁들에 비해 은근한 매력을 가진 곳으로 이슬람 건축물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알함브라는 크게 세 곳으로 나뉘는데 이슬람의 유적들을 전시한 박물관과 전망대로 쓰이고 있는 알카사바(성채), 본궁의 역할을 했던 카사레알, 그리고 그 주변을 감싸듯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헤네랄리페정원이다.
왕궁의 세밀한 건축기법도 놀랍지만 헤네랄리페정원의 아름다움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입구에서부터 사이프러스나무에 둘러싸인 통로가 길게 뻗어있는 이정원은 그라나다 성주가 14세기 초에 여름별장으로 만들었으며, 왕이 손님을 초대하여 파티를 벌이던 곳이다.
시에라네바다산맥의 눈 녹은 물을 끌어와 분수를 만들고 정원으로 꾸며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무어인이 머무를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고 하니 그 아름다움을 가히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카를로스5세 궁전의 영향으로 알함브라 궁전이 쓰러져 가고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인류 문화유산이 조만간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된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라는 스페인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연주곡을 들으며 이 아름다운 곳을 거니는 호사를 누려본다.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라 온라인 예약은 필수이며 나스리 궁 입장 예약시간은 꼭 지켜 가야 한다.
또한, 주요 지점을 지날 때 입장권을 계속 확인하는데 무작위로 신분증 검사를 한다. 그라나다에는 와인이나 맥주를 주문할때마다 ‘타파스’라는 간단한 음식을 무료로 제공 하는 문화가 남아있다. ‘타파스 투어’는 여행객들이 여러 맛집을 다니며 저렴한 금액으로 술과 다양한 현지 음식을 즐기는 문화이다.
3유로(약4천원)를 내고 가성비 최고의 식사를 할 수 있는 곳, 관광지는 모두 비싸다는 선인겹이 없어지는 곳이 그라나다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하루 다섯끼를 먹는다고 한다. 간식으로 즐기는 츄러스를 찐한 초코렛에 찍어 먹으면 별미이다. 관광객들이 붐비는 기념품가게 주변이나 대성당 주변에서 집시 여인들이 건네는 꽃은 무심코 받아서는 안된다. 돈을 주기전까지그들을 벗어날 수 없다.
건축물, 와인, 밤새불빛이 꺼지지 않는 매력적인 도시
집시의 한과 설움 … 춤과 음악이 살아 숨쉬는 곳
“알함브라궁전”, 화려한 유럽왕궁의 “극치” 최고걸작
또한 기념품가게에서 파는 가죽 제품은 시간이 흘러도 그특유의 냄새가 없어지지 않아 사용에 불편함이 있다. 그라나다가 포함되어 있는 안달루시아지역의 또 다른 명소는 세비야다. 카르멘과 돈주앙의 고향,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세비야의 중심은 대성당이다.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 로마의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함께 세계 3대 사원으로 손꼽히는 이곳은 가톨릭 성전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본래는 이슬람 왕조 아래에 있던 12세기에 이슬람 사원으로 축조되었다가 가톨릭 성당으로 변모했다. 모스크탑으로 지어진 히랄다의 탑 위에 성모마리아상이 있게 된 것도 이런 역사 때문이다.
세비야 대성당 역시 온라인 예약을 하고 가면 긴 줄을 서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있다.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라는 유언을 남긴 콜롬버스의 관을 스페인왕들이 메고 있는 조각상에서 눈을 뗄 수없었다.
세비야는 인도 북부에서 기원한 방랑민족 집시가 스페인 남부로 대거 이동해 조금씩 그 뿌리를 내렸던 곳으로 집시들의 한과 설움이 담긴 플라멩코가 발생한 곳이다. 안달루시아 지방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이민족의 침입을 받은탓에 늘 뒤섞인 문화의 현장이었고 동시에 그 속에서 잡초처럼 질긴 자기들만의 문화를 이룩해냈다.
플라멩코의 음악과 춤은 권력과 구속을 싫어하고 매우 완고하지만 쉽게 감동하는 집시들의 삶의 방식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기타 반주, 박수, 추임새 등은 우리의 판소리를 연상시킨다. 어쩌면 ‘한’이라는 코드가 예술로 승화될 때 인간의 표현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플라멩코 박물관에서 매일 진행되는 공연은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 댄서들의 땀을 맞으며 그들의 숨결과 손짓을 따라가다보면 한 시간의 공연시간이 너무나 아쉬워진다. 진한 감동의 여운이 남아 있을때 어둠이 내려 앉은 세비야의 좁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다른 유럽의 도시와 달리 밤이 늦도록 문닫지 않은 까페와 식당에 앉아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스페인은 수많은 유적과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주목할 것은 국민들이다. 스페인의 프라도박물관을 비롯한 유명박물관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은 관광객이 아니라 대부분 자국민들이다. 또한 곳곳의 넓은 광장에선 다양한 문화 예술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거리에는 수많은 예술가와 공연자들이 자신의 예술을 마음껏 표현하고 관광객이나 주민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공연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곳이 스페인이다.
수많은 예술가를 만들어낸 스페인의 저력이 바로 이런 것이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같은 대도시를 벗어나면 물가도 예상외로 낮아 여행에 더 큰 재미를 선사한다.절벽의 도시 론다,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등 우리가 가봐야 할 곳이 넘치는 나라가 스페인이다.
[2018년 12월 26일 제107호 14면]